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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윈드 Oct 21. 2022

쇼팽의 녹턴 두 곡과 함께하는 어느 가을날


어느 고요한 가을날 아침입니다. 창문을 여니 화사한 햇살과 함께 서늘한 바람이 가득 들어옵니다. 이 반가운 손님들은 얼굴과 가슴을 따뜻하게도 시원하게도 만들어줍니다. 뜨거운 커피를 한잔 들고 창밖을 내려다보니 나뭇잎들은 이제 조금씩 물들어가려나 봅니다. 누구는 노랗게 누구는 조금씩 빨갛게 변해가는 듯합니다.      


쇼팽의 녹턴 Op.9 No.1을 들어봅니다. 밝은 햇빛이 붉은 열매 위에 반짝이는 듯도 하고 맑은 물방울이 초록 잎에서 튀어 나는 듯도 합니다. 조금 느린듯한 브리지트 엥게러의 연주가 편안하네요. 그저 눈을 감고 느껴봅니다.      


맑고 깨끗한 가을 햇살이 사철나무에 내려앉으며 익어가는 열매를 흔들어 깨웁니다. 익어가던 열매가 터지듯 벌어지고 주황색의 속살은 햇살에 반짝입니다. 그늘 쪽으로 아침 햇살은 느릿하게 다가오고 긴 줄기 끝에 달린 붉은 아그배나무 열매는 가볍게 흔들거립니다. 그녀의 움직임에 다시 바람결이 느껴집니다. 선선한 바람은 잔뜩 뜨거워진 그녀의 얼굴을 조금 식혀주고 있습니다.      


    

이 가을은 화려하면서도 오만하지 않고 빛나면서도 요란하지 않은 열매들처럼 그렇게 깊어가나 봅니다. 지난봄의 꽃들이 열매가 되고, 뜨거운 여름의 햇살도 받고 차가운 비도 맞더니, 이제 가을의 익어가는 열매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변덕스러운 날씨를 견뎌내며 시간의 흐름 속에서 겸허하게 안으로 씨앗을 키워왔겠지요. 언제나 느끼지만 자연은 경이롭습니다.        


쇼팽의 녹턴 Op.9 No.2를 들어봅니다. 뭔가 달콤한 느낌이 납니다. 밝은 햇살과 산들바람을 맞으며 익어가는 열매들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발렌티나 리시차의 연주는 부드럽고 마음은 점점 잔잔해져 옵니다.      


빨간 볼이 터질 듯 부풀어 오른 낙상홍 열매에서 빛이 납니다. 그녀는 화려하지만 뭔가 겸손한 느낌도 듭니다. 그렇게 고마워하는 마음으로 나뭇잎 사이로 내려오는 햇살을 기다리는 듯도 하고요. 밝은 햇빛이 받으며 야광나무 열매는 조금씩 붉어집니다. 그녀의 해맑은 미소는 아침의 작은 울림이 되어갑니다.      


그늘진 곳에서도 보라색의 좀작살나무 열매는 진하게 익어갑니다. 긴 가지 끝에서는 잔잔하게 출렁이며 보랏빛 향기를 날리고 있습니다. 바람에 춤을 추는 것인지 그녀가 바람을 일으키는 것인지 알 수가 없군요.     


    

풀숲의 고요는 빨갛게 익어가는 매자의 울림에 깨어납니다. 이제 햇빛은 멀리서 다가오지만 그녀는 스스로 뜨거움을 간직한 듯도 합니다. 둥그스름한 잎은 여러 가지 색깔들이 섞이며 알록달록 물들어 가고요.      


쇼팽의 녹턴을 들으며 가을의 열매들을 다시 보니 마음이 고요해지며 유유자적한 느낌도 듭니다. 이 정도 느낌이라면 굳이 산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될 듯합니다. 그저 사람들이 사는 도심에서 스스로 이렇게 느껴보는 것도 괜찮은 듯하고요. 세상은 계속 변해가고 마음은 흔들리지만 균형을 잡는 것은 여전히 우리 자신인 듯합니다. 왠지 이 가을이 조금 천천히 갔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이전 09화 가을, 아침 산책에 오감이 즐거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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