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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디 Jan 28. 2022

내겐 너무 과분한 사람을 좋아한다면

베르나르 뷔페와 에나벨 뷔페

짝사랑을 시작한 친구들은 늘 그 사람이 자신보다 멋지다고 생각해요. 물론 어느 정도 멋지고, 매력적인 부분이 쌓이고 쌓여서 좋아하나 봐! 한 거겠지만, 가끔 너무 심하다 싶을 정도로 과분하게 보는 경우도 있죠. 한 명은 나이가 너무 어려서 안될 것 같다고 하고, 어떤 친구는 나이가 너무 많아서! 그 사람이 너무 과분하다고 하더라고요. 나보다 경력도 있고, 글도 쓰고, 노래도 부르고, 악기도 할 줄 알아서 나에 비해 너무 과분해! 하지만 사실 그런 생각들을 들여다보면 본인한테 놓아주는 예방주사 같을 때가 많아요. 쟤가 나를 좋아해 주면 좋겠는데, 그게 아닐까 봐 두려워서 미리 겁먹고 나에겐 너무 과분한 사람. 점찍어 놓는 거죠. 그 사람도 호감을 느끼면서 아, 쟤는 나한테 너무 과분해하고 있을지도 몰라요.


1950년 파리에, 젊고 잘생기고 롤스로이드를 타고 성에 사는 화가가 있습니다. 프랑스 미술 역사상 처음으로 스무 살에 '비평가 상'을 수상한 화가이고, 전시회를 한번 열면 그 도시는 마비돼요! 작품들은 당대 최고의 화가였던 피카소의 그림보다 높은 값을 받습니다. 우리 모두 아는 이브 생 로랑과 프랑수아즈 사강과 절친이고요. 이 남자 얼굴 한번 볼까요?

베르나르 뷔페

네, 정말 잘생겼죠. 거의 연예인 급인데? 하신다면 네 그는 거의 연예인이었습니다. 그의 그림을 사랑한 건지, 얼굴을 사랑한 건지 모를 아무튼 열성 팬들이 돈을 모아 그의 전시회를 직접 열어주기도 해요. 이 정도면 어떤 여자가 생각해도, 그 남자는 나한테 너무 과분해! 할만한 남자죠?


아나벨 뷔페와 베르나르 뷔페

이런 그에게 첫눈에 반한 여자가 있습니다. 당시 가수와 모델로 활동했던 아나벨 뷔페예요. 그녀는 뷔페의 인기가 절정에 올라서 프랑스에 '뷔페는 하나의 현상이다!'라는 문구가 온 신문에 장식될 때 그를 처음 만납니다. 누구에게나 그는 과분한 남자였죠. 아나벨은 그에게 숨김없이 호감을 표현하고, 거침없이 사랑해요. 그런 아나벨에게 점점 빠진 뷔페도 그녀를 사랑하게 됩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영감을 주는 사이였다고 해요. 그녀가 책을 쓰면 뷔페가 그림을 그리고, 뷔페가 전시회를 하면 아나벨은 전시회 소개 글을 썼습니다.


베르나르 뷔페 - 양파 정물화 (1948)

모든게 완벽해 보이는 뷔페가 처음부터 완벽했던 건 아닙니다. 그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고, 그의 시대는 끔찍하게 비어있는 시대였어요.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고, 심한 굶주림으로 사람들이 죽어갔습니다. 그는 풍성함보다는 아무것도 없는 건조한 어린 시절을 보냈죠. 그림을 보면 긁힌 흔적들이 있는데, 그의 스트레스 해소법이었다고 해요. 그림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몸을 녹이러 루브르 박물관을 방문했고, 주변에서 미술재료를 선물해주어야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고 합니다.


머리 (tete) - 베르나르 뷔페

1944년, 어린 뷔페의 동네에 미사일이 떨어저 수백 명이 죽는 참사가 발생합니다. 어렸던 그는 미사일이 떨어지는 순간부터 수백 명이 죽는 순간을 모두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아요. 나는 살아있는데, 죽음이 보였다. 그는 그 순간을 이렇게 회상합니다.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났지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그는 사랑의 소멸을 느껴요. 아버지는 어머니가 죽자 다른 여자와 바람이 나고, 형은 징집된 형태여서 그는 세상에 홀로 남습니다. 열여덟 살의 뷔페는 미대를 자퇴하고, 세상과 단절해 방에서 그림만 그립니다.


와인 한 잔 그리고 여인 - 베르나르 뷔페 (1955)

그가 세상에 그림을 들고 세상에 나왔을 때, 파리는 열광합니다. 전쟁의 고통을 그대로 드러낸 시대공감과, 강한 직선에 모두 주목해요. 그는 보이는 그대로 표현하는 구상화가 입니다. 사람들은 명확하게 현실과 아픔을 그려낸 그에게 '구상의 왕자' 라는 별명을 붙여줘요. 생기와 초점이 사라진 눈동자와, 강한 가로 직선의 주름, 쩍 갈라진 벽의 모양과 상의 모양에서 외로움과 고통이 느껴지죠. 이 시기 성공으로 그는 드디어 물감을 사고, 새로운 표현 기법을 시도합니다. 이후 '미술계의 현상'으로 등극해요.


두오모 대성당 - 베르나르 뷔페 (1972)

삶에 시련은 누구에게나 오는법, 너무 완벽했기에 그는 따돌림받기 시작합니다. 1960년대로 들어서며 그의 명성이 추락하기 시작해요. 가난한 시기를 지나 부자가 되니 돈을 받고 그림을 그린다는 비판부터, 안정되어 풍경을 그리는 그에게 초심을 잃었다는 가혹한 평가가 쏟아집니다. 강도가 거세져 1960년대에 뷔페의 전시에는 프랑스 평론가들이 단 한 명도 방문하지 않았다고 해요. 앙드레 말로는 "위대한 미술은 더 이상 구상적이지 않다"며 뷔페를 대놓고 비판합니다.


하지만 뷔페는 누군가 자신을 욕해도 반박하지 않습니다. 평론가들에게 비난을 받을 때도 혼자 괴로워 했을 뿐 맞서지 않아요. 노년의 아나벨이 그때 왜 반박하지 않았느냐, 묻자 그는 "그럴 필요가 없었어. 나를 향한 비난이 나를 더 훌륭한 예술가로 성장시켜줬으니까." 합니다. 정말 멋진 남자죠.


브르타뉴의 폭풍 - 베르나르 뷔페 (1999)

1980년대가 되자 그는 다시 세상에 나오지 않고, 성 안에 틀어박혀 그림만 그립니다. 이 시기 자신이 좋아했던 문학작품들을 그림으로 남겼다고 해요. 노년에 그림을 그리던 뷔페는 1990년 파킨슨 병을 진단받습니다. 몸은 굳어갔고 1999년 오른쪽 손목이 골절돼요. 그는 그림 없이 살아갈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하고, 그 시기 그려진 브르타뉴의 폭풍입니다. 아나벨은 이 그림을 보고, 뷔페의 죽음을 직감해 집에 있는 뾰족한 물건들을 모두 버렸다고 해요.


그 해 가을, 아나벨과 함께 아침산책을 마치고 홀로 작업실에 돌아온 뷔페는 비닐봉지를 머리에 뒤집어 쓰고 삶을 마감합니다. 이후 아나벨의 진심 어린 바람처럼 그의 인생과 작품 전체가 재평가되었고 프랑스에서 그의 회고전이 열리기도 해요. 아나벨은 삶의 끝까지 그의 옆을 지켰습니다.




사랑은
누구도 다치게 하지 않는다.

20대 초반 만났던 한 남자친구가 세 번 데이트를 하고는 결혼하자! 한 적이 있어요. 뭐 연애니까, 나를 그만큼 좋아해 준다니 기분은 좋았지만 그때 직감적으로 아 이 친구는 나를 엄청 좋아하지, 사랑은 아니구나 느꼈어요. 왜냐면! 두 사람이 만나서 호감을 가지고, 엄청 열정적으로 서로를 알고 싶어 하는 그런 기적은 사람의 일생에서 정말 두세 번도 일어나지 않는 일이잖아요. 그만큼 천천히 소중히 다루어야 하고요. 하지만 그 친구는 어린 고양이 같았고 큰 생선을 급하게 먹으려고 했던 게 아닌가 싶어요. 뭐 금방 헤어진걸 보니 사랑도 아니었고, 그냥 저를 많이 좋아해 준 고마운 친구네요.


저는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순간에 정직해지려고 해요. 밀당이나 친구들의 조언에서, 그 남자 애가 타게 만들어! 하잖아요, 그리고 제가 본 친구들은 실제로 그런 전략에 쉽게 애가 타기도 하지만, 그건 연애용이지 사랑에는 실패하는 것 같아요. 진정한 자존심은 자신에게 진실한거고, 저는 진심을 다할 때 상처도 안 받고 후회도 없더라고요. 후회는 언제나 자기 자신을 속인 사람의 몫인 것 같아요.


이상하게! 똑같은 일 년 중 하루인데 막 특별한 날이 있어요. 괜히 그 사람이 했던 말에 속 뜻이 있는것 같고, 얼굴이 커피잔에 둥둥 보이고, 순이를 사랑하게 된 날부터 길거리에 수많은 순이가 걸어 다닌다는 말처럼요. 고백을 하고 대답을 들으러 가는 친구 한 명과 통화를 한 적이 있는데, 한강에 야경이 왕방울처럼 반짝반짝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그거 다 야근하는 사람들의 고통인데, 너한테는 별로 보이네 좋겠다. 했어요.


그 사람이 나한테 조금 과분하게 느껴지면 뭐 어때요. 사랑은 누군가를 아프게 하는 것도 아니고, 누구도 다치게 하지 않는걸요. 연애하다 상처받는 친구들에게 늘 해주는 말인데, 그 사람이 군대에 갔던 연락이 안되던, 아프게 한다면 그건 결코 사랑이 아니라는 거예요. 사랑 속에 끼워져 있는 다른 것들이 아프게 하는 거죠. 누군가 나를 사랑하는데, 나를 아프게 한다? 그건 사랑이 아니죠. 아프잖아요!


그래서 저는 아직 사랑할 준비가 안된 사람에게 길을 내주지 않으려고, 저부터 사랑할 채비를 갖추는 연습을 했어요.  자신에게 노력하는 시간을 갖고, 읽고, 쓰고, 생각하고. 누군가 일부러 제게 상처를 줘도 쉽게 받지 않고, 길거리에서 누군가 도움을 요청하면 흔쾌히  시간을 쓰는 것처럼요. 사실 , 오늘 늦게까지 일을 했는데 버스에서  한강에 야경이 왕방울처럼 반짝반짝하더라고요.


과분한 남자였던 뷔페에게도 깊은 고통이 있었고, 그는 생을 홀로 마감할 만큼 고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의 곁을 끝까지 지키고 사랑했던, 아나벨과 뷔페같은 사랑은 일생에 몇 번 오지 않아요.

그 사람이 과분한 사람처럼 느껴진다면, 오늘 내가 사랑할 채비를 더 갖추면 어떨까요? 아나벨 뷔페의 노래를 듣거나, 뷔페의 풍경화를 보면서요! 노래로는 I can't help falling In Love를 추천할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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