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는 하나인데, 네 다리, 두 다리, 세 다리가 되는 것은? (What has one voice and become four-footed and two-footed and three-footed?)”
그리스 신화에서 여자의 머리를 가졌고 몸은 사자이며, 새의 날개에 꼬리는 뱀인 괴물 스핑크스가 바위산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던진 수수께끼다.
그것을 풀지 못하면 잡아먹었던 이 문제를, 자신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게 될 것이라는 신탁 때문에 방황하며 이곳을 지나던 오이디푸스가 마침내 풀게 된다. “그것은 인간이다. (It’s Man.)”
이 신화가 주는 의미를 우리는 무엇보다 인간이 과연 자신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라는 것으로도 해석한다.
인생의 단면을 때로 생로병사(生老病死)라고 간단히 설명한다.
태어나서 늙고 병들어 죽는 거라고. 맞다.
인간은 직립 동물임에도 태어나자마자 바로 일어서지 못하는 유일한 포유류다. 부모와 주변인의 지극한 보호와 관심을 받으면서 네발로 기어 다니다가 거의 1년이 지나야 비로소 혼자 걷는다. 그리고 활동하다가 마침내 늙어서 지팡이에 의존하는 신세가 된다.
나는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예전부터 떠올릴 때면, 인간의 걷는 것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 사실 나는 걷는 것은 자신이 있었다.
어릴 때 산골짝에 살면서 초등학교 10리 길을 걸어 다녀서인지 모른다. 사관생도 시절 잠을 자지 않고 걸었던 2박 3일의 100km 행군이라든지, 군 생활 내내 주기적으로 이루어지던 전술 행군, 오랫동안 취미로 즐겼던 등산 등. 그런 기회가 올 때마다 나는 자신 있게 걸었고, 걸으면서 쌓이는 자신감은 또 그런 나를 더 북돋워 주었다.
지금도 시간 날 때면 산책을 즐긴다. 걸을 때면 우울한 감정도 사라지고 1~2시간 걷고 나면 기분도 말끔해지고 상쾌해진다.
그런데, 이제 나이가 들어가면서 걷다 보면 신체의 변화가 조금씩 느껴지기 시작한다. 급격한 변화는 아니어도 조금씩 변화가 오고 있음을 가끔 느낀다.
만나는 친구들도 관찰해 보면, 예전의 힘차고 당차던 보행 자세가 아니라 힘 빠지고 처진 듯한 어깨 그리고 꾸부정하게 변한 허리, 고개를 떨구고 걷는 자세 등 인생의 중반을 넘어서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의식하지 않으면 무릎도 약간씩 굽어지는 느낌을 받는다. 한마디로 전체적으로 힘이 없어 보인다. 예전에는 자동으로 쭉 펴지는 무릎이었다면 지금은 의식을 해야 겨우 그렇게 된다고나 할까. 의자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서인지 고개도 똑바로 쳐들지 않고 턱이 쭉 빠지면서 등도 굽어지는 느낌이다.
테니스를 하고 골프, 산책 등을 하면서 나름대로 근육 활동도 활발하게 하고 있지만, 자세에 대한 긴장감이 그다지 생기지 않아서인지 보행 자세가 약간씩 변하는 것 같다.
정녕 사람은 늙게 되면 스핑크스 질문처럼 지팡이를 들어야만 하는 것일까.
매년 정부에서도 100세가 되면 기념으로 장수 지팡이(청려장)를 선물한다.
통일신라 때부터 조선시대까지 왕이 직접 하사했다던 그 지팡이를 이 시대에까지 꼭 줘야 하는 걸까.
지팡이 대신 다른 의미 있는 선물은 없을까.
120세까지도 부르짖는 안티-에이징 시대인 이때 허리 굽은 꼬부랑 할아버지가 되어서까지 오래 장수하면 과연 유의미한 것일까. 장수하는 나이 숫자보다 얼마나 건강하게 나이 드는가가 더 중요하다.
늙고 늙어서도 지팡이 신세만은 지지 않고 살아가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사람들 걸음걸이를 유심히 쳐다본다.
각양각색이다. 추운 겨울이면 대부분 손을 호주머니에 넣고 잔뜩 웅크린 채로 종종걸음으로 다닌다. 저러다 넘어지면?
등산할 때 장갑을 끼듯이 겨울에는 장갑을 끼고 보행하는 것이 좋다.
고개를 푹 숙이고 다니거나 핸드폰을 보면서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도 의의로 많다. 보행 자세에 앞서 안전하지 못한 모습이다. 고개와 턱은 약간 들어서 정면을 바라보며 걸어야 한다. 양팔도 상방 15° 정도로 앞뒤로 힘차게 흔들면서 걷는 것이 좋다. 다리도 가능한 쭉 펴면서 걸어야 한다.
지병이나 선천적으로 불편한 신체로 인해 보행조차 어려운 이도 있다. 동네 어떤 할머니는 거의 90° 굽어진 허리로 아무것도 실리지 않은 유모차를 끌면서 혼자 날마다 동네를 돌며 운동하는 모습도 보인다. 얼굴은 매우 건강하게 보인다.
제대로 걸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사실은 행복하다.
의외로 걷지 못하고 집안에만 종일 박혀 지내는 어르신이 상상외로 많다. 나이 들어서도 오랫동안 씩씩하게 걸을 수 있다면 더욱 좋겠지만 전반적으로 근육에 힘이 빠지는 나이를 고려한다면 자연스럽게 경쾌하게 오랫동안 걸을 수만 있다면 좋겠다.
사관생도가 처음 입교하게 되면 보행 자세부터 교정시킨다.
팔자걸음 교정은 물론이고 턱 밑에 연필을 끼어서 주름이 잡히게 하여 턱이 한없이 위로 올라가는 것을 방지하고, 소위 ‘0형’ 다리를 교정하기 위해 양 무릎 사이에 책받침을 끼어서 연필이나 책받침이 땅에 떨어지면 얼차려를 받던 기억이 난다.
식사할 때도 꾸부정한 자세가 되지 않도록 직각 식사를 강조하고,
의자에 앉을 때도 등을 의자에 붙이지 않고 꼿꼿한 자세를 유지하도록 하였다.
20대 초기 당시에도 그런 자세를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젊은 시절에 형성된 잘못된 자세는 나름 그렇게 강한 교육을 바탕으로 교정되어 한동안 오래 지속되었던 것 같다.
이제 누군가의 쳐다보는 시선도 덜 느끼는 요즈음.
스스로 교정해나가지 않으면 자세는 계속 무너지게 된다.
장시간 운전하는 것도 보행 자세를 나쁘게 하는 이유 중 하나다.
드러누워 장시간 핸드폰을 하는 것도 물론이다.
충분한 스트레칭을 하면서 근육이 뭉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어깨에 힘 빼고 가슴을 펴면서 간간이 심호흡도 한다.
제대로 된 보행 자세를 통해 건강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
예전에는 누군가가 나에게
“아직도 폼이 사관생도 같다.”
“여전히 군인 자세가 나온다.”라는 말들이 다소 어색하게 들리던 때도 있었지만,
지금 간혹 누군가가 “폼은 아직 군인 같다.”라는 말이 이제는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하여튼,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이제는 정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목소리는 하나인데, 네 다리, 오랫동안 두 다리가 되는 것은?(What has one voice and become four-footed and long time two-footed?)”
건강한 육체가 때로 정신을 지배하는 법이다.
나이 들어가는 나를 제대로 바라보면서 보행 자세부터 다시 살펴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