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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디 Jan 20. 2022

돈보다 사람을 보고 결혼해야 하는 이유

고갱과 메테 소피 가드

달과 6펜스, 서머싯 몸의 잘 알려진 소설이죠. 안정적이고 고수익인 직업과 교양 있는 아내와 아이들. 대도시의 부러움을 사는 큰 집에 살고 있는데 꿈이 있다면? 여러분은 그 꿈을 위해 모든 걸 포기할 수 있나요? 서울로 치면 여의도 증권맨에 잠실 한강뷰 아파트, 강남 1 학군에 다니는 아이의 아빠라고 할 수 있겠네요.



달과 6펜스의 주인공 찰스는 모든 것을 버리고 파리로 가서 그림을 그립니다. 육체적인 욕심도 없고, 아내와 아이들을 버린 것에 대한 양심의 가책도 없이요. 자신의 예술성을 유일하게 알아주고 목숨을 살려준 화가의 아내가 자신에게 다가오자 막지도 않습니다. 오직 그림을 그리는 것만이 전부가 된 것처럼 행동하죠.


"그럼 무엇 때문에 부인을 버렸단 말입니까?"
"나는 그림을 그리고 싶소"
"아니 나이가 사십이 아닙니까?"
"그래서 이제 더 늦출 수가 없다고 생각했던 거요."
"당신 나이에 시작해서 잘될 것 같습니까? 그림은 다들 십칠 팔세에 시작하지 않습니까?   (중략)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단 말이오.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 가 문제겠소? 우선 헤어 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

나이 사십에 모든 걸 버리고 화가가 되려는 그를 말리자, 찰스는 우선 헤어 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는다고 말합니다. 저는 가끔 제가 답답하게 느껴질 때 달과 6펜스를 읽어요. 찰스가 하는 말이나, 서머싯 몸이 적어놓은 문장들이 흔히 '뼈 때리는' 조언을 해주기도 하거든요.


'그때만 해도 나는 인간의 천성이 얼마나 모순투성이 인지를 몰랐다. 성실한 사람에게도 얼마나 많은 가식이 있으며, 고결한 사람에게도 얼마나 많은 비열함이 있고, 불량한 사람에게도 얼마나 많은 선량함이 있는지를 몰랐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문장입니다. 성실한 사람에게도 가식이 있고, 고결한 사람에게도 비열함이 있고, 불량한 사람에게도 선량함이 있다! 달과 6펜스 '찰스'의 실제 모델인 '고갱'의 사랑이 그랬던 것 같아요.




고갱은 낮에 주식을 팔고, 저녁에 그림을 그렸다고 알려져 있죠. 고갱은 엄청난 주식 실력을 자랑했고 부르주아의 삶을 살았다고 해요. 그는 1873년 덴마크인인 메테 소피 가드와 결혼합니다. 메테는 너무 아름다워서 별명이 '덴마크의 진주'였어요. 메테는 부르주아의 삶을 꿈꿨고, 고갱을 사랑했지만 사랑보다는 돈을 주요한 목적으로 그와 결혼합니다. 고갱이 돈도 잘 벌고 능력도 있는 것 같으니 고갱과 함께하면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다고 판단한 거죠.


침대에서 잠든 메테 고갱 - 폴 고갱 (1875)


결혼 직후 메테의 판단은 옳았습니다. 그녀는 부르주아의 삶을 누릴 수 있었고 적극적으로 소비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결혼이 안정되고 주식 중개인으로 성공을 거듭하자 고갱은 점점 예술을 꿈꿉니다. 고갱은 일요일마다 독학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주말 독학이었지만, 그는 인상파 전시에서 그림도 몇 점 판매하고 가능성을 인정받았다고 해요.


책과 꽃 - 고갱 (1882)

부르주아의 삶을 위해 결혼했던 메테의 선택은 프랑스 증권시장 붕괴로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고갱은 실직하게 되고, 이 계기로 화가가 되기로 결심해요. 그의 나이 서른다섯이었습니다. 두 사람에게는 다섯명의 자녀가 있었고요. 하지만 고갱은 수입이 사라졌음에도 미술에만 몰두해요. 그림은 잘 팔리지 않았고 둘은 결국 메테의 친정에서 지내게 됩니다. 당시 메테의 부모님이 고갱을 싫어해, 그는 가족들과 떨어져 다락에서 혼자 지냈다고 해요.


그림이 성공하지 못하자 그는 고민하고 '혁신'을 찾아 나서기로 합니다. 답답한 도시에서 그림을 그릴 수 없다고 판단한 거죠. 어린 시절을 페루에서 보냈던 고갱은 페루에서 느꼈던 강렬한 색을 찾겠다! 고 하며 남프랑스로 떠납니다. 그곳에서 원색을 발견하죠.

황색의 그리스도가 있는 자화상 - 폴 고갱 (1890)

고갱의 자화상인데요, 그리스도를 황금색으로 칠하고 자신과 그리스도를 비교했습니다. 이 그림은 신성모독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어요. 고갱은 스스로를 '예술의 선구자'라고 여겼다고 해요. 자신의 예술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작품을 비판할 뿐 자신의 그림에는 전혀 문제가 없고, 혁신적인 작품은 자신감의 표현이었다고 합니다.


파도 속의 여인 - 폴 고갱 (1889)

빨간색과 초록색의 대비가 잘 드러내는 이 그림을 그리고 고갱은 파리로 돌아가겠다고 결심합니다. 색을 하나의 면으로 이어서 쓰고, 파란색의 파도가 아닌 초록색의 파도를 표현했죠. 모든 사람들이 아는 인공적인 예술이 아닌, 자연에서 자신만의 색을 찾아 그림을 그리는 혁신! 그는 이것으로 파리를 놀라게 할 수 있다며 파리로 향합니다. 그는 원시적인 것에서 예술을 찾았지만 누구보다 돈과 성공에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어요.


고갱은 파리 마지막 인상주의 전에 참가합니다. 하지만 이때! 모두가 한 번쯤은 봤을! 쇠라의 점묘법이 소개됩니다. 그랑드 자르트 섬의 일요일 오후가 소개된 거예요. 쇠라는 30대 초반 갑자기 사망한 상태였고 작품의 희소성이 더해져, 모든 관심은 쇠라에게로 쏠립니다. 고갱의 새로운 예술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어요. 이 시기 고흐는 그를 노란 집에 초대했지만, 고흐가 귀를 자르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고갱은 고흐와 헤어진 후 타히티로 가겠다고 결심하죠.


타히티의 여인들 - 폴 고갱 (1892)

타히티로 간 고갱은 한동안 그림에만 몰두합니다.  이후 그린 그림을 몇 점 들고 파리로 향하죠. 하지만 그는 또다시 패배를 맛봅니다. 파리의 대중들은 그의 작품성에는 관심이 없었고, 전시회는 대실패로 돌아가요. 이 시기 그의 아내인 메테가 이혼을 통보합니다. 또 자신을 따라 파리에 온 타히티 여인 안나를 지키려다 불량배들에게 다리를 다치고, 안나는 고갱이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고갱의 집과 작품을 모두 털어서 도망가요. 그는 모든 것을 잃습니다.


그의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가장 사랑했던 딸 알린이 죽고, 그는 절망했다고 해요. 결국 고갱은 자살을 결심하고 타히티로 돌아가, 역작인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를 완성하고 독약을 먹습니다.



돈보다 사랑? 사랑보다 돈?

고등학교 때 자본주의의 사랑이라는 주제로 글을 쓴 적이 있어요. 수상을 했는데, 윤리 선생님께서 그 글을 보시고 저를 불러서 <봄날은 간다> 대사를 얘기해주셨던 생각이 나요.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대사를 말씀하시더니 "돈이 없으면 사랑은 변한다!" 하셨어요. 돈이 있어야, 사랑도 할 수 있고 밥도 먹고 잠도 자고 한다고요. 그러면서 저에게 너무 순진하게, 밝은 면만 보고 세상을 살면 힘들어지는 순간이 온다고 하셨어요.


당시 세월호 사태에 이어서 국정농단 사태가 연달아 있었어서, 20대에 어떤 경험을 해야 좀 더 좋은 어른이 될 수 있을까를 많이 고민했어요. 돈을 보고 결혼하는 삶이나, 아파트를 따져가며 친구를 사귀는 일, 명품으로 누구를 판단하는 사람이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것보다 더 좋은 가치가 있을 거라고 믿었거든요. 최저시급으로도 입에 풀칠은 할 수 있는 요즘, 때로는 숫자가 없는 가치를 원해보는 게 더 행복할 것 같아요. 괴로운 직장은 접고 커피를 만들거나, 피아노를 연습한다거나 재즈바 계획을 세워보는 것처럼요!


고갱은 독약을 마셔서 죽지 않습니다. 모두 토해내고 남은 삶을 살아가요. 그즈음 파리에서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타히티 섬에서 독특한 작품을 보내는 괴물, 위대한 미술가'로 불립니다. 다시 파리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그는 환상을 지키라는 평론가들의 의견에 타히티에서 심장마비로 죽습니다.


전에도 적었지만, 저는 사랑이라는 이름 안에 모든 사랑은 다 같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메테의 사랑이 고갱이라는 사람을 향했다기보다는 그의 돈을 향해 있었고, 그 사실이 고갱을 더 외롭고 힘들게 했을 것 같아요. 메테의 사랑이 무엇을 향했는지 알았기 때문에 고갱은 그녀와 가족을 쉽게 떠났던 건 아닐까요? 저는 메테와 고갱의 사랑보다는, 지독한 가난에도 행복했던 모딜리아니와 잔의 이야기에 더 끌리고 소명에 따라 사랑한 고흐와 시엔의 이야기에 더 감동받습니다. 그런 사랑을 하고 싶어요.


오늘은 달과 6펜스의 문장으로 끝내보려고 해요! 사랑에 빠져 있다면, 함께 읽어보면 좋을 것 같아요. :)


사랑은 몰입하게 한다.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를 잊어버린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제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머리로는 알지 모르나 - 자기의 사랑이 끝난 것임을 깨닫지 못한다.

환상임을 알지만 사랑은 환상에 구체성을 부여해준다. 사랑하는 이는 사랑이 아무것도 아님을 알면서도 사랑을 현실보다 더 사랑한다. 사랑은 사람을 실제보다 약간 더 훌륭한 존재로, 동시에 약간 열등한 존재로 만들어준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이미 자기가 아니다.

- 서머싯 몸 <달과 6펜스>, 159p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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