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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댕길 기회는 놓치면 안 돼!

산정호수에서 하루 보내고

by 맘달

불과 1박 2일이었는데 이번에는 오래, 멀리 다녀온 느낌이 든다. 가다가 보고 싶으면 멈추고 더 보고 싶으면 조금 더 멈춰서 그랬나 보다. 비수기 평일의 혜택을 한껏 누리며 쏘댕겼으니. 앞뒤에 차가 한 대도 없을 때가 많았고, 어쩌다 사람이 보이면 반가울 정도였다. 도시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익명의 일상이 아득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어쩌다 말을 섞은 주민들은 지난주 폭설로 고생을 했다며 기온이 올라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고 했다. 가 온기를 몰고 온 것 같은 착각에 기분이 좋아지기까지 했다.


가는 길 내내 앞으로 보나 옆으로 보나 산, 거기 눈 녹은 곳과 아닌 곳이 확연히 구분되었다. 떠나지 못한 겨울과 이미 와있는 봄이 나란했다. 아직 꽃이 핀 것도 초록잎이 돋은 것도 아닌데 햇살만큼은 영락없는 봄이었다. 서울보다 강원도가 더 따뜻하게 느껴졌다. 갑자기 영상 15도까지 오르다니, 기온이 널뛴다.

겨울도 있고

강원도 고성에 도착해서 매화를 보았다. 올 들어 처음 보는 꽃이라 무척 반가웠다. 봄에 피는 꽃은 작고 빛깔도 은은해 수줍음 많은 소녀 같다.

close up 매화 봄도 있다

고성에 갈 때마다 인사를 하는 은행나무가 있다. 그동안 잘 지냈느냐고. 그 앞에 다가가면 마음이 고요하다 못해 숙연해진다. 어르신 나무 가까이에 가면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누구나 그럴 것이다.

봄을 맞는 은행나무

나무들을 자세히, 천천히 보려고 안경을 벗었다. 봄이 왔다고 알려주는 산수유, 목련, 매화나무 곁에 있다 보면 저절로 앞으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말만 들으려 하지 않겠다, 다짐하게 된다. 나무는 항상 말없이 가르침을 주는 스승이다. 말없이 몸소 보여주는 최고의 교수법을 지닌 고수들이다.

목련과 산수유




강원도 고성에서는 잠시, 볼일 마치고 곧장 경기도 포천으로 향했다. 짧은 거리가 아니어서 예상보다 늦게 도착했다. 산정호수에서 해 떨어지는 모습을 바라보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숙소에 짐을 넣어두고 곧바로 산길 따라 호수로 올라갔다. 어둠에 묻히기 전에 눈에 넣어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호수는 잔잔했고 어둠이 내려앉아 잠잠했다. 오랫동안 넋 놓고 있고 싶었지만 다음날 아침산책으로 호수를 한 바퀴 돌기로 하고 되돌아왔다.

상동주차장에서 올라간 길




다음날 아침, 햇살이 눈부셨다. 산책하기 좋은 날씨였다. 늘 걷는 사람에게 3.2 km 둘레길은 누워서 떡먹기다. 궁예코스길, 소나무가 우거진 길, 조각공원, 수변데크길로 이어졌는데 웬 궁예 했더니, 궁예가 명성산(울음산)에 들어와 생을 마감했단다. 명성산 궁예이야기는 몰라도 가을 억새밭은 유명해서 알고 있었는데, 듬성듬성 바위가 박힌 저 산 어디에 억새밭이 있다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햇볕이 드는 곳과 아닌 곳의 차이가 심했는데, 지난밤에 본 것처럼 호수 가장자리는 아직 녹고 있는 중이었다. 계절이 바뀌고 있었다.

조각공원 하동주차장 쪽이다
가까이에서 보면 어설프고 촌스럽지만
고요한 호수

잔잔한 호수, 눈부신 햇살, 차분한 바람이 마음을 고요하게 만든다. 묵주알 돌리며 걸어도, 들숨날숨 헤아리며 걸어도, 뜨아 한잔 손에 들고 걸어도 좋은 곳이다. 0.5배속으로 걸어도 좋고 1.5배속이어도, 폰과 시계를 잠시 버려둬도 좋다. 그러면 눈에 걸리적거리는 게 단 하나도 없이 산과 물만 있는 세상이 펼쳐진다. 소리라고는 스피커에서 번지는 느린 음악과 호수 한가운데서 날아오르는 오리에게서 나는 것뿐이니. 어쩌다 산책하는 사람들도 빠름 없이 느긋한 게 호수를 닮았다. 사람은 누구나 둘러싼 환경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으니 기왕이면 좋은 환경에 나를 두어야겠다. 차로 가든 걸어서 가든 내가 나를 데리고 가야 할 곳은 고요한 곳이라는 것만큼은 분명해진다. 고요함 속에 행복이 깃들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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