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 문정희
아들에게
아들에게.
시인의 말대로 너와 나 사이에는 긴 강물이 끝도 없이 흐르나 보다. 그 강물이 가끔, 엄마가 흘린 눈물이 아닐까 싶을 때가 있단다. 이렇게 말해 너에게 부담을 주려는 것은 결코 아니란다. 단지 엄마가 지나왔던 시간들이 처참하고 아득하게 느껴질 때 그렇다는 것이지. 태양도 빛을 잃은 듯 캄캄했을 때, 폭풍 속을 지나고 있을 때 말이다.
네가 갑자기 사고로 쓰러져 중환자실에 누워있었을 때나, 의식이 언제 돌아올지 몰라 뜬눈으로 지새우던 밤에, 엄마가 네게 못해준 것만 떠오르더구나. 줄기차게 잘해주지 못한 것만 떠오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다급해지면 엄마는 하염없이 솔직해지는 것 같다.
네가 한참 후 의식이 돌아오고 한 덤으로 얻은 삶이니 잘 살아보겠다,라는 말이 고마웠고 그렇게 될 거라고 믿었다. 의식회복이 원상 복구라고 여겼는데 그게 아니라니. 뇌가 망가지는 병이라니. 쓰러졌을 때만큼 중독이라는 병을 앓게 되었을 때의 막막함과 두려움을 말로 다 할 수 없단다. 되찾은 의식으로 전처럼 살 수 있으리란 바람이 현실과 유리된 욕심이란 걸 알게 되었을 때, 내 몸은 땅 아래로 꺼져버렸고 믿고 의지하던 신은 땅에 묻어버렸다.
원망도, 외면도, 회피도, 방어도 아무 소용없었다. 너는 세상 무서울 것 하나 없던 세 아이의 엄마가 아니라 그저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고 마는 촛불 같은 존재다, 잔인한 현실이 말해주더구나.
안간힘을 쓰며 허송세월하는 동안 땅에 묻어버린 신이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모르는 사이 너와 나 사이에. 우리가 죽어나가는 동안 신은 부활하고 있었더라고!!
순간 항복당한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겼던 시간보다 살아있어서 괴로운 순간이 더 많았으니까.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나의 무력함과 두려움을 고백하지 않고는 도저히 배길 수 없었으니까.
버려진 것만 같았던 짙은 어둠 속에서 고개를 드니 '한 줄기 빛'이 보였고 그 빛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으니까.
지금 엄마가 할 수 있는 것은 두 손 모으는 일뿐이더구나. 아니, 두 손 모으는 것이라도 할 수 있어서 천만다행이다. 너희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게 엄마라는 거, 너도 알고 있지.
잘 지내거라.
날마다 엄마가 너의 등뒤에서 기도로 응원하고 있다, 잊지 말거라.
사랑한다, 아들.
2024.12.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