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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걸음씩 Jul 03. 2024

모성애의 사각지대

딸아... 미안해....

출산을 하고 인큐베이터에 아기를 두고 나온 산모처럼 아들을 두고 퇴원했다.

수술했던 왼쪽 옆구리 통증으로 잠을 잘 때 돌아눕지 못하니 불편했으나 그 외에는 딱히 불편한 건 없었다.

연차를 내고 병간호를 했던 딸이 입의 혀처럼 나에게 밀착 케어를 해 주었고, 남편도 먹을 간식을 사다 나르며 중환자 떠 받들듯 했다.

여전히 집안 일거리들이 눈에 들어와서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회복하는 동안에는 눈을 감기로 했다.

내가 움직이면 딸이 병간호하는 보람도 없을 것 같고.


"딸내미~ 엄마 산책 갈 건데 같이 갈래?"


움직일 수 있는데 집에만 갇혀 있는 게 답답해서 딸에게 산책이라도 하자고 했다.

신도시라 산책할 수 있는 편한 길이 많은 게 참 좋다.

좀 쌀쌀한 날씨라 옷을 여러 개 껴입고 나서자 딸도 후다닥 패딩점퍼를 걸치고 따라나섰다.

가끔씩 가는 카페거리를 따라 도란도란 딸과 대화하며 걷는 기분이 편안하고 따뜻했다.

디저트가 맛있다며 가끔 들렀던 카페가 보인다.

평소에도 사람이 별로 없는 게 마음에 들어서 갔던 곳인데 그날도 역시 한산하다.

창가 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무래도 수술 후라 나는 커피 대신 허브차를 주문했고 딸은 커피와 디저트를 주문했다.


"간호하느라 힘들었지? 너 덕분에 난 정말 좋았어. 어쩜 그렇게 간호를 잘하니?"


딸은 내 말에 기분 좋은 듯 웃으면서 이야기를 조잘조잘 이어갔다.

그러다가 간호하면서 힘들었던 것은 화장하지 않고 있어야 하는 것이었고, 그래서 집에 다녀오겠다고 했는데 이모가 엄마 혼자 두고 간다고 뭐라고 했을 때 너무 미웠다는 말을 했다.

의외였다. 

그런 마음이 들었었구나...

그렇게 시작된 딸의 불만이 눈물로 바뀌었다.


"어머 왜 울어? 뭐가 그렇게 힘들었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딸의 모습에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병간호가 힘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엄마. 난 엄마 간호하는 건 정말 하나도 안 힘들어.

근데 엄마가 왜 아파야 되는데?

왜 말짱했던 엄마가 00 이한테 신장을 주고 아파야 하는데?

난 그게 너무 서운하고 화가 나"


투석을 하면서 힘들어했던 동생 모습을 모르는 바도 아닐 텐데 딸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

그리고 한 달여 동안 이식을 위해 검사다 뭐다 병원엘 왔다 갔다 했던 것도 다 아는데 정말 새삼스러웠다.


"아니... 그게.... 갑자기 한 것도 아니고 너도 알고 있었잖아...."

"알아. 나도 알고는 있었지.

근데 엄마가 나한테 동의를 얻은 건 아니잖아.

가족 동의가 필요하다면서 왜 나한테는 안 물어봐?

엄마는 내 엄마는 아니야?

왜 맨날 엄마는 00이 엄마만 하는 건데!

왜 내 엄마는 아닌 건데?"


아......

정말 내 수술과정에 딸은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딸에 대한 배려는 하나도 없었다.

연차를 내서 방간호를 해줄 수 있는지 묻는 게 전부였다.

머리를 크게 얻어맞았다.

멍하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나도 눈물만 주르륵 흘리며 딸의 얼굴만 보고 있었다.


"엄마는 어릴 때도 00 이가 아프다고 맨날 나한테 챙기라고 했잖아.

나도 걔보다 한 살밖에 안 많은데 밥도 챙겨주라고 하고.

엄마는 내가 무슨 음식 좋아하는지도 모르지?"


자라면서 한 번도 표현하지 않았던 감정이다.

동생을 놓고 엄마의 편벽된 사랑에 대해 서운하다 말하는 것...

저런 말들이 갑자기 떠오른 건 아닐 테고, 살면서 계속 느꼈을 텐데 어떻게 담고 살았을까.

문제가 있는 자식이 하나 있으면 나머지 자식은 애정과 관심의 사각지대에 놓일 수밖에 없다는 걸 간과했다.


사실 아들이 신장이 안좋기는 했어도 놀거나 생활하는데 제약이 있었던건 아니다.

그러니 딸에게는 말짱한 동생이 그걸 이용해서 누나를 편하게 부려 먹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억울했겠다.


"그렀구나...

엄마가 정말 미안해.

정말 몰랐네.

어떻게 너한테 해야 너의 그 서운한 마음이 풀릴까.

정말 미안해. 

엄마가 잘못했어."


뭘 해달라고 하면 그게 뭐든 해주고 싶었다.

평소에 미워하던 동생에게 엄마를 뺏긴 것도 속상한데 엄마의 신장까지 뺏기고 결국 엄마는 아픈 몸이 되어서 그 병시중은 자기가 하고 있으니 이렇게 분하고 억울할 데가 또 있을까 싶었다.

그 당시만 해도 딸과 아들은 원수지간이 따로 없었으니까.


"엄마가 사과해서 이제 괜찮아졌어"


진짜 할 말 없게 만드는 딸이다.

사과를 받으니 마음이 풀렸다고 하니....


그 날. 

그 자리.

그 기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처음으로 딸의 얼굴을 제대로 본 날이고 딸의 마음을 제대로 본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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