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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몇 가지 택배 상자를 눈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쌓아가지고 버리러 들고나가다가 영문 모를 물을 밟아 호되게 미끄러진 이야기를 썼었다. 오늘 글은 이른바 그 후속 편쯤 되는 이야기다.
뭔가에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었을 때 일차적으로 엄습하는 감정은 견딜 수 없는 쪽팔림이다. 재미있는 건 사람들이 다니는 길가도 아니고 아무도 없는 아파트 복도에서 미끄러져 넘어졌는데도 그 쪽팔림은 하나도 덜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의외로 여기 누가 물을 흘려놓고 닦지도 않았는가에 대한 분노는 별로 없었다. 아마 느낄 새가 없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긴 하다. 당혹스러움과 쪽팔림이 가시고 나니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바닥에 찧은 엉덩이와 엉겁결에 바닥을 짚은 손바닥과 손목, 팔뚝까지가 차례로 아파오기 시작했다. 아, 뼈 괜찮나 모르겠네. 들고나간 박스를 기어이 재활용 쓰레기장에 갖다 버리고 집으로 돌아와 파스를 몇 조각으로 잘라 여기저기 붙이며 그렇게 중얼거렸었다.
그렇게 하루를 지나고 나니 다른 곳은 의외로 무슨 일 있었냐는 듯 괜찮아졌다. 단 한 군데만 빼고. 오른손 손바닥이었다. 정확히는 엄지손가락 아래 볼록하게 살이 올라온 그 부분이 꾹꾹 눌러보면 무지근한 통증이 있었다. 그리고 그날 오후쯤, 나는 손을 씻다가 왼손과 오른손의 그 부위 색깔이 다른 것을 육안으로 확인하고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멍들었구나.
그 통증은 의외로 며칠을 갔다. 홈트를 한다거나 바닥에 앉았다 일어설 때 바닥을 짚을 때 나도 모르게 뜨끔 놀랄 정도의 압통이 있었다. 그때마다 손바닥에 푸르스름하게 든 멍을 요리조리 들여다보며 야 신기하다 손바닥에도 멍이 드네 하고 중얼거렸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처음도 아니다. 요즘에야 학교에서 체벌이 없어진 것으로 알고 있지만 내가 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참 가지각색 다양한 방법과 강도의 체벌이 있었고, 회초리로 손바닥을 맞는 것은 가장 고전적이라 할 수 있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몇 대 맞고 나면 다음날 맞은 결대로 퍼렇고 벌건 멍이 어김없이 올라왔었다. 손바닥을 맞은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보니 잊고 있었다보다.
그러고 보면 그렇다. 멍이라는 건 별 게 아니고, 모세혈관에서 난 출혈이 피하조직 밑에 고여서 퍼렇게 비쳐 보이는 현상일 뿐이다. 그러니 사람의 살이라고 생겨먹은 조직이라면 그 어디라도 멍이 들 수 있는 것이다. 외부 자극에 자주 노출된다고, 살갗이 얇다고 피해 갈 수 있는 증상이 아니라는 말이겠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보
니 혹시 손바닥을 내 몸의 일부가 아닌 외부의 조직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건가 하는 생각에, 주인의 부주의로 시퍼렇게 멍이 든 오른손 손바닥에 조금 미안해졌다.
며칠이 지나 이제 멍도 웬만큼 가라앉았고 힘을 주어 바닥을 짚어도 그다지 아프지는 않다. 이번 주가 지나면 이번 가을 들어 처음으로 영하로 기온이 떨어질 예정이라 한다. 돌아오는 겨울에 혹시나 낙상을 하는 일이 생긴다면, 그때는 엉덩이뿐만 아니라 손목과 손바닥도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넘어져서 아프지 않은 살갗이라는 건 없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