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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야 May 03. 2022

32. 노가다에 자신이 있다면, 쏨땀

손님맞이 태국요리 한 상 1

 드디어 친구들이 왔다 갔다. 미리 이것저것 장도 보고 계획도 하고 준비한다곤 했지만, 흔한 초보들이 그렇듯 온갖 실수로 긴장만 잔뜩 하게 됐다. 친구들이 오는 날 새벽에는, 애들이 오기 직전에 깨서 아무 요리도 못하고 멘탈이 나가는 꿈까지 었지 뭔가. 눈 떠보니 새벽 5시라 가슴을 쓸어내렸는데,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었다. 역시 안 하던 짓을 하면 사람이 병이 나나 보다. 다시는 손님을 초대하지 않으리라 외치며 주말임에도 일찍 눈을 떠 일을 시작했다.

구글에서 검색한 똠카와 그린커리

 지난 번에 메뉴는 미리 골랐었는데, 그 중 사먹으려던 똠얌꿍 대신 똠카까이를 만들어 보기로 하면서 메뉴를 조금 수정했다. 똠얌은 빨개서 그린커리랑 어울렸는데, 똠카는 아무래도 그린커리랑 비주얼이 비슷할 것 같은 거다. 근데 집에 미리 주문해 둔 커리는 그린커리 뿐이어서 반쯤 포기하다가, 금요일에 병원 가는 언니 차를 얻어 타고 큰 마트에 가서 레드커리를 하나 겟챠. 사오려던 고기는 그 마트엔 없어서 집에 가는 길에 트레이더스도 또 들렸다 왔다. 어쨌든 재료는 거의 다 모았다! 냉장고에 자리 하나 남지 않을 정도로 꽉꽉 채웠다.

파파야 중과와 마크아 가지. 가지는 올해 모종도 샀다.
저번에는 냉동으로 먹었는데, 기왕 배송비 붙는 김에 생으로 먹자 싶어서 같이 지른 롱빈.
똠얌세트. 잘 안보이지만 뒷면에 갈랑갈도 들어 있다. 칼리프 라임잎은 생을 구하고 싶었지만 건조였다...ㅠ

 저번에는 마켓컬리에서 그린파파야를 샀었는데, 크기는 좋았지만 약간 익어가는 느낌이 들었어서 이번에는 다른 재료들과 함께 네이버스토어의 국내 재배하는 농장을 도전해 봤다. 커리에 넣을 태국 가지(마크아 가지), 똠카를 만들 때 쓸 똠얌세트(레몬그라스, 칼리프 라임잎, 갈랑갈), 쏨땀에 넣을 롱빈과 라임까지 주문했다. 고민하다 라임도 샀었으나, 배송 누락이 되면서 라임즙으로 하게 돼서 조금 아쉬웠다. 마트 가기 전에 미리 봐둘 것을.... 마트도 여러 군데 갔는데 못 사서 아쉬웠다.


 쏨땀 만들기는 지난 번에도 올렸지만 고생했기도 했고 그 때는 사진만 올렸던 것 같아서 다시 올려본다.

  

쏨땀, 쏨땀타이 만들기(파파야 샐러드)

1인분 기준 재료: 채 썬 그린파파야 3/4컵, 채 썬 당근 1/4컵, 2cm 크기로 자른 롱빈 한 줄기, 빨간 고추 한두개(취향껏), 마늘 한 알, 방울토마토 2알(반으로 자르기), 간 건새우 1큰술, 구운땅콩 1큰술, 라임 한두조각(혹은 라임즙 1큰술), 팜슈가 1큰술, 피시소스 1큰술(또는 간장 1/2큰술과 소금 1/2큰술), 타마린드소스 2큰술(또는 라임즙 2큰술)

1. 채썬 그린 파파야와 당근을 잘 섞어둔다.
2. 절구를 이용해 마늘과 고추를 빻는다.
3. 절구에 건새우와 땅콩을 추가하고 빻는다.
4. 절구에 타마린드소스, 피시소스, 설탕, 라임즙을 넣고 섞는다.
5. 롱빈, 파파야, 당근, 토마토를 넣고 잘 섞는다.
6. 접시에 옮겨 담고 땅콩을 위에 뿌려서 내놓는다.

 쏨땀을 할 때마다 느끼는데, 절구가 사고 싶다. 절구가 재료들을 잘 짓이기고 빻아서 맛이 다 스며들게 하는데, 그냥 만들면 저 맛이 잘 나지 않아서 하루이틀 정도 미리 만들어서 스며들게 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그래서 방울토마토를 레시피보다 많이 넣는 편이다. 뭔가 더 감칠맛이 나는 기분이기도 하고, 국물도 많아져서 좋다. 예전에 쏨땀 소스를 태국에서 사 와서 언니들이랑 먹었을 때 언니들이 남은 소스가 아깝다고 방울토마토만 추가해서 계속 먹었던 기억이 있어서 더 많이 넣게 되는 것 같다.


 아무튼 절구가 없어서 나는 각 재료를 열심히 잘 부수어 섞어야 했다. 레시피는 1인분이지만 친구들이 꽤 올 것이라 2인분을 만들었다(삼사인분을 만들려고 했으나 가능한 그릇이 집에 없었다). 엄마한테 받아 온 볶은 땅콩은 껍질이 있어 잘 까고 난 뒤, 비닐에 넣어 망치로 부쉈다. 다른 걸로는 잘 부숴지지 않았다. 다진마늘은 큐브를 사용하고, 건새우는 보리새우를 손으로 잘게 부쉈다. 그러다 찔려서 하루이틀 따가웠긴 했지만 이게 또 뭔가 기계를 쓰기는 애매하다.


 나머지 재료들은 레시피대로 잘 다듬었다. 재료만 있으면 섞는 게 어렵진 않는데, 왼쪽 어깨를 쓰지 못하는 바람에 채칼을 쓸 수 없어서 일일이 다 칼로 채써느라 정말 시간이 많이 들었다. 칼질을 잘 못해서인지 뭔지 손목에 날카롭게 통증이 생겨서 중간부턴 손목보호대도 해야 했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아플 일인가...?


 라임은 안와서 슬프긴 했지만, 집에 있던 골프공보다 작은 작년 라임나무의 마지막 열매를 알차게 짜 넣고 라임즙까지 야무지게 넣어서 그래도 보완하긴 했다. 그치만 가능하다면 커다란 라임을 하나 통으로 넣으면 정말 향이 다르다! 정말 맛있어진다. 팜슈가 1큰술은 설탕 1티스푼으로 대체하는 것 같고, 피쉬소스는 액젓으로 대체하기도 하는 모양인데 나는 그냥 둘 다 사서 두고두고 쓰고 있다.

롱빈은 2cm 단위로 잘 썰고(썬 사진은 따로 안 찍어서 커리용으로 대체), 방울토마토는 반으로 자르다 너무 큰 애들은 쿼터로 잘랐다.
이틀에 걸쳐 각 1시간 반 이상 잘랐던 파파야와 당근. 손목이 너무 시큰거린다.
우리집 귀여운 마지막 라임이까지 잘 즙을 내어 섞어놓고, 버무려주면 완성.
하루 보관해둔 뒤 상에 내갈 때 땅콩을 더 뿌려줬다.

 그래도 추천받아 사 온 달달한 트레이더스 양념토시살과 잘 어울렸고, 파파야가 고기 소화에도 좋아서 고기를 잘 못 먹는 내게도 맞춤형이었다. 일단 비주얼이 화사해서 좋다. 절구 맛이 없어서 아쉽긴 했지만, 이만하면 집에서 만든 것 중에선 손꼽을만 하지 않으려나. 단점은 한 번 파파야를 사 오면 최소 4인분 이상 나온다는 점이라서, 자취생이 평소에 자주 해 먹기는 조금 아쉽긴 하다. 다음 주말까지 남은 재료를 보관했다가, 본가에서도 한 번 더 해 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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