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
엄기호는, 피렌체에서 만난 한 여성이 며칠째 모든 일정을 멈춘 채 아침에 박물관 문이 열리면 다비드를 보러 가서 하루 종일 멍하니 쳐다보고 돌아오는 일정을 반복하면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생각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제게는 2022년 미국 PGA챔피언십 둘째 날 열린 경기에서 타이거 우즈의 골프샷을 지켜보는 수많은 카메라 사이에서 맥주 한 잔을 들고 골프샷을 바라보던 '미켈롭 가이'가 우리에게 그랬던 것처럼, 한 방 때리는 느낌이었습니다. 엄기호가 『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에서 경험과 체험을 구별하며 설명하는 대목은 몇 번을 읽어도 질리지 않습니다.
엄기호의 『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는 인문학이란 도구를 통해 이 시대 절망과 허무의 실체를 폭로하면서도 이 삶을 동료들과 함께 용기있게 살아내는 방법과 희망을 제시하는 정말 멋진 책입니다. 출간 당시보다 지금 읽으니 더 와닿는 대목이 많습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오늘을 충실히 산다면 그 결과로서 주어질 곧 다가올 미래의 열매를 바라보고 살아가는 삶의 태도, 즉 기대는 근대 자본주의 아비투스의 핵심입니다. 그러나 오늘을 충실히 살면 미래의 열매가 돌아온다는 기대의 공식은 우리를 배신했습니다. 이 사회에 기대하면 격노하고, 기대를 내버리면 냉소하게 된 현실입니다. 격노와 냉소에도 불구하고 삶을 삶답게 살고 싶다는 의지는 제거되지 않고, 이 의지는 '이게 사는 건가' 하는 회의와 성찰로 이어집니다.
삶같지 않은 삶의 한 양식은 경험의 빈곤입니다. 경험은 내가 보고 들은 것, 즉 체험이 몸에 들어가 '습'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경험을 하면 머리가 아니라 몸이 깨닫습니다. 몸으로 깨닫는 경험을 위해서는 시간이 걸립니다. '지금 여기'에 충실한 경험을 통해 우리의 삶은 풍부해집니다. 경험은 '우연'이 발생할 수 있도록 내 삶을 열어두는 태도를 필요로 하고, 허탕을 칠 수도 있다는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그런데 체험이 경험이 되지 못하면 그 자리는 소비가 대체합니다. 경험을 통해 어른이 되지도 못하고, 경험을 통해 내 삶을 풍부하게 만들지도 못하는 우리는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늘 새로운 것을 만나면서도 지루함과 허전함, 번잡함의 반복만이 삶을 지배하고 그 자리에는 허무만이 남습니다.
"보고 배우고 들은 것들이 내 몸에 들어와 나를 변화시키지 못한다. 대신 짜릿한 자극을 한 번 주고는 휙 지나간다. 그러니 무엇이 나를 지나갔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다른 사람에게 떠들 만한 게 하나도 없다. 그래서 또다시 다음 자극을 기다리거나 찾아 헤맨다. 삶은 헛헛해질 수 밖에 없다. 삶의 한쪽이 생존에 대한 '불안'으로 가득하다면 다른 한쪽은 지루함과 공허함으로 가득하다. 뭘 해도 그때 뿐이고 이 시간이 지나가면 삶은 다시 헛헛해진다"
또한 우리의 삶을 삶같지 않게 하는 것은 공감의 상실입니다. 저마다 가진 고통은 다를지라도 너도 고통받고 나도 고통받았다는 공감은 삶의 상처를 나홀로 짊어지는 자기연민을 넘어서게 합니다. 그러나 시대의 어둠을 함께 바라본다는 것만으로 공감이 일어나진 않습니다. 함께 팔짱을 끼고 두드려 맞을 용기가 있을 때 우리는 동시대인을 넘어 동료가 됩니다.
사회가 개인의 삶을 보호해주지 못하고 더이상 사람들이 사회로부터 아무것도 기대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허무함을 이겨낼 수 있는 유일한 힘은 '너도 나도 같이 상처받았다'라는 공감이다. 내 삶이 누군가에게 공감될 때, 그래서 내가 그에게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인정받을 때 삶은 살아갈 만한 것이 된다. 이 상처가 나만의 상처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상처임을 깨달았을 때 이 시대에 대한 인식이 되고 더불어 사회를 바꿀 수 있는 용기가 될 수 있다. 그래야 내가 응원받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공감이 상실된 현장에는 원자화되어 각자 고립된 개인들의 상처와 비겁함만이 잔존합니다. 동료가 없다면 분노 대신 공포를 느끼게 되고, 각자 살 길을 찾아 떠나야 합니다.
"동시대인이 된다는 것은 이 시대에 너와 나의 운명이 별로 다르지 않음을 깨닫는 과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건에 대한 논평만이 아니라 이 사건이 불러일으키는 너의 기억과 나의 기억이 공명해야만 한다. 각자의 기억을 끄집어내지 않는 사건은 사건으로서 무의미하고, 기억을 끄집어내고 이어주지 못하는 글은 글로서 가치가 없다."
그러나 삶의 죽음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성찰로 이어지면서 파국에 이릅니다. 파국은 우리로 하여금 '이게 도대체 사는 건가' 하는 질문을 공유하게 합니다. 질문의 공유가 곧바로 연대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삶이 가능하다는 희망에 의해 비로소 연대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희망이 제시하는 파국으로부터 단절할 용기, 용기가 없다면 다른 사람의 용기를 외면하지 않고 지지하고 응원하는 의리가 파국에 이른 우리에게 요구되는 행동양식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새로운 삶을 상상하고 나아갑니다.
엄기호의 글을 읽다가 문득 변호사가 지식인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지식인을 지식계급에 속하면서 그에 상응하는 사회적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 정도로 정의하면 전문가 집단에 속하는 변호사도 지식인의 대열에 껴주기 어렵지 않을 텐데, 사회비판, 사회참여를 통해 대중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실천적 참여를 하는 것까지 요구한다면 변호사라는 이유만으로 지식인에 해당하기는 어렵겠습니다.
노엄 촘스키는 지식인의 책무에 관하여 "'인간사에 중대한 의미를 갖는 문제'에 대한 진실을 '그 문제에 대해 뭔가를 해낼 수 있는 대중'에게 알리려고 노력하는 것이 지식인의 책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엄기호는 최철원 매값사건을 단순한 재벌의 일탈으로 보는 대신 인격이 아닌 노동을 파는 '계약'이라는 자본주의의 전제의 실체가 폭로되는 사건으로 보고, 카이스트 대학생의 죽음으로부터 동시대 대학생들의 절망과 냉소, 동료의식 등을 훑어 살펴보고, 일본 원전 사태에서 시대의 절망을 읽습니다. 구체적인 사건에서 보편적인 시대상을 이끌어내는 관점이 매우 탁월합니다.
저는 엄기호의 책을 신자유주의 시대의 인간소외와 수동성에 대한 폭로와 능동적인 삶의 회복을 서술하고 있는 것으로 읽었는데, 공부 또한 단지 지식을 습득하는 수동적인 행위가 아니라 능동적인 행위일 수 있습니다. 개별 사건으로부터 동시대성을 읽는 것이 공부이고, 읽어낸 시대정신을 타인에게 공유하는 한편 희망을 제시하면서 동료를 만들어내는 것이 지식인의 역할은 아닐까요.
"한 사회의 경계는 극단적인 사건에서 나타난다. 그동안 한 사회나 한 시대가 감추려 하고, 구성원들이 잘 감지하지 못했던 사회의 심연은 '극단적인 사건', '지극히 개별적인 사건'으로써 치부를 드러낸다. 한 철학자의 말을 빌린다면 이런 사소하고 극단적이고 개별적인 사건은 사회 전체를 드러내주는 조명탄과 간다. 한 사회의 인문학적 성숙도는 이러한 사건이 벌어졌을 때 이것을 개인적이고 심리적인 문제로 환원해버리는지, 아니면 사회를 성찰하는 실마리로 이어가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각자의 자리에서 필요한 공부가 있겠지만, 우리 법조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변호사 중 한 명인 조영래가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을 단지 한 명의 여성이 당한 성폭력을 구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군사정권을 무너뜨리는 시발점으로 삼을 수 있었던 것도 결국 개별 구체적인 사건에서 시대정신을 발견,발굴할 수 있는 관점을 가졌기 때문이라는 점에서 힌트를 살짝 얻습니다.
눈앞에 매일같이 닥치는 사건들을 '소비'하거나 '체험'하는 것을 넘어 '경험'하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고 애쓸 애정과 여유가 필요할 텐데, 지독하게 소모적인 일상에 어울리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예전 로펌에 지원하던 시절, 저의 자기소개서에는 에리히 프롬의 문장 "이 사회에 만연한 권태감과 기쁨의 상실이 내겐 못마땅하다"를 인용하면서, 법률가로서 인간 소외와 사회 구조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이야기가 빠지지 않았습니다. 상적이고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하는 자기소개서는 인사담당자로 하여금 짜증나게 할 수 있지만, 나의 정체성이니 내 맘대로 적고 그들이 보기에 안 맞으면 내가 보기에도 안 맞는 것이라며 꿋꿋하게 빼놓지 않는 것이 초년차의 패기였다면, 이제는 초심을 어떻게 유지하고 발전할지 고민할 단계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 고민에 한 가지 힌트는 얻어갑니다.
"나는 공부를 하는 목적은 동시대성을 깨닫고 당대에 대하여 나와 인식을 같이 하는 사람과 동료를 맺는 일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