[여기저기 약속이 다 취소돼야 나에게 순서가 온다]
아들의 생일이다.
오늘 저녁을 먹을 수 있겠냐고 어제 미리 카톡을 했는데
'아직 몰라'
라는 답변이 왔다.
누군가가 저녁을 먹자고 할 수도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그마저도 없을 때 나를 만나준다는 것이겠지.
약속이 없어야 나와 밥을 먹겠다며 대놓고 하는 거절 해도 서운하지 않을 것 같다.
오히려 약속이 있었으면... 하고 바란다.
얼마 전 여자친구와 이별한 아들의 이별사유는 100% 신앙문제다.
그게 헤어질 이유가 되냐고 하겠지만 아들에게는 매우 중요하다.
오늘 라디오를 듣다 보니 요즘 젊은이들이 연애를 할 때 세 가지를 보는데 얼굴, 성격, 가치관이라고 한다.
신앙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그 가치관 때문이다.
아들은 여자 친구와 헤어지면서 많이 힘들어했다.
힘들어하는 과정에 비슷한 경험을 한 교회 자매의 위로가 힘이 되었다고 한다.
함께 교회에서 스텝으로 일을 하며 알게 된 자매인데 그 자매도 비슷한 이유로 이별을 했던 경험이 있기에 아들을 많이 공감해 주면서 위로해주었나 보다.
환승연애는 절대 아니고 친구처럼 만나는 사이라고 강하게 선을 그어서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아니라고 하는데 잘 알지도 못하면서 우기는 것도 아들에게 짜증 나는 일이니까.
아들이 헤어진 여자 친구는 시각장애우였다.
결혼을 하면 불편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닐 것 같아서 내심 탐탁지는 않았지만 아들이 너무 좋아하기도 했고, 핸디캡으로 따지자면 아들도 신장이식과 갑상선암이라는 전과가 있으니 반대의 뜻을 내비칠 수는 없다.
여자 친구를 처음 봤을 때 마음에 쏙 들었다.
불편한 건 서로 도와가며 살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들이 암을 겪으면서 가치관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고 한다.
여자 친구가 잘 챙겨주고, 배려도 잘해주는 착한 아이였지만 아들의 깊은 속을 드러내면 뭔가 소통이 안 되는 답답함이 가끔 있다고 했다.
답답함의 실체를 모르고 있었는데 그것이 신앙적 가치관이었다는 얘기다.
나는 충분히 이해한다.
나도 내 자매들과 이야기할 때 종종 느끼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자매들도 같은 신앙을 갖고 있지만 많이 다르다.
삶 따로 신앙 따로의 이분법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어서라고 생각한다.
가정이든 직장이든 학교든 모든 문제를 나누고 해석할 곳은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애들 말대로 기승전-하나님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자매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그걸 왜 그렇게 연결을 시키느냐고 할 때가 있다.
나도 예전에는 같은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그때는 어느 정도 말이 통했던 것 같다.
나만 느끼는 게 아니고 자매들에게도 내가 너무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처럼 여겨질지도 모른다.
비록 오늘 아들에게 까이기는 했지만 아들이 가치관이 맞는 여자 친구를 만나기를 바라는 간절함으로 기꺼이 포기(?)해준다.
좋은 친구, 좋은 배우자를 만나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