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해솔길 1코스
눈이 내린다는 일기예보가 틀려줘서 고마웠다. 이른 아침에는 비가 눈이 되어 휘날렸는데 점점 날이 개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 햇살이 비쳤다. 삼일절 연휴 내내 비가 오락가락했기 때문에 햇볕이 얼마나 반갑던지.
"우리 어디 가서 좀 걸을까?"
남편이 이렇게 운을 떼면 대부분 어디로 갈 건지는 내쪽에서 정하는 편이다. 나는 속이 시원해지는 바닷바람을 쐬고 싶었다. 전에 가봤을 때 언젠가 다시 오리라고 다짐했던 곳. 차로 한 시간 안짝에 있는 곳. 그런데 안산시, 서해바다, 바닷길...... 이렇게만 떠오를 뿐 제대로 된 지명이 생각나지 않았다. 몇 가지 단어를 넣어 검색을 해보았더니 안산의 올레길이라며 정식 명칭을 알 수 있었다. 대부해솔길 1코스.
"아, 맞다. 여기였어."
시작점에서 2.1km까지 걷고 다시 그만큼 걸어 나온 끝지점에 서서 사진을 찍었다. 이렇게 반나절 트레킹을 한 어제의 기록이다.
구봉도 공영주차장 바로 앞에 이 길로 가면 된다고 말하는 입구가 보인다. 그 길 따라 올라가면 순식간에 딴 세계가 펼쳐진다. 붉은 흙길이고 주변은 해풍에 구불구불 틀어진 나무들이 빼곡하다. 바람 타고 솔향기가 코끝에 닿는다. 응달진 곳은 날이 풀려 질척거렸는데 그래도 걷는데 큰 지장은 없었다. 낙엽이 쌓인 가장자리 쪽으로 살살 걸으면 미끄럽지도 않고 신발도 망가지지 않는다. 걷다 보면 바다에 온 게 아니라 산에 온 것같은 착각이 들지만, 그것도 잠시 개미허리 아치교를 건너면 파도소리가 들리면서 속이 뻥 뚫린다. 데크길로 따라가면 그 끝에 낙조 전망대가 있다. 낙조전망대를 찍고 되돌아 나올 때는 데크길에서 내려와 해안선을 따라 걸으면 좋다. 선돌을 보고 종현농어촌체험마을로 들어서는데 커다랗게 GUBONGDO 표시를 해놓았다. 다시는 여기가 어디였는지 모르겠다는 말일랑 하지 말라는 듯.
순간 서해바다에 와 있다는 것을 잊게 만드는 풍경이다. 산길 따라 걷다 보면 바다도 보인다.
개미허리아치교는 다리 위에서도, 아래로 내려와서 보는 것도 좋았다. 울퉁불퉁해서 좀 걷다 보면 발이 불편해도 썰물의 혜택을 만끽하는데 아무런 지장을 주지 않았다.
부리 끝이 붉은 갈매기는 가까이 다가가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네가 오늘의 모델하려고?'
대부해솔길 1코스의 하이라이트 낙조전망대. 육지의 끝에서 일몰을 바라볼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일몰이 없어도 이렇게 아름다운데.
우리가 온 걸 어찌 알고, 푹 쉬었다 가라고, 바람은 잔잔하게 불어주고 햇살은 포근하게 감싸준다. 주차장 근처 커피집에서 라떼 한잔을 텀블러에 담아 오길 잘했다. 둘이 전망대 벤치에 앉아 다리 쉼 하면서 커피를 나눠마셨다.
'봄이 이미 와 있었구나!'
둥근 모양에 날개처럼 뻗어나가는 것은 노을빛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30도 각도, 뻗어나가는 미래의 희망을 담았다고 한다. (석양을 가슴에 담다 : 작품 설명글 참고)
석양을 가슴에 담지 못했지만 윤슬, 파도소리, 바람은 한가득 담아왔다.
바위에도 개미허리 아치교에도 따개비라고 해야 하나, 굴껍데기 같은 게 다닥다닥. 징그러울 정도로 많이 붙어있었다.
'번식력 한번 대단한데.....'
"짠물이 어디까지 들어차는 걸까."
걸으면서 남편은 그것을 가늠하면서 한두 마디씩 건넨다. 건너편 화력발전소를 가리키기도 하고 영종도에서 뜨는 비행기를 올려다보면서도 이런저런......
같은 것을 보아도 조금씩 다른 것을 보고 있어서 혼자 걷을 때보다 '서로 잘 맞지 않고, 많이 달라서' 풍성해짐을 깨닫는 순간이다. 나더러 사진 좀 그만 찍고 빨리 가자는 재촉을 하지 않는 것도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당연한 게 아니었구나!'
오늘에서야 내가 혼자 요리조리 살피고 사진 찍고 돌아다니는 것에 대해 남편이 한 번도 뭐라 뭐라 하지 않았다는 사실. 멀찍이서 천천히 걸으며 나한테 맞춰주고 있었던 것이 고맙다.
이번 트레킹의 마지막을 장식한 것은 선돌이었다. 안면도 꽃지해수욕장의 할아버지 할머니바위와 비슷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마주 보고 있는 것인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아예 서로 등지고 있는 것인지는 보는 사람 마음일 것이지만. 분명한 건 부부사이에도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는 것.
대단한 것들을 많이 보면서 머금었던 생각들을 주워 담아 글을 쓰는동안 마음은 평온해진다.
어제, 반나절 트레킹으로 속이 시원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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