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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향기와 장미향기가 묻어나는 숲

대부도 바다향기수목원

by 맘달

대통령선거일이 임시공휴일이라 좋은 기회였다. 날씨까지 받쳐주니 바깥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날 아침 나는 원심력에 이끌려 '한적하고 걷기 좋을만한 곳'을 찾고 있었다. 푸른 수목원은 접근성이 좋아 자주 갔었고, 광릉숲은 멀어서 오가다 보면 피곤해질 것 같고, 이번에는 아끼는 물향기수목원은 빼고 안 가본 곳 어디 없을까. 그래서 여기저기 검색해서 찾아냈다, 이름도 어여쁜 바다향기 수목원.

입구부터 시원하게

대부도에 있는 바다향기수목원은 입장료도 없고 주차비도 무료였다. (7월부터 유료화 예정)

가시는 감추고 향기로 유혹

사방에서 장미축제라고 난리인데 여기는 한적하면서도 화려하고 풍성했다. 내 눈에는 연한 파스텔톤 장미가 더 예뻐 보이고 내가 느끼기에는 장미보다 찔레꽃이 향기가 짙다. 그것은 어쩌면 소박하고 눈에 덜 띄는 찔레꽃이 자신을 강하게 어필하려는 책략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사람도 그렇듯이. 자신이 작고 보잘것없다고 느껴질 때 자기 존재를 각인시키기 위해서 임팩트 있게 한방을 날리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게 억지스러울 때도 있지만 한편 당연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삶에서 이런 일 저런 일 겪다 보면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느껴지는 때가 오는데 나이가 들고 난 뒤의 얘기다.

빨간 핫립세이지도 허브다

쉼터로 올라가는 계단을 따라 차곡차곡 심겼다. 라벤다, 핫립세이지, 페퍼민트, 그리고 집에 번번이 들였다가 실패를 거듭했던 로즈메리가 여기서는 생기발랄했다. 풀꽃들은 햇볕과 바람과 많은 사람의 눈길을 받고 자라야 하나보다. 나는 아버지처럼 'green thumb'이 되고 싶은 마음뿐 능력은 많이 부족하다. 손으로 로즈메리를 훑어 향기를 맡으면서 그동안 죽여버린 로즈메리들을 애도했다.

무장애길 콜라주
바다향기수목원 식물도감
숲과 바다

수목원을 나오면서 딱 하나 후회되는 것이 있었다. 상상전망대까지 더 올라갔어야 했는데, 탁 트인 장소에 눌러앉아서 멍 때리다 그만, 허브꽃과 그 향기에 취해서 놓치고 말았다. 더 높이 올라갈 생각을 못했던 것이다.

흙길 밟으며

돌아 나오는 길에 누군가 나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벌써 단체로 줄을 맞춰 사진 찍을 준비를 마치고 있었는데 내가 교우인 줄 알고 부탁한 건 아닐 테지만, 반가웠다. 로만칼라를 하지 않아 신부님이 누군지는 몰라도 수도복을 입은 수녀님은 금방 알아볼 수 있었고 주고받는 세례명이 익숙했다. 부탁을 활짝 반기면서 저는 한 열 장 정도는 찍어드립니다 하고 말하고 말한 대로 찍었다. 그중에서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는 것은 상대의 몫이고 나는 순간 사진사가 된 듯 신나게 찍었을 뿐. 속으로 평소 사진 잘 찍는 사람이란 소리를 듣는 사람이라고 자부하면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눈만 돌리면 주변에서 초록이 짙어져 가는 나무들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요맘때만 되면 <헤르만 헤세의 나무들>을 읽다가 적어두었던 구절이 떠오른다. 그것은 "하루 종일 창조주를 바라보며 경배하려 잎사귀 팔을 들어 올린 나무"라고 했던 조이스 킬머의 시 한 대목이다. 두 팔 벌려 창조주를 경배하며 아름다운 시를 쓰는 나무처럼 나도 그렇게 하고 싶어진다.

돌아오는 길에 서해갯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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