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블루윈드 Oct 21. 2022

가을, 아침 산책에 오감이 즐거워지다.


맑은 가을 아침입니다. 창밖으로 나뭇잎들이 물들어가고 있네요. 오늘은 과테말라에 사는 친구가 보내준 안티구아를 내립니다. 마른 원두에 뜨거운 물을 부으니 바삭바삭 소리를 내며 거품이 생기고 스모크향이 올라오네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니 입안이 행복해지며 몸도 훈훈해지는 듯합니다. 텀블러에 커피를 담아 산책에 나서 봅니다.      


피부를 깨우는 쌀쌀함이 상쾌한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공기는 차갑지만 밝아오는 아침 햇살에 온기가 점점 퍼지는 듯하네요. 가을 햇살을 받고 있는 화살나무의 붉은 잎이 타오르는 듯합니다. 어쩌면 불화살 같은 이 붉은 화살나무 잎을 신호로 해서 여러 나무의 잎들이 물들기 시작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늘 쪽의 화살나무에는 아직 초록색 잎 사이사이에서 붉은 열매들이 돋보입니다. 좀 자세히 들여다보니 겉껍질이 깨어지며 붉은 씨앗이 드러나네요. 정말 붉네요. 야리야리한 속살이라서인지 자꾸만 손길이 가는 걸 힘들여 참아봅니다.     


     

화살나무의 가지에서 가는 줄기가 나오며 그 끝에서 열매를 맺는군요. 생각해보니 지난봄의 연두색 꽃도 이 줄기에 피어있었네요. 어떤 열매는 잎새 위에 누워있는데 이제 기지개를 켜며 깨어나려나 봅니다. 아름답고도 편안한 느낌입니다.      


지난여름에 피어나던 풍선덩굴의 작고 하얀 꽃이 마치 풍선 같은 열매로 커가더니 갈색으로 익어갑니다. 여러 개의 크고 작은 초록 풍선도, 갈색으로 익어가는 풍선도 아직도 피어나는 꽃과 함께 바람에 흔들립니다. 그런데 주황색 꽃이 예뻤던 유홍초는 벌써 갈색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아직 초록빛인 잎새 사이에서 꽃사과들도 익어갑니다. 혼자서도 씩씩하게 익어가고 둘이서 혹은 여럿이서도 붉어지고 있습니다. 어느 꽃사과 삼자매는 꽤나 사이가 좋은지 머리를 맞대고 있군요. 뭔가 재미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듯합니다. 밝아오는 햇살과 부드러운 아침 바람에 즐거운 표정과 몸짓도 하면서요.     


찬 바람에 살짝 흔들리는 긴 가지의 매자나무 열매가 빨갛게 익어갑니다. 노랗게 물들어가는 초록의 잎과 갸름한 모습의 빨간 열매가 붉게 반짝이는군요. 이제 햇살을 받으면 더욱 반짝이겠죠?          


좀작살나무의 보라색 열매는 정말 진하게 익어가네요. 흔들리는 초록 잎새 사이의 보랏빛 열매에서는 정말 보랏빛이 진하게 배어나옵니다. 좀작살나무 열매의 호흡에 따라 보랏빛 향기가 뿜어져 나오는 듯도 하고요.      


     

이제 조금씩 노랗게 물들어가려는 잎새 사이의 낙상홍도 빨갛게 익고 있습니다. 가지마다 주렁주렁 달린 빨간 열매들이 따뜻해 보이기도 합니다. 커다란 잎새 사이에 모여있는 붉은 열매들은 왠지 다정한  느낌도 들고요. 이 가을에 낙상홍은 열매도 잎도 곱게 물들어 가는군요.       


박주가리의 구불구불한 줄기마다 하트 모양의 잎은 노랗게 물들어가고 아직 연두색인 열매는 뭔가 느긋한 모습입니다. 약간 노란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올록볼록한 표면은 연한 보랏빛을 띠기도 하는군요. 가는 줄기의 노란 잎과 연한 연두색 열매들이 가는 줄기의 이곳저곳에서 바람을 타고 한껏 여유를 부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매자, 낙상홍, 좀작살나무 그리고 박주가리는 지금이 절정일까요? 그런데 볼 때마다 절정이었던 듯도 합니다. 어쩌면 언제나 그렇게 느낀다면 모든 때는 언제나 절정 아닐까요?      


가는 줄기에 가득한 남천의 붉은 열매들이 아침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습니다. 열매들이 흔들릴 때마다 맑은 방울소리가 나는 듯합니다. 뭔가 즐거운 가을 아침의 울림을 느껴봅니다.      


잠시 정자에 들러 음악을 들어보려는데 어떤 열매들이 시들어 흩어져 있습니다. 아마도 어제 소꿉놀이를 하던 소녀들이 남기고 간 흔적 같습니다. 문득 김광균의 외인촌의 한 구절이 생각납니다.     


안개 자욱-한 화원지의 벤치 위엔

한낮에 소녀들이 남기고 간

가벼운 웃음과 시들은 꽃다발이 흩어져 있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놀던 소녀들은 가벼운 재잘거림과 시들은 열매들을 남기고 갔네요. 혼자서 정자 주위를 맴돌다가 멀리서 다가오는 소녀들을 보며 반갑게 소리치던 어떤 소녀가 생각납니다. 왠지 소녀들이 남기고 간 즐거웠을 흔적이 정겨워집니다.      


가을 아침, 붉은 열매들의 울림에 눈이 즐겁네요. 그리고 커피의 스모크향도 좋고 적당한 산미와 묵직함이 느껴지는 진한 맛도 좋습니다. 그리그의 아침 분위기(Morning Mood)를 들으니 맑은 플루트와 오보에 그리고 오케스트라의 멜로디에 귀도 즐거워집니다. 정자에 앉아 점점 다가오는 따스한 햇살과 함께 산들바람을 맞으니 오감이 즐겁군요.           



이전 08화 가을 하늘, 가을바람 그리고 꽃과 열매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