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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
사랑에 대하여

02. Friday 3:13_썸머

‘사랑.이라고 쓰고 나니, 뒤를 쓸 수 없게 되었다 ’
 -다자이 오사무 ‘사양’
 사양의 저 구절을 한동안 멍하니 읊조리며 곱씹었던 기억이 있다. 책을 다 읽고 나서도 뇌리에서 떠나지 않던 문장이었고 그 후 몇 년 동안(현재까지도) 내 인스타그램 소개글에 적혀있는 구절이기도 하다.
 사랑이란 단어는 참 묘하다. 한없이 가슴을 뛰게 하는 단어이기도, 끝없는 절망을 느끼게 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하늘과 땅 같은 차이를 모두 아우르는 참 묘한 단어이다.
 이 묘한 단어로 인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조차도 많은 생각이 스쳐간다. 뒤를 쓸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나는 이런 속성을 가진 사랑이라는 단어를 좋아하고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관계에는 어떠한 형태이든 그 안에 사랑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남과 여, 부모님과 자녀 같은 직접적인 관계에 존재하는 것 외에도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시기, 질투. 또는 타인에게 느끼는 모든 감정이 사랑 안에 존재하고 때로는 행동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런 다양한 감정이 녹아있는 이야기를 나는 '유독'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사랑하는 감독인 자비에 돌란의 영화 ‘로렌스 애니웨이’를 손꼽아 좋아한다.
 마미와 함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자비에 돌란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영화이다. 또한 앞서 말한 사랑에 관한 다양한 감정들이 녹아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의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서로에게 서로가 없어서는 안 되는 미래를 약속한 연인이 있다. 행복한 나날들을 함께 하고 있는 어느 날 남자 주인공이 그의 피앙세에게 본인은 사실 예전부터 여자로서 살고 싶었다고 성 정체성을 고백한다. 성전환의 문제가 아닌 그저 더는 남자로 살아가지 못할 거 같고, 앞으로 남은 삶은 여자로 살아가고 싶다고 고백한다. 너무 갑작스럽고 혼란스럽지만, 여자 주인공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받아들인다. 그 후 당당하게 치마를 입고 머리를 기르고 화장을 하며 여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면서 겪는 현실과 연인 간의 얘기이다.
 내 남자 친구였던 사람을 여자로 대해야 하는 혼란스러움 속에서도 그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성으로 맺어진 관계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 보고 계속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부딪혀오는 현실과 공허함에 여자는 결국 그녀를(그를) 떠나게 된다.
 이 영화의 좋은 점은 정말 많지만 나는 그중에서도 사랑에 관해서 얘기해보고 싶다.
 사랑이란 단어가 주는 유대감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도대체 무엇이 그토록 서로에게 끈끈함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일까? 그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사람의 달라진 성 정체성까지 포용하고 함께하려고 하는 모습이 나에게 사랑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보게끔 했다. 
 “그의 곁에서 아침을 맞이하고 싶어”
 “난 그의 팔베개가 필요해”
 그의 고백을 들은 후 이제 어떡할 거냐는 가족의 질문에 여자 주인공은 이렇게 답한다.
 다른 그 무엇보다 그저 그 사람의 곁이 중요하고 필요하다고 말하는 그 대답이 나에게 큰 울림을 줬다.
 이 영화를 두 번째로 다시 봤을 때는 남자 친구와 봤다. 그래서인지 자연스럽게 내 상황에 대입해서 보게 되었고 처음 봤을 때는 발견하지 못했던 더 깊고 섬세한 감정을 더 깊게 느끼게 되었다. 
 나는 현재 7년 차 연인이다. 한 사람과 7년이란 시간을 겪다 보니 사랑이 주는 모든 감정을 ‘어느 정도’는 느끼며 함께하고 있다. (100% 다 느꼈다고 하기엔 감정은 하루하루 새롭다.)
 가끔은 나만의 기준으로 상대방에게 느끼는 부족함과 이해할 수 없는 감정들을 생각하면 더 이상의 공존은 어렵겠다는 결론이 나기도 한다. 하지만 7년 동안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유대감을 쌓은 사람과 가끔이라는 낮은 확률과 순간의 한마디로 인해 완전히 모르는 사람이었던 순간으로 돌아가기란 어렵다. 이미 그 사람의 존재 자체가 나에겐 대체 불가의 큰 의미가 되어버린 후이기 때문이다. 오래된 연인이자 친구이자 가족이 되어버린 사람이 내 이해 범주에서 벗어났다고 해서 무조건 배척하는 것이 아닌 이해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관계에 대한 애정이고 깊이라고 생각한다. 설령 그것이 성 정체성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배신감과는 다른 문제이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사랑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이해는 하지만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해서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내가 중요하게(분명하게) 말하고 싶은 점은 노력이다. 영화에서도 현실에서도 중요한 점은 이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전제와 그것에 따른 결정에 대한 노력이다.
 사랑의 모습은 무엇일까? 간혹 우리는 사랑을 어떤 모습이라고 정의하려고 한다. 순전히 나의 기준으로, 그 기준이 모호한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사랑은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없다. 사랑은 감정적이다. 감정은 수시로 기준이 달라질 수 있다. 나의 기준선이 1mm 달라진다고 그것이 상대방에게도 1mm 일 것이고, 그 정도는 당연히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이기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 오류 때문에 관계가 어긋날 때도 있지만 그 기준점을 맞추려고 하는 연인 간의 노력은 상대방을 이해하고 오류를 찾아내 관계를 더 발전하게 하는 중요한 포인트이기도 하다.
 영화 '로렌스 애니웨이'에서도 그런 순간들을 보여준다. 사랑은 아름답기만 한 예쁜 포장지가 아니라 그 안에 들어있는 현실을 보여주고 사랑을 위해 행했던 모든 순간을 보여준다.

사랑을 위해 보냈던 우리의 소중한 시간들은 결코 사랑이 끝났다고 실패의 모습으로 남는 것은 아니다.
 영화의 결말은 새드엔딩(관계적 시점)으로 끝이 나지만 그 과정을 본 우리에게 사랑의 모습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남겨준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은 내 사랑을 성장시킬 것이다. 


Anyway, I love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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