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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윈드 Oct 21. 2022

빗속의 열매들, 느릿한 발걸음과 여유로운 마음

가을비가 조용히 내리고 있습니다. 조금씩 물들어가는 잎새를 타고 흘러내리는 빗물은 이미 촉촉해진 땅 위에 떨어지며 가벼운 리듬으로 튀어나옵니다. 붉게 익어가는 작은 열매에 함께 달려있던 빗방울도 똑똑 떨어지며 경쾌한 음악을 만들어 냅니다. 비를 맞으며 소리 없이 익어가는 열매처럼 시간은 지나가고 가을은 이렇게 깊어지나 봅니다.      


아그배나무의 작은 열매들이 마치 악보의 음표 같습니다. 그 음표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며 가을날의 음악이 되네요. 아그배나무가 빗방울 소리와 함께 만들어내는 멜로디를 숨을 죽이고 들어 봅니다. 하루가 다르게 붉어지는 열매에 빗방울이 가득 맺혀있습니다. 마치 붉은 열매에 생기를 더하며 힘찬 울림을 만들어내는 것 같습니다.       


     

이슬비와 낮은 바람 그리고 작은 아그배나무 열매들의 상쾌한 리듬을 들어봅니다. 그녀들이 들려주는 가을 음악은 안단테 같기도 하고 알레그로 같기도 하네요. 지휘자가 없어도 여러 가지 색깔의 음표들이 빗방울과 함께 흥겨운 선율을 만들어 냅니다. 비에 젖은 감성은 붉게 익어가고 화음은 점점 풍부해지는 듯합니다.      


     

익어가는 야광나무의 열매는 비에 젖었지만 여전히 반짝입니다. 여럿이 머리를 맞대고 연주를 하는 듯도 하고 무언가 재미난 놀이를 하는 듯도 합니다. 산들바람에 젖은 머리를 흔들며 물방울을 털어내고 돌아서는 모습이 촉촉합니다. 하지만 얼굴은 다시 젖어오는군요. 점점 빨갛게 익어가는 모습에 열정이 가득합니다. 빗물은 뜨거운 마음을 식히며 물방울로 흘러내리는 듯하네요.       


한 알만이 남아있는 화살나무 열매는 빗물에 온통 젖어있군요. 뭔가 색깔이 변하는 듯한데 이제 조금씩 익어가는가 봅니다. 가는 줄기에서 내려온 두 알의 열매는 아직 청춘 같은 초록의 잎새 위에 포근하게 누워 잠들어 있는 듯합니다. 비록 비에 젖어도 마음만은 편안한가 봅니다.      


백당나무의 빨간 열매에 빗방울이 송알송알 맺혀있고 초록 잎은 노랗게 물들어가고 있습니다. 웬일인지 지난 오월의 그 많던 꽃들이 한 알의 열매로 남았네요. 하지만 아주 작은 꽃이 이렇게 커다란 열매가 되었다는 게 신기할 뿐입니다. 붉은 열매들이 마치 서로 꼭 껴안고 있는 듯합니다. 비를 맞아도 춥지는 않을 듯합니다. 뭔가 다정하게 익어가는 열매들의 모습을 보게 되는군요. 그런데 가지 끝에서 이제 피어나는 꽃은 어찌 될까요?


빨갛게 익어가는 미국 낙상홍도 바람을 맞으니 상쾌한가 봅니다. 그런데 반쯤만 남아있는 노란 잎과 잎맥이 선명한 초록의 잎 사이에서 비에 촉촉하게 젖은 모습이네요. 열매의 주황색이 주홍색으로 변해갑니다. 이제 아주 빨간 색깔로 진하게 익어가겠지요. 가을은 점점 더 깊어갈 것이고요.      


천천히 걷다 보니 이제 비는 거의 그쳐 가는 듯합니다. 마치 안개처럼 작은 물방울들이 조금씩 흩날리고 있습니다. 비가 그치고 바람이 불어오니 약간 서늘한 느낌도 듭니다. 하지만 아직 물방울을 달고 있는 붉은 열매를 보니 마음이 따뜻해지고 기분은 더욱 상쾌해집니다.      


붉게 익어가는 열매들과 함께 비제의 아를의 여인 모음곡 2번 중 미뉴엣을 들어봅니다. 부드럽고 달콤한 플루트의 음색이 왠지 바람 소리 같기도 하고 익어가는 아그배나무를 닮은 느낌도 듭니다. 가을은 또 이렇게 편안하고 따뜻하게 익어갈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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