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
내가 초등학교 정도 다니던 시절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무렵은 구정이 아닌 신정을 쇠는 것이 국가적으로 장려되고 있던 시기여서 '설날'은 신정만을 가리키는 날이 되었고 구정은 '민속의 날'이라는 애매한 명칭으로 그날 하루나 겨우 쉬는 그런 날로 격하되었다. 그리고 해마다 설이 돌아올 때마다 나는 어른들이 설을 음력으로 쇠지 누가 양력으로 쇠냐며 불평을 늘어놓던 것을 기억한다.
해마다 신정과 구정 사이의 이 한 달 남짓한 기간은 뭔가가 참 애매하게 느껴진다. 분명 달력은 넘어갔고 사회생활의 모든 스케줄들은 해가 바뀐 것을 기준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아직도 내 의식은 작년 끄트머리 어딘가에 위태롭게 남아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느낌이랄까. 학교 다닐 때의 봄방학, 딱 그런 기분으로 말이다. 뭔가를 해보려다가도 설이나 쇠고 나면 하지, 하는 식으로 자연스럽게 미루게 되는 그런 느낌이 있다.
그에게서 들은 것에 의하면 띠도 토정비결도 다 음력으로 따지는 것이기 때문이 신정 이후 구정 전까지 태어난 사람은 전년도 해의 띠로 보는 것이 맞고, 기껏 본 새해 토정비결도 구정이 지나고 나서부터의 이야기기 때문에 구정이 되기 전까지는 해당사항이 없다고 한다. 물론 그렇게 엄밀하게 '적용기간'을 따지지 않더라도 대개 좋은 말만 적혀 나오는 새해 토정비결이 맞은 적은 딱히 별로 없었지만.
늘 집에 있고 집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무디어져 버린 감각으로 연휴의 시작이 어제부턴지 그제부턴지도 가물가물했지만 오늘이 설날 당일이라는 것 하나만은 확실하게 안다. 오늘 나는 언제나처럼 그를 만나러 봉안당에 다녀올 예정이고, 그 핑계로 실로 며칠 만에 잠깐 바깥공기를 좀 쐬고 올 예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설이 안 지났으니 아직 해가 안 바뀌었다'는 그 식의 핑계도 별반 먹히지 않는, 본격적인 갑진년 새해다. 내게는 올해는 시작도 하기 전부터도 뭔가가 좀 시끄럽다는 느낌이다. 올해 치러내야 할 큰일이 두어 가지쯤 있는데 그중 하나는 시작도 해 보기 전부터 삐걱대고 있고 하나는 어떻게 해내야 할지 앞이 막막하다. 그러던 것들도 다 설이나 지나면 생각해 보자고, 너저분한 물건들을 제대로 정리하는 것도 아닌 침대 아래 같은 곳에 대충 발로 밀어 넣듯 미뤄 놓았는데 이젠 그것도 더 이상은 안 먹히는 시기가 온 것이다.
오늘 봉안당에 가면 그에게 이런 사정들을 털어놓고 나 도대체 어떻게 하지, 하고 눈먼 하소연이나 좀 하고 올까 싶다. 사람이 왜 그렇게 대책이 없냐고, 나 얼마나 뒷손 없고 칠칠치 못한 지 누구보다 잘 알면서 그런 식으로 도망가 버리는 법이 어딨냐는 말도 함께. 아프지 말고, 맛있는 것 많이 먹고, 행복하게 잘 지내라고, 그리고 그런 말도 함께 해 주고 오려고 한다.
이 보잘것없는 브런치에 들러주시는 많은 독자님들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바라시는 모든 일 무사히 이루어지시기를 바란다는 말씀을 드려 본다. 최소한, 새해에는 많이 슬프고 많이 아픈 일만은 일어나지 않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