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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 Sep 28. 2022

당신은 어떤 상담사인가요?(1)

30대 후반에 겪은 일이다.

그때 나는 7년간 하던 일을 접고 실직 상태였는데, 시청 종합민원실에 등본을 떼러 갔다가 "일자리센터"라고 쓰인 곳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구체적인 니드가 없이 즉흥적으로 상담을 게 되었다. 그 무렵의 나는 새로운 일자리가 필요하긴 했지만 어떤 업종, 어떤 직종으로 재취업을 하겠다는 계획이 전혀 없었던 상태였다.


비어있는 상담 창구에서 랜덤으로 마주 앉은 직업상담사는, 당시의 나보다는 몇 살 더 연배의 여성으로 보였다. 40대 중후반 정도로 보였던 그녀는 자기 직업에 대한 프라이드가 뿜뿜 느껴졌다. 그래서 였을까,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은 후에 그녀가 하는 일에 대해 가볍게 물어봤다. 말 그대로 아주 가벼운 호기심이었다. 나는 그 뒤로 5년 후에 직업상담사가 되긴 했지만, 그녀에게 질문을 하던 그 당시에는 내가 직업상담사가 될 거라고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시점이다.


나는 그저 자기 일에 대한 자부심이 쩔어 보이는 그녀의 태도를 보며 직업상담사라는 직업에 대해 막연한 궁금함이 일었는데,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그녀는 갑자기 매우 도도하고 권위적인 표정과 스탠스를 취하면서 직업상담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말을 거침없이 내뱉었다. 그런데 그때의 나는 꽤 나이브했던 것 같다. 나는 그녀의 태도에 문제성을 못 느끼고 '아 그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구나' 그렇게 수긍하고 그 자리를 떴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녀의 안하무인과 달리 나는 직업상담사가 되었고 구인구직 업무 관련해서는 그녀의 상급기관인 고용노동부에 입사했다. 나는 자칭 타칭 유능한 상담사가 되었기 때문에 그녀의 진로코칭은  결과적으로 매우 부적절했고, 직업상담사로서의 무능함도 판명된 것이다.


나는 고용센터에 입사 후 시청 일자리센터 상담사들을 대상으로 업무 관련 강의를 진행한 적이 있는데, 안타깝게도 그곳에서 그녀를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니 뭐 지금쯤 청와대에 계시려나?


단언컨대, 직업상담사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이 일이 적성과 흥미에 맞고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이타심이 있다면 말이다.


그로부터 몇 년 후, 마흔세 살 무렵에 나는 인성강사를 준비 중이었다.

당시 여성새일센터에서 계약직 직업상담사로 근무 중이던 대학 선배의 부탁을 받고, 새일센터에서 진행하는 3일짜리 집단상담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다. 인원 미달로  머릿수를 채우기 위해 참석하게 된 것이다.


나는 그때 구직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집단상담 프로그램을 처음 경험했는데, 인성강사를 준비 중이었기 때문에 당시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30대 중반 여자 강사에게 몇 가지 개인적인 질문을 했다. 집단상담 진행 강사의 입직 경로와 자격 요건, 전망 등에 대해서 물었던 것 같다. 그런데 데쟈뷰 현상이 발생했다. 그녀 역시 매우 권위적인  말투로 아무나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대학원을 안 나왔으면 엄두도 내지 말라는 식으로 거만하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그로부터 다시 2년 후, 마흔다섯에 나는 운명인지 팔자인지 직업상담사가 되었고 고용노동부에 입사했다. 2015년 9월, 대전의 인재개발원에서 4박 5일에 걸쳐 당시 공채 합격자 200여 명의 신입 교육이 진행되었다. 그런데 어떤 여자분이 아주 나서기를 좋아하더니  교육기간 동안 내내 활개를 쳤다. 이 여자를 분명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았는데 도저히 기억이 안 나더니, 교육 3일 차에 드디어 기억이 났다! 그녀는 바로 대학원 운운하던 집단상담 운영 강사였던 것이다.


2015년 9월에 처음 공채를 도입하여 채용한 고용노동부 무기계약직 직업상담사의 1호봉은 141만 원이었다. 별도의 식대도 없었으니 말 그대로 최저임금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


재밌는 것은, 대학원 씩이나 나오시고 집단상담 강사로 아주 그냥 커리어 뿜뿜 하시던 그녀가 그 대단한 커리어를 다 포기하고 141만 원짜리 고용의 안정을 선택했다는 것이고, 그렇게 무시했던 실업자 아줌마와 입사동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아마도 이점은 누구보다 그녀 자신이 퍽이나 쪽팔렸던 것 같다. 내가 몹시 반갑게 아는 체를 하였으나 그녀가 그 뒤로 나와 눈도 안 마주치려고 한 것을 보면 말이다.  입사 8년 차인 그녀는 아직도 그 도도한 습성을 못 버리고 고용센터에 오는 많은 실업자들을 눈 아래로 내려 깔고 상담을 하고 있을까? 대학원 덕분에 나보다 1호봉 더 받으시니 그게 위안이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권위라는 것은 내가 주장하거나 내세우는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프라이드와 긍지가 넘치는 것과 타인이 인정하는 권위는 다른 영역이다. 진정한 권위는 상대방이 인정해줄 때 성립된다.


직업상담사로서 진정한 권위를 내세우려면 일단 본인들의 안목과 실력부터 길러야 한다. 누군가의 진로상담에 있어서 제대로 된 코칭도 못하는 안목과 실력으로 도도하게 실업자들에게 군림하려는 부류들을 나는 경멸한다. 사명감 따위는 바라지도 않을 테니 제발 좀 겸손하기라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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