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현대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우리는 행복하기 때문에 웃는 것이 아니다. 웃기 때문에 행복해진다.”라는 이론으로 유명하다. 오랫동안 심리학자들은 감정이 신체 반응에 영향을 미친다고 믿었다. 분노는 심장을 뛰게 만들고, 불안감은 식은땀을 흘리게 한다고 믿어왔지만, 제임스는 웃는 행동으로 인해 행복한 감정이 따라온다고 했다. 어떤 이론이 맞는지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지만, 나는 ‘행동이 감정을 결정한다.’라는 제임스의 이론에도 공감한다.
오랜 사랑으로 무료해진 사람들도 사랑에 빠진 것처럼 행동하게 되면 식었던 열정이 다시 살아난다거나, 스스로 강하고 힘센 사람처럼 행동하게 되면 몸을 웅크리고 있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큰 고통도 이겨냈다는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부상의 아픔 속에서도 부활하여 메이저대회에서 45세로 11년 만에 우승 트로피를 다시 들어 올린 타이거 우즈가 우승 퍼팅 후 포효하는 행동은 보는 사람 모두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최근 2022년 프레지던츠컵에서 인터내셔널팀으로 참가했던 20세 김주형 프로를 미국 PGA투어에서는 인터내셔널팀의 CEO(Chief Energy Officer)로 평했다. 팀에 에너지를 불어넣는 존재라는 것이다. 누군가의 자신감에 넘쳐 뿜어져 나오는 엄청난 에너지와 격동적인 행동은 고스란히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전염되어 덩달아 행복감을 느끼게 만든다.
모든 스포츠가 그러하듯 골프 경기에서도 선두권 선수들을 보면 대부분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쳐난다. 실제로 골프대회 상위권 선수들 가운데는 늘 자신감에 충만한 우승 경험이 있는 자들이 다수 포함된 경우가 많다. 그런 선수들조차도 반복되는 실수를 하거나, 다른 선수가 박차고 앞으로 치고 나아갈 때는 간혹 위축되는 모습을 보일 때가 있다. 플레이가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건 선수들의 서 있는 자세나 취하고 있는 행동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고개를 떨구고 터벅터벅 걷거나 힘없이 서 있거나 움츠러든 어깨와 자신감이 떨어진 듯한 자세가 그러하다. 당연히 당사자는 현재 상황이 별로 유쾌하지 않을 것이다. 신이 나지 않는다. 이럴 때는 스스로 기분을 상승(up)시킬 필요가 있다. 더 자신 있게 행동해야 한다. 적극적인 행동으로 내 움츠러드는 소극적인 감정을 통제할 필요가 있다. 아직 결과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
스포츠나 인생의 여정에서 우리는 때로 당당하게 최선을 다했음에도 자신의 기대에 못 미친 결과를 만나게 되면 “다음에 잘하면 된다.”라고 스스로 위로하고 격려하면 되지만, 위축된 행동 끝에 자신 없이 만난 결과에는 “내 그럴 줄 알았다!”라는 비굴한 핑계만 남기게 된다.
웃음이 행복감을 자극하고 상대방의 눈을 가만히 쳐다보는 행위만으로 사랑의 감정을 높이는 것처럼 평온한 자세를 취함으로써 실제로 분노를 잠재울 수 있다. 〈『지금 바로 써먹는 심리학』 중에서, 리처드 와이즈먼 교수〉
동반자는 오히려 나의 잦은 실수와 위축된 행동에 더 강해지는 경향이 있다. 타인의 실수를 반면교사로 삼아 더 차분하게 플레이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실수에 화를 참지 못한 성급한 행동은 결국 남에게 도움만 주는 꼴이 된다. 골프에서도 마지막에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자는 끝까지 자세를 흩트리지 않고 차분하게 행동했던 사람이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자다.
누구나 잘 나갈 때는 화려한 정상만 보이지만 내려갈 때는 세상이 보인다는 말이 있다. 사업이나 학업, 연애 등에서 성공적으로 잘 나가고 있을 때는 어깨에 힘도 저절로 올라간다. 주변에서도 인정해 주니까 세상에 무서운 것도 없다. 그러나 막상 사업이 망하거나 실패의 덫에 빠져 힘들어질 때는 마치 지구의 종말이 온 것처럼 살맛이 안 난다. 평생을 열심히 앞만 보고 살아오다 은퇴했을 때도 그러하다.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올리비에가 말했듯이 은퇴한 60대는 ‘갑자기 침몰하는 배처럼 세상에 쓸모없는 존재’가 된 것 같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심정이 들 수도 있다. 번 아웃 상태가 되거나 갱년기에 빠져버리면 자칫 우울증이 찾아오고 사람을 만나기가 두렵기조차 하다. 행동이 멈추어지고 복합적인 감정만 넘쳐난다. 감정만 북받치니까 행동까지 멈춘다.
이럴 때일수록 더욱 적극적인 행동으로 나를 찾아야 한다. 가만히 앉아서 압박해 오는 감정의 회오리 속에 나를 그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 계속 움직여야 한다. 골프연습장을 찾거나 책을 읽거나 여행을 떠나든지 사람을 만나든지 봉사활동을 하든지 재취업을 하든지... 무엇인가 변화하기를 원한다면 명사형이 아닌 행동하는 동사형 인간이 되어 잠드는 나를 계속 깨워야 한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나의 걸어가는 뒷모습을 찍은 사진이 앞모습 사진보다 더 좋아졌다. 비로소 나의 뒷모습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까지는 앞만 보고 정신없이 달려왔다. 이제는 당당하게 활짝 가슴을 펴고 걸어가는 나의 여유로운 뒷모습이 보기 좋아졌다.
뒷모습이 어여쁜 사람이 /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이다 / 자기의 눈으로는 결코 / 확인이 되지 않는 뒷모습 / 오로지 타인에게로만 열린 / 또 하나의 표정 / 뒷모습은 고칠 수 없다 /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詩 ‘뒷모습’ 중에서, 나태주 시인〉
지금껏 열심히 잘해왔으니 앞으로도 그렇게 자신에게 당당하게 나아가면 되지 않을까. 여유를 되찾아야 한다. 이제는 경제적 목적을 바라보고 달리는 것이 아니라 가치를 따져가며 살필 일이다. 그러려면 움직이는 행동을 귀찮아하지 말아야 한다.
살아가면서 어떠한 문제가 잘 안 풀릴 때는 우선 행동을 취함으로 나의 이 어려운 상황을 반전시켜 보자. 감정을 앞세우기보다 골프에서처럼 ‘빈 스윙’이라도 한 번 더 해보면 어떨까. 그런 유의미한 행동을 통해 내 마음에 더 큰 성취감과 더 따뜻한 행복함이라는 감정이 점점 물들어가기를 오늘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