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왜?...왜?”
아이들이 자라면서 자주 하던 질문이다.
말문이 트이면서 본능적으로 호기심 많은 아이는 계속 물어본다.
부모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답해준다.
요즈음이야 스마트폰에 대부분 답이 고스란히 있지만, 아이는 호기심 천국이다.
가끔 질문이 없는 아이도 있다.
부모의 설명이 흥미롭지 못했거나 호기심을 위축시키는 분위기를 경험하면, 호기심은 마음속에만 간직한 채 쉽게 입 밖으로 꺼낼 수가 없다.
나도 어린 시절에는 숫기가 없었지만 참 호기심이 많았다.
지금도 스마트폰이 바뀌면 작동법을 하나하나 배운다.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
저 사람은 왜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일까.
이 감독은 영화를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
매일매일 모든 것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지 않는 때가 없는 것 같다.
호기심(好奇心 Curiosity)은 우리가 새로운 것을 탐구하고, 새로운 경험을 추구하는 욕구다.
만일 우리에게 호기심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무덤덤하게 더 이상 새로운 것을 배우지 않고, 새로운 경험을 하지 않으려는 지루함의 연속일 것이다. 공부할 때나, 여행할 때나, 운동을 배우면서 호기심이 없다면 더 이상 성장도 기대하기 어렵다.
호기심은 일종의 관심이다.
어떤 대상에 흥미를 느끼고 즐거워야 계속 지속할 수 있다. 호기심은 우리의 뇌를 자극하며 심심하지 않게 해 준다.
2023년에 100세로 세상을 떠났던 미국 前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의 장수 비결을 그의 아들 데이비드는 “지치지 않는 호기심(unquenchable curiosity)으로 세상과 역동적으로 관계를 맺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95세에는 AI(인공지능)까지 공부했다고 한다.
괴테도 명작 『파우스트』를 60세에 쓰기 시작하여 82세에 탈고했다. 노인이라도 호기심이 끊이지 않는 이는 청년 못지않고, 아무리 청년이라도 호기심을 잃어버리면 꿈을 지워버린 전형적인 노인과 다를 바 없다.
이제 갓 60세를 넘어 퇴직하는 이들 가운데“그동안 너무 많이 일했다. 그냥 놀고 싶다.”라고 하는 이가 있다. 물론 노는 것에 대한 호기심도 때로는 필요하다. 그러나, 합리적인 행동을 유발하는 건강한 호기심이 아닌 그동안의 보상이나 무력감에서 오는 단순 유희라면 내게서 호기심이 증발하고 있는 단계가 아닌지 의심해 보아야 할 것 같다.
모든 리더도 마찬가지로 늘 호기심이 넘쳐야 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이끄는 질문 방법을 잘 알아야 한다. 호기심을 가진 사람들이 성공하는 법이다.
세계적인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도 "나는 특별한 재능이 없다. 단지 열정적으로 호기심이 많다.”라고 했다. 지적 호기심은 때로 우리의 정신을 날카롭고 민첩하게 유지해 준다. 호기심은 훌륭한 저널리스트, 작가, 발명가 또는 과학자 등 전문가가 되기 위한 필수 요소이기도 하다.
호기심은 지금 하는 일에 더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하여 지금보다 더 잘할 수 있게 도와준다. 호기심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사람들은 서로 진정한 호기심을 보일 때 더 따뜻하고 매력적으로 평가한다고 한다. 사랑하는 남녀 사이도 호기심이 사라지게 되면 더 이상 매력을 느낄 수 없어 결국 관계도 시들하게 되어 헤어지는 사례가 빈번하다.
젊은 시절, 나는 밥 같은 여자와 사귀고 싶었다.
밥처럼 아무리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 것처럼 호기심을 갖게 만드는 사람이 매력 있다고 여겨서다. 강한 호기심은 신뢰를 줄 수도 있다.
어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의사와 환자의 관계에서도 서로 진정으로 호기심을 가질 때 환자가 분노와 좌절감을 덜 느끼고 궁극적으로 치료 효과도 높아진다고 한다.
그러나, 호기심은 양날의 검이기도 하다.
흥미로운(Interesting) 호기심이 있는가 하면, 파괴적인(Destroy) 호기심도 있다.
판도라도 호기심을 결국 참지 못하고 상자를 여는 바람에 온갖 욕심과 질투, 시기, 각종 질병 등이 순식간에 이 세상에 나왔듯이. 아담과 이브도 결국 호기심을 참지 못해 낙원에서 쫓겨났다.
최근 국내에 급속도로 유통되고 있는 마약과 같은 것에 함부로 파괴적인 호기심을 발동하다가는 인생을 망칠 수 있다. 또 특정 사람에 대한 지나친 호기심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병적인 집착으로 번지게 되면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인간관계에서도 그 사람을 단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나 현상으로 이해하고 따뜻하게 받아들이려는 자세가 아니라, “왜?” 그렇게 행동했냐고 따지는 질책성의 호기심은 두 사람 관계를 더 멀어지게 만들기도 한다.
살다 보면, 때로 나의 양 어깨를 늘 내리누르고 있는 스트레스에 짓눌러서, 거듭되는 실패에 너무 지쳐서 호기심마저 포기하는 경우마저 생기기도 한다.
“나는 왜 목표를 제대로 달성하지 못할까. 왜 우승하지 못할까. 왜 하는 일마다 이다지도 안 되는 걸까. 왜? 왜? 왜?”
비록 처음에 생각한 대로 이루어지지 못해도, 자존감이 한없이 추락하더라도 삶의 호기심만은 버리지 말자. 호기심을 다시 한번 자극해 보자.
스스로 자신을 질책만 하게 하는 “왜? 이 정도밖에 못하는가”가 아니라,
어린 시절 순수하게 “왜?”라고 끝까지 물어보던 그 호기심으로 다시 돌아가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찾아보자. 굳이 답을 꼭 찾지 못해도 괜찮다.
아인슈타인도 "중요한 것은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호기심은 그 자체로 존재 이유가 있다.”라고 했다. 호기심을 갖는 습관은 우리에게 삶을 더 풍요롭고 더 충만한 곳으로 안내해 준다. 우리의 의식이 깨어있는 동안에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이 세상을 흥미롭게 바라보자. 그리고 모든 것에 통찰하려는 나의 호기심을 늘 아껴주고 존중해 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