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떠난 날부터 삼우제까지는 슬퍼할 시간조차도 없었다. 그런 사치는 내겐 허락되지 않았다. 그와의 이별은 너무나 갑작스러웠고, 그래서 아무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나는 경찰서로, 장례식장으로, 봉안당으로 사방천지를 뛰어다녀야 했다. 덕분이라고 해야 할지, 그래서 나는 그의 죽음을 제대로 슬퍼할 시간조차도 갖지 못했다. 텅 빈 집안도, 더 이상 그가 없는 책상과 침대도, 그의 죽음 때문이라기보다는 그가 잠시 며칠 어딘가에 다니러 간 사이 나 혼자 남아 집을 보고 있기 때문인 듯이 그렇게 느껴졌다.
그의 부재가 조금씩 실감 나기 시작한 건 삼우제가 끝난 다음날부터였다.
오래 살을 맞대고 산 사람들이 흔히 그러하듯 그와는 많은 대화를 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그가 사라져 버린 집안은 너무나 적막해 견디기가 힘들었다. 혼잣말을 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결국 나는 텔레비전을 켜 두기로 했다. 그는 매우 꼼꼼한 사람이어서 아침에 일어나면 우리가 즐겨 보는 몇몇 채널의 편성표를 확인하고 볼 프로그램들을 체크해서 일일이 시청 예약을 걸어두곤 했다. 그러나 나는 당연히 그렇게까지는 하지 못했다. 그저 텔레비전 전원을 켜고, 채널 한 군데에 방송을 틀어놓는 것에 그쳤다.
그러나 텔레비전 안에는 생각보다 많은 '지뢰'가 있었다. 그의 마지막 며칠간 그와 함께 보았던 프로그램들은 끝도 없이 재방송되고 있었다. 저 장면에서 무슨 이야기를 했던지, 어떤 표정을 지었던지, 무엇을 먹고 있었던지 하는 것들이 자꾸만 떠올라 내 신경을 괴롭혔다. 그는 프로그램과 프로그램 사이에 나오는 길이가 긴 보험광고와 상조 광고를 끔찍하게 싫어했다. 저런 광고들 특유의 내레이션 톤만 들어도 소름이 돋는다고 짜증을 내곤 했었다. 그런 광고들도 상시로 튀어나와 내 귓전을 때렸다. 그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피해 가며 텔레비전을 틀어놓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래서 나는 평생 끊지 않던 채널 정액제를 끊어 아무 프로그램이나 처음부터 틀어놓는 것으로 해결책을 찾았다.
그렇게, iptv의 시청 기록을 뒤지다가 나는 그와 함께 본 마지막 영화를 찾았다. '스파이더맨:노 웨이 홈'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그와 나도 마블의 영화들을 좋아했다. 옆구리만 툭 찌르면 그 히스토리를 줄줄 말할 수 있는 정도의 마니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마블에서 새 영화가 나온다고 하면 그 이야기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인터넷으로 열심히 검색한 후에 영화를 봤고 영화를 보고 난 후엔 이런 점은 좋았고 이런 점은 아쉬웠다는 이야기로 며칠을 보냈다. 그랬던 우리의 마지막 마블 영화인 셈이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피터의 '애새끼스러움'에 짜증을 냈다. 세상 모든 사람이 자기가 스파이더맨인 걸 아는 게 싫댔다가, 그래도 여자 친구는 알았으면 좋겠댔다가, 절친도 알았으면 좋겠댔다가, 큰 엄마도 알았으면 좋겠댔다가. 그 과정에서 주문은 꼬여버리고 모든 차원의 스파이더맨을 아는 빌런들이 이 차원으로 쏟아져 들어오게 된다. 그들을 본래의 차원으로 돌려보내면 그들이 죽게 된다는 말을 듣고 난 후 피터는 빌런들을 본래의 차원으로 돌려보내는 것조차도 방해한다. 그 모든 것들이 일일이 짜증스러웠다. 저러니 애새끼지. 이 모든 일이 벌어진 게 다 자기 때문인데 왜 저래. 영화를 보는 내내 투덜거리는 나를 보며 그는 웃었었다. 그러니까 애지. 다 저러면서 커서 어른 되는 거야.
그의 말대로 피터는 자신이 초래한 모든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모든 사람에게서 잊혀지기를 택한다. 그에게는 더 이상 빛나는 미래도 사랑하는 여자 친구도 진한 친구도 없다. 영화의 말미 허름한 단칸방으로 이사한 후 토니 스타크가 협찬해줬던 멋진 슈트가 아닌 재봉틀로 직접 만든 천으로 된 슈트를 입고 눈이 내리는 뉴욕의 하늘을 날아오르는 스파이더맨의 모습에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한 기분으로 멍하니 텔레비전 화면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야, 마블 놈들 진짜 대단하다. 이걸 이런 식으로 푸네. 그때 그런 말을 했던 기억이 났다.
그리고 그 피터 파커의 이야기는 어느 정도는 내 이야기가 되었다.
나는 그를 열아홉에 만났고, 며칠 전까지 사랑했다. 나는 그가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해 본 적이 없다. 그가 아닌 다른 사람과 일상을 같이 해 본 적이 없다. 그가 아닌 다른 사람과 함께 늙어갈 거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닥터 스트레인지가 건 마법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제야 실감했다. 46년간 쌓아온 내 인생이 통째로 사라져 버렸음을. 이제 나는 아무도 나를 모르는 이 세상에서 처음부터 다시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내게 과연 재봉틀로 다시 슈트를 만들 용기가 있을까. 혼자 밥 먹을 용기도, 혼자 잠들 용기조차도 아직은 없는 내가. 내가 과연 당신 없는 내 인생을 살아낼 수 있을까. 나는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