쫄병

어머니는 생일초를 힘껏 불어 끄셨다

by 맘달

어머니는 전보다 마르긴 해 보여도 식사를 잘하는 편이라고 했다. 혈색도 좋아 보였다. 나를 보자 어머니는 금쪽같은 손주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가며 직장 잘 다니냐, 애인은 있냐, 큰애 빨리 장가가야 할 텐데...... 이러신다. 면회 때마다 어머니가 제일 먼저 챙기는 일이다. 치매기가 있다고 했지만 자식을 위해 악착같이 살아온 어머니에겐 해당 없음, 자식들에 관한 한. 오 남매와 그들의 배우자, 그리고 열 명이 넘는 손자와 증손자들까지 기억에 눌러 담아 두신 것 같다. 남의 말을 허투루 듣지 않고 잘 들어 마음에 새기는 방식으로 살아오신 분이라 그러신걸거라고, 나는 짐작한다. 글도 모른 채 거친 삶을 관통하며 터득해 온 생존비법 같은 거라고.


어머니의 성품은 요양병원에서도 빛을 발해 고맙다는 인사를 잘하는 할머니로 통한다. 그렇게 해야 상대방이 좋아한다는 것을 아셔서 그러시겠지만 내 생각으로는, 그것보다 자식들도 하지 않는 병시중을 드는 사람들이라 고맙지 않느냐는 뜻인 것 같다. 아무리 돈 받고 하는 일이라지만 고마운 분들인 것은 사실이고 정말 고마운 분들이니까. 이번에도 그분들 먹을 것을 요양병원 가까이 사는 시누이가 챙겨 왔다. 그분들이 의례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것 같아 나는 내심 껄끄러웠지만, 어머니를 봐서 마음을 고쳐먹었다. 고맙다고만 생각하면 그보다 더한 것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이번에도 어머니는 전에도 했던 말인데도 같은 방 환자들에 대해 이런저런 귀띔을 해준다.


"저 할매 소리는 하도 크고 아주 싸나워라, 대장이고. 요 짝은 두 번째......"


"그럼 어머니는요?"


"난 졸병이지."


어머니는 아직도 쫄병을 못 면했다. 계속 그럴 것 같다. 웬만하면 다 접고 이해하는 쪽이라 쫄병인 게 맞다. 면회하는 동안에도 대장 할매가 입을 열면 병실이 쩌렁쩌렁 울려댔다. 귀가 잘 들리지 않아서 그런 거겠지. 그래도 망가진 몸, 살아있는 기능으로 혼자 힘으로 앉아서 양손을 자유롭게 쓸 수 있으니 나는 그 대장할매가 부럽다. 우리 어머니는 허리를 다쳐 혼자 힘으로 앉을 수조차 없으니......


내가 면회하는 동안 마침 비어있는 침상으로 한 분이 들어오셨다. 잔뜩 긴장한 표정이 마스크밖으로 느껴질 정도였는데, 그 어르신은 보행기에 의지해 걸을 수 있었다. 저 정도만 돼도, 걸을 수 있으면 이런데 오시지 않으셔도 되는데...... 무슨 사정이 있겠지, 그래도...... 궁금했지만 더 이상 궁금해하면 아니 될 일. 다음에 오면 어머니가 그 궁금증을 풀어주시리라.




"초 한 개가 100살이에요. 2개니까 200살. 어머니, 한번 후~하고 불어보셔요."


노래도 박수도 큰 소리 낼 수는 없었지만 어머니는 힘껏 초 2개를 불어 끄셨고 케이크도 맛있게 드셨다. 사가지고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한 게 무색할 정도로. 큰 초 1개만 달라고 했다가 하나 더 달라고 하길, 귤이 얹힌 것 하고 샤인머스켓이 얹힌 조각케이크 하나 더 사길 잘했다.


그날이 바로, 어머니가 요양병원에서 맞는 두 번째 생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