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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식성 경청꾼 Sep 01. 2023

사랑을 말하다.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심윤경)를 읽고>


 "작가님 ~ 안녕하세요^^“

몸 둘 바 모를 호칭에 경계심이 와르르 무너진다. 생애 처음 브런치의 메일로 제안을 받아본다. 간단한 인사 뒤에 100만 원만 입금해 주실 수 있을는지 물어보셨다고 해도 나는 입금할 계좌 먼저 확인해 보았으리라. 하지만 제안 메일을 주신 분은 평소 즐겨 접하던 브런치와 유튜브를 운영하고 계시는 작가님이셨다. 그럴 리가 없다는 말이다. 짐작하는 제안이 맞을지 조심스레 내리는 스크롤은 금세 새로운 일을 마주했을 때의 즐거움으로 바뀌었다.


 세이럽 TV라는 채널을 운영하고 계시는 작가님들께서는 나의 브런치에 종종 들러주시는 고마운 분들이시다. 당연히 그분들이 운영하시는 유튜브 역시 찾아보았던 덕에 짧게나마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고픈 생각도 있었다. 지금껏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이야기 속에 사랑을 녹였던 적도 많았다. 하지만 막상 사랑을 전면에 내세우려고 하니 부끄러웠다. 1분에서 1분 30초 정도의 녹음을 위해서 필요한 500자 내외의 분량은 평소라면 텀블러 하나 비우기 전에 채울 수 있어야 했다. 근데 나의 입술에 '사랑' 두 글자를 담은 것이 언제였던가? 반면 옛 아이돌 노래 가사처럼 '사랑은 뭐다 뭐다 이미 수식어 Red ocean'이었다. 답이 없었다. 이럴 때는 역시 책장을 기웃거리는 게 제일이다.


 내가 아직 읽어보지 못한 소설들로 유명한 작가가 데뷔 20주년을 맞아 에세이집을 냈다. 내가 태어났을 때 돌아가신 할머니의 사랑법을 그리고 있는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라는 책이었다. 평소의 자신보다 속 좁고 어리석게 만드는 사랑만을 경험했던 내게 '맵시 있는'과 '사랑'이라는 단어만큼 호응하기 어려운 단어들은 없었다. 한편 멋지게 사랑하고 싶은 마음은 늘 가슴속 빈틈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책의 첫 부분에 맵시 있는 사랑이 실존한다는 이야기를 읽고 사랑을 정의 내려야 한다는 부담을 잊을 정도로 책에 꽂혔다. 나는 그저 책 속에서 그리고 있는 할머니의 사랑을 탐닉하기로 했다.


 책은 어린 시절 할머니에게 받았던 사랑을 꿀장아라는 딸에게 대물림하는 작가의 삶을 그리고 있다. 무뚝뚝한 충청도 할머니 특유의 등 따스운 이미지가 30년이 지나 책 속에서 다시 생명력을 가진다. 한편 모든 의사소통 방법이 울음뿐이었던 아이가, '내가 만만해?'라고 쏘아붙이는 사춘기를 지나 고마운 무심함으로 위로를 주는 훌륭한 어른이 되어간다. 한창 힘들 시절이면 귀찮을 관심보다, 서운할 무관심보다는 그 사이 어디쯤에 무심함이 고맙다. 그러고 보면 가장 사랑하는 이들이 떠났을 비탄의 시기에 나는 그저 내게 어떤 말을 해줬으면 한다기보다 내가 어떤 말을 할 때까지 기다려주기를 바랐다. 아이는 어른들의 빈틈에서 자란다는 격언은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일 때 비로소 완성된다.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떠올리면 음성지원이 되는 한 마디씩이 있다. 할아버지는 '욕봤다.', 아버지는 '자알 해쓰~'. 실제 내가 욕본 것이 없어도, 잘한 것이 하나 없을 때에도 그 말만 들으면 모든 상황이 일단락되는 기분이 들었다. 초등학교에서 책가방만큼 처진 어깨로 집으로 돌아왔을 때 할아버지의 방문을 열고 다녀왔다는 인사를 하면 반드시 듣던 그 말, 시험 성적이 좋든 좋지 않든 결과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 아버지 특유의 농담조가 섞인 그 한마디가 지금의 나를 있게 했다. 이렇게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나의 가슴속에 살아 있는가? '죽으면 끝이여.' 단호한 무신론자였던 작가님의 할머니께서 초를 친다.


 죽음 뒤에 보상이 없다면 착하게 살 이유도 없는가? 하지만 사후세계를 믿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도 그들만의 선을 행한다. 어떠한 보상을 받기 위해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니듯,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인다고 하여 그들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결국 이 책에서는 사랑을 '포상이 따르지 않는 노력'으로 정의 내린다. 내 어머니의 사랑이란 아들을 위해 양손 무겁게 반찬을 해주고도 고맙다는 말보다 다 먹지도 못한다는 핀잔을 먼저 듣는다. 수많은 사람에게 수없이 많은 사랑의 정의가 있다면 나만의 정의 하나쯤 더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아마 내게만 의미가 있을 것이다. 오히려 그래서 다행이다.


 "저에게 사랑이란 기꺼이 호구가 될 용기입니다.“


지금의 진심을 담은 한 문장에서 시작했다. 그 뒤의 이야기는 방언이 터지듯 풀려갔다. 초안을 잡고 몇 번을 퇴고한 것만큼은 평소 글을 쓰던 버릇처럼 완성된 글이 생긴다는 포상만으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어색했던 녹음은 한 번만으로도 족했다. 영상 제작 역시 애정이 없다면 지속할 수 없을 노력일 것이었다. 지금의 내게는 글에 쏟는 애정이 가장 소중하다. 아직은 낯선 작가라는 호칭 앞에서 기꺼이 호구가 될 나의 글은 계속되리라.


생각을 공개할 자리가 있다는 자체가 기쁨이다. 첫사랑처럼, 고백 앞에서 더듬거리고 어색하고 풋풋한 목소리를 듣고 싶다면 공유한 유튜브 영상에 한 번쯤 들러주길 바란다. 나 외에도 다양한 사랑의 정의를 들어보고 당신만의 사랑 역시 들려준다면 내 사랑의 정의를 밝힌 경험을 만족스럽게 마무리하기에 더할 나위 없으리라.

https://youtube.com/watch?v=_Nx70YLnptc&si=qIGVgYVxOnQUJmh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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