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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 Mar 19. 2023

좋은 것과 나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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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는 등산로 입구에 서서 주위를 둘러봤다.

생기를 잃은 연주황빛 도시의 전망이 시야의 끝에서부터 펼쳐져 있었다.

미니는 가까운 곳에 불 꺼진 오래된 집들까지 풍경을 한 번에 눈에 담았다.

그리고 어둠 속으로 집어삼켜지듯 걸음을 뗐다.

등산광이셨던 연출과목 교수님께서 등산 한 번으로 지각 한 번을 면해준다고 하셨다.

’의지를 보여주려면 야간산행이 좋겠어‘라고 미니는 생각했었다.

미니는 귀신은 믿지 않았지만, 공중을 부유하는 반투명한 형체가 갑자기 튀어나온다고 해도 그게

특별히 이상하지는 않겠다고 느꼈다.

그렇게 붕괴된 인식을 올라가 비로소 정상에서 시시한 고양이를 만나 인증샷을 찍었다.

그보다는 내려올 때의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데, 그러나 이 또한 야간산행에서 길을 잃어 헤매다가 결국 무사히 내려왔다는 평범하고 시시한 이야기로 끝난다.

해서, 미니는 올라올 때와는 다른 돌 길을, 어느새 흙 길을 이제는 그나마 길마저도 아닌 가파른 경사의 우거진 숲을 헤매고 있었다.

식은땀인지 보통의 땀인지 나뭇가지가 얼굴을 스친 상처에 자꾸만 흘렀다.

내려가면, 일단 내려가면 어디든 나오겠지.

그게 발할라든 지저세계든 어디든.

그렇게 한 시간쯤 지나 숲의 정령이 되려고 할 때쯤 미니는 119에 전화를 걸었다.


"출동해 드릴 순 없고요, 일단 표지판을 찾으시면 길을 알려드릴 순 있어요."


눈에 담았던 황량한 도시의 풍경이 그리워졌다.

그곳에 속해 있는 하찮고 보잘것없는 인간이 되고 싶었다.

'나는 누구지'

세상엔 고통이 있다.

즐거움도 있겠지만 좋은 것과 나쁜 것이 동시에 존재한다면 둘 다 없는 것이 좋다.

0.

아무것도 없는 것.


이야기는 야간 산행에서 길을 잃어 헤매다가 결국 무사히 내려왔다는 평범하고 시시한 이야기로 끝난다.

미니는 헤매던 끝에 표지판을 찾았고 119에 다시 전화를 걸어 어느 방향으로 내려가야 하는지를 물었다.


"지금 정상에 계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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