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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걸음씩 Jul 10. 2024

오늘까진 행복해

내일은 어차피 나의 것이 아니니까.

이식수술을 한지 만 4년이 지났다.

공여를 한 나는 일 년에 한 번씩 혈액과 소변검사로 남은 신장의 기능에 이상이 있는지 여부를 검사하고 있다.

아들은 두어 달마다 검사를 하고 면역억제제를 비롯한 여러 가지 약을 처방받는다.

시간을 맞춰서 공복과 식후에 챙겨야 할 약이 한 보따리지만 투석을 했던 때를 생각하면 이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한다.

나는 아침저녁으로 챙겨야 하는 갑상선기능저하약과 고지혈증 약만으로도 귀찮아하는데 아들을 생각하면 불만이 쏙 들어간다.


이식 전 투석을 할 때 아들의 나이가 20대 후반이었는데도 술집에 가면 항상 신분증 검사를 했다.

아들 말로는 신분증 검사를 하는 직원들은 보통 두 번 놀란다고 한다.

어린애 같은데 주민등록증이 있는 것에 놀라고, 주민번호 앞자리를 보고 또 놀라고.

그만큼 아들의 몸이 왜소해서 중학생쯤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식 후에 아들의 식욕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폭발적으로 늘었다.

투석당시 50kg이 채 안되었는데 현재는 70kg이 넘으니 걱정이 된다.

병원에 갈 때마다 '혹시나'하는 불안감이 있지만 별 이야기가 없으면 또 방심을 한다.

주치의가 체중에 대한 경고를 좀 했으면 좋으련만...


아들은 오히려 뚱뚱해진 지금의 몸을 마음에 들어 한다.

몸이 왜소할 땐 주변에서 너무 함부로 대해서 기분이 상할 때가 많았는데

아저씨 비주얼이 된 지금은 무조건 존대를 한다며 이제 비로소 나이대접을 받는 기분이란다.

육체적 질병도 힘든데 여러 가지로 마음에 상처를 받았다는 걸 늘 뒤늦게 알게 된다.


처음 이식 수술을 하고 나서는 자기의 생체리듬이 예전과 달라졌다는 이야기도 자주 했고, 

성격까지 바뀐 것 같아 적응이 안 된다고 했다.


극외향형의 아들은 어디서든 말을 잘하고 유머 감각이 풍부했다.

왜소한 몸에 여자 친구가 없었던 적이 별로 기억나지 않을 정도여서 

"널 어딜 보고 만나는 거야? 키도, 얼굴도, 돈도 다 아닌 거 같은데?ㅋㅋㅋㅋ"

라고 놀리면 자기도 모르겠다고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유머 때문인 것 같다.

그러던 아들이 수술 후에는 카페에 가서 주문도 못할 정도로 의기소침해졌다.

물론 지금은 그런 증상들이 모두 사라졌다.


가끔씩 잠자다가 갑자가 훅 더워질 때도 있다면서 

갱년기 여성의 장기를 받아서 그런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한다.

하지만 나도 아들도, 심지어 딸도 인정하는 한 가지가 있다.

아들이 나의 성격과 식성을 많이 닮아간다는 것이다.

몸이 기억한다는 말의 그 '몸'에는 장기도 포함이 되나 보다.


전에 아들이

"엄마, 나 요즘 좀 짜증도 잘나고, 무기력하고 그런데 엄마는 괜찮아?"

라고 물은 적이 있었다.

신기하게 나도 그런 증상으로 컨디션이 안 좋을 때라서 둘이 신기하다고 했었다.


유튜브에서

뇌사자에게서 신장이식을 받은 꼬마가 

공여자를 살해한 법인의 얼굴을 기억해 내서 검거한 적이 있다는 '믿거나 말거나' 영상을 보면서 

그런 게 어딨냐고, 

다 미신이라고 했었는데 지금은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정보가 뇌에만 저장되라는 법은 없을 테니까.


최근에 알았지만 아들이 대학을 휴학하고 있었다.

학교가 지방이라 멀기도 하고, 

요즘 대학 졸업은 본인들도 안 간다며 오지 말라고 해서 신경을 안 썼는데 

이 녀석이 졸업을 하지 않은 거였다.

그때는 뇌사자 이식만 생각했던 때라 삶에 대한 희망 자체가 없어서 

대학졸업도 의미를 두지 않았다고 하니 이건 이해를 해야 할 문제지 책망을 할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런 아들이 이직을 하려 하니 대학 졸업장이 필요했나 보다.

이번에 마지막 학기 수강을 하고 만학도로 졸업을 했다.


이번에 들어간 직장도 중소기업이기는 하지만 규모가 작지 않고, 

출장근무가 많으니 자유로울 것 같은데 경력이 좀 생겼다고 몸이 근질근질 한가보다.

아들의 전공은 광고분야인데 현재 하는 일은 프로그램 개발 분야다.

자기도 이쪽 일이 이렇게 적성에 맞을 줄 몰랐다고 한다.


이식 수술 후 장애인 공단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 개발 관련 교육을 국비로 6개월 정도 받았었다.

당시 강의를 하던 교수의 추천으로 중소기업에 지원을 몇 번 했고, 

지금의 직장에 들어가게 된 거다.

요즘은 기업이 장애우를 고용하면 세제 혜택을 주는데 그게 작지 않은 금액이다.

아들도 이식을 하긴 했어도 경증장애우에 해당되므로 기업에서는 메리트 있는 선택일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회사에서 아들의 장애를 잘 모르는 경우들이 있다고 한다.

회식을 할 때마다 술을 사양하게 되고, 그 이유를 말하다보다 이제는 장애우인 것을 안다고 한다.


6개 월남짓 배운 실력이지만 입사해서 실무를 통해 많이 배우기도 하고, 

적성에 맞는 일이다 보니 자기 스스로 강의를 듣고 공부도 하게 되어 실력이 쌓였나 보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데 

그 많은 길을 돌고 돌아 자기 일을 찾은 아들을 보며 

결국엔 제자리를 찾는데 왜 이렇게 키울 때는 안달복달을 했는지 모르겠다.


아들에게 여자친구가 있다.

공단에서 하는 프로그램 교육을 할 때 알게 된 아이인데 나와 만났을 때 인상은 '아깝다'였다.

아들은 말 그대로 연애를 수도 없이 하고, 돈도 안 모으고 소비만 하며, 착하지도 않다.

그런데 그 아이는 참 맑았다.

적은 급여지만 알뜰하게 모아 목돈도 만들 줄 알고, 반듯하게 잘 자랐다.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우라는 것만 아니면 내 아들을 만나지 않았을 것 같다.

나이도 한참 어려서 과연 이 관계가 오래갈까 싶긴 하지만 그래도 꽤 된 것 같다.

그 아이의 어떤 점이 좋았냐고 하니까 그 아이들 만나면 자기가 욕도 안 하고 착해지는 것 같다고 한다.


선한 영향력을 주는 아이구나...


종종 다투기도 하지만 극단적으로 치닫게 되는 경우는 없다고 한다.

다만 신앙이 다른 것이 걸림돌이라 그게 가장 큰 고민이라고 한다.

그런 걸 고민한다는 건 믿음이 생겼다는 건데...

반가운 일이다.

짧다면 짧은 인생.

값지게 잘 살다 가자.


PS. 오늘로 신장이식 일기는 끝맺습니다.

물. 심 양면으로 관심 갖고 지켜봐 주신 분들께 정말, 진짜, 찐으로 감사드려요.

이제는 좌충우돌 저의 사는 삶, 오늘의 이야기로 찾아뵐게요~

밖에서 보면 시트콤이지만 들여다보면 비극일수도 있는 이야기 ㅋㅋㅋㅋ

들려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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