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하늘, 가을바람 그리고 꽃과 열매들

가을 하늘이 맑고 파랗고 또 높습니다. 흰 구름은 엷게 퍼지듯 어디론가 흘러갑니다. 가을은 머나먼 하늘에서 차가운 물결과 같이 밀려온다던 어느 시인의 시구가 생각나는 아침입니다. 그런데 손으로 만지면 파란 물이 뚝뚝 떨어질 듯한 하늘에서는 산들바람도 불어옵니다. 얼굴을 간지럽히는 가벼운 바람을 느끼며 천천히 걸어봅니다. 파란 하늘도 보고 초록이 짙어 점점 물들어가는 나무들도 보면서요.      

파란 가을 하늘에 붉은 꽃사과가 달려있습니다. 가지 끝에서 빨갛게 익어가는 꽃사과는 산들바람에 가볍게 춤을 추듯 여유로운 모습입니다. 밝은 햇살을 받으니 붉게 빛도 나고요. 잎이 노랗게 물들어가고 가지 아래 주렁주렁 달린 붉은 열매들은 가볍게 살랑거립니다. 왠지 가을의 울림이 느껴집니다.        

산사나무의 빨간 열매와 초록의 잎도 흰 구름이 흘러가는 가을 하늘 아래 하늘거리고 있습니다. 붉게 붉게 익어가는 산사나무의 빨간 열매가 화사한 아침햇살에 빛이 납니다. 바람의 리듬에 따라 가벼운 율동을 보여주는 그녀들을 보니 깊어가는 가을을 더욱 느끼게 되는군요. 빨갛다 못해 검붉은 색감이 감도는 열매들은 왠지 뜨겁게 느껴집니다. 산들바람만이 그녀들의 붉은 열정을 식혀줄 수 있을까요?      

     

가을 햇살을 받는 빨간 열매는 가까이 들여다보아도 탐스럽기만 합니다. 정말 입맞춤을 부르는 아름다움이네요. 산사나무의 빨간 열매를 뚫고 내려오는 아침 햇살에서는 어떤 울림이 느껴집니다. 그런데 그녀들은 눈이 부신 듯하군요. 산책자도 그렇고요.     

따사로운 햇살을 등 뒤로 맞으며 산딸나무를 올려다봅니다. 지난봄에 마치 춤을 추는 나비처럼 꽃이 피더니 이제 열매가 붉어지고 있네요. 독특한 모습의 열매는 햇살도 받고 바람도 맞으며 붉게 익어가고 있습니다.     

감나무에서는 감도 익어갑니다. 주황색 감이 주렁주렁 달린 가지가 한가롭게 흔들거리고 있습니다. 점점 익어가는 감은 언제 봐도 익숙하고 편안한 느낌이네요. 오랫동안 보아왔기 때문일까요? 그런데 감나무 아래의 벤치에는 밝고 투명한 햇살이 맑은 바람과 함께 내려앉고 있습니다.      

     

야외 카페의 화분에는 국화꽃이 한창입니다. 여러 가지 색깔의 국화꽃과 진한 향기가 한데 어우러지며 또다시 가을을 느끼게 해 줍니다. 아침 햇살을 받는 흰색 국화는 새초롬한 모습입니다. 약간 눈이 부신 듯도 한데 가까이 다가가니 맑은 향기를 뿜어주는군요. 독특한 모습의 노란 국화는 따뜻한 가을 햇살을 받고 있습니다. 왠지 우아한 미소를 띤 그녀들의 어떤 이야기가 도란도란 들려오는 듯합니다.      

붉은색과 노란색이 섞여있는 국화는 힘찬 율동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떤 군무를 보는 듯도 하고요. 주황색의 국화도 활짝 피어있습니다. 주황색 꽃에서는 주황색 향기가 날까요? 서로 어울려 피어있는 진한 분홍색과 주홍색의 국화들은 자신들이 더 아름답다고 뽐을 내는 듯합니다. 코를 대보니 둘 다의 진한 향기에 어찔해지는군요.       

국화 향기와 함께 커피 향이 어우러지니 가을 아침이 더욱 따뜻해집니다. 이제 뜨거운 커피를 들고 가볍게 걸으며 붉게 익어가는 매자를 바라봅니다. 다채로운 색깔로 물들어가는 잎사귀 사이의 붉은 열매는 점점 단단해지는 듯합니다. 알록달록한 잎 사이의 붉은 그녀들은 어떤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일까요?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서로를 바라보고만 있는 것일까요? 어느 가을 아침의 매자는 이렇게 소리 없이 붉게 붉게 익어가고 있네요. 봐도 봐도 예쁘기만 한 그녀들이 오래도록 남아주기를 바라봅니다.     

아직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음악을 들어봅니다. 어느 젊은 연주자의 부드러운 비올라 연주가 마음에 드네요. 그녀의 연주로 듣는 막스 브루흐의 로맨스가 커피 못지않게 달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