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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걸음씩 Jul 29. 2024

T엄마라서 해 줄 게 없어.

[차라리 또 다른 장기 이식을 해 달라면 해줄 텐데...]

어제 친정엄마를 만났지만 아들의 암 이야기는 하지 못했다.

아흔이 가까워오는 엄마는 당신의 질병만으로도 매일 나에게 기도 좀 해달라고 하신다.

나뿐만 아니다.

누굴 만나든 자신의 병자랑(?)을 하신다.

그런 엄마에게 아들의 이야기를 하면 하루 종일 그 걱정을 하며 안 그래도 평소 잦은 전화로 귀찮아하는 나에게 더 자주 전화를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아들도 이런 마음일까.

내가 걱정이 되어 말을 하면 다음 말이 더 나오지 않도록 대화를 매듭지어 버린다.

애써 쿨한 척하며 특유의 개그로 잘 승화시키기도 한다.

그런데 누나와의 대화를 보니 그게 아들의 본모습이 아니다.

아침에 딸이 동생과 나눈 카톡 내용을 캡처해서 나에게 보내 줬다.

(이렇게라도 아들을 알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긴 카톡 내용의 요점은 그렇다.


'난 아직 모르겠다.

왜 내가 이렇게 연거푸 건강에 대한 고난을 겪어야 하는지 해석이 안된다.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한다.

전이가 된 건지, 암이 몇 기 인지도 모르는데 대학 병원 예약은 왜 그렇게 멀리 잡힌 건지...

모든 게 화가 날 때가 있다.'


당연한 반응이다.

꼭 아들뿐 아니라 모든 암환자들의 첫 반응이 '진단 부정'이라고 하니...

그러나 나는 아들의 건강보다 마음이 더 걱정이다.

더 다치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 때문에 아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른다.


동생이 지구상에서 가장 웃긴 애라고 말하는 딸은 동생과의 카톡 내용도 유쾌하다.

아들이 자기가 오래 못 살 수도 있어서 돈을 쓰기로 했다며 평소 갖고 싶던 선글라스를 구입했다고 했다.

(얼마 전 일본 여행 때 면세점에서도 값비싼 선글라스를 만지작거렸던 기억이 난다)

그걸 보니 아직 상태가 아주 나쁜 건 아닌가 보다. 

그 말에 딸은 

'그렇게 돈 쓰면서 왜 나한테는 밥 안 사?'

라고 답변을 하니 

'좋아. 이번엔 내가 특별히 사준다. 당장 내일 만나'

라며 응수를 하고...


주말에도 동생이 왔을 때 요양쇼핑이라며 데리고 나가서 카페도 가고 아이스크림집도 갔다고 한다.

보통 딸이 1차를 사면 동생에게 꼭 2차를 사게 한다.

얻어먹는 근성을 고쳐야 한다며.

그런데 이번엔 자기가 암환자를 위한 특별배려로 1차와 2차를 다 샀다며 


"이제 너한테 농담으로 죽어~라고 했던 말도 암환자니까 안 할게"


라고 했더니 그 말이 더 약 오른다며 웃었단다.

그러면서도 딸이 뼈 있는 말을 한 번씩 하는데 그게 동생에게 먹히는 것 같다.

우리 가족의 가장 큰 문제는 고난이 닥쳤을 때 그걸 고난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개그로 승화시키면서 억지로 잊으려 하는 거라며 그러니 결국에는 낙심이 되는 거라고 했다.

그 말은 딸과 내가 평소에 했던 이야기라 가치관으로 자리를 잡았다.

문제를 정확히 볼 줄 알아야 대처도 하고 해석도 해서 상처로 남지 않는데 적당히 묻어두려 하는 게 있다.


이제 막 암이라는 진단을 받았으니 보통의 암환자들처럼 부정-원망-인정의 과정을 겪게 되겠지.

이러니 부모들은 차라리 내가 아픈 게 낫다고들 하나보다.

정말 내가 대신해도 나는 충분히 괜찮을 것 같은데 말이다.


내일 저녁 약속에 딸은 분명 나를 초대할 것 같아서 미리 거절했다.

둘만 만나라고...


이기적인 마음인지도 모르겠으나 할 말을 제대로 못하는 나도 불편하고 아들도 엄마인 내가 있으면 자기 속내를 다 털어놓지 못할 것 같다.

눈물이 나면 울기도 해야 할 것이고, 원망하고 싶으면 원망도 해야 할 테니까.


딸이 아들에게 보낸 톡에

"나는 정말 힘들 때 하나님이 원망스러워서 큐티책 다 찢고 유성매직으로 뻑큐 막 써놓고 하나님한테 육성으로 욕했잖아. 나한테 왜 이 지랄이냐고"

라고 말을 하니 아들은

"난 그렇게까진 못하겠던데? 더 씨게 처맞을까 봐. 그렇지만 큐티책은 딱 대"

라고 농담을 하며 주고받은 대화를 내가 어찌 감당을 하겠는가 말이다.

거기서 또 부모질을 하며 그래도 그러는 건 아니지. 어쩌고 저쩌고... 할 거 아닌가 말이다.


더 낳았다면 좋았겠으나 둘을 낳은 것만 해도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리고 더 감사한 것은 교회라는 한 공동체에 속해 가면서 이 문제를 신앙적으로 서로 해석해 주고 위로해 주는 것도 감사하다.

어제 목장에서 암이야기를 나누었더니 개인톡으로 기도해 주겠다는 사람도 있고, 먼저 수술을 받은 사람이 병원도 추천해 주면서 더 빨리 수술할 수 있는 방법도 일러줬나 보다.

위로가 됐다고 한다.


혼자 외롭지 않아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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