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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재 Apr 26. 2022

김이사의 부동산월드 4 - 사라져버린 손님



가끔 무서운 손님도 만난다.
협박을 하는 손님이 아니라, 중개수수료를 떼먹고 튀는 그런 사람들.

 난 또한 20년을 하면서 수수료를 못 받은 적이 딱 한 번 있었다.
상대는 주지 않으려고 바득바득 기를 썼지만, 한 성격 하는 나는 매일 찾아가 그들을 독촉했다.

 어떨 때는 자리에 없고, 어떨 때는 고개를 푹 숙이며 “내일 드리겠습니다.” 하는 소리를 들으며 회피하는 모습이 사람을 열 받게 했다. 제각기 사정이야 있겠지만 어쩌겠는가. 이게 내 일인 걸. 매번 찾아가야 하는 나도 귀찮고 짜증 났다.

돈 못주는 아가씨도 오죽하면 그러겠냐.. 싶다가도, 막상 찾아가 보면 자기 할 짓은 다 하고 산다. 그래서 오기로 찾아갔더니 웬걸, 아가씨가 증발해버렸다. 왜 사라졌나 봤더니, 빚에 몰려 다른 나라로 떠났다고 한다. 참 환장할 노릇이다.

아, 그러고 보니 내가 있던 부동산 근처에, 아버지와 딸이 하는 부동산이 있었다.
딸의 체격은 역도 선수 급이었고 아빠는 왜소했다. 그래서 부녀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루는 그곳에서 내가 잃어버린 손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체격 좋은 그 딸이

 “실장님도 그런 적 많으시구나. 저도 못 받은 적 있어요.”

-라고 하는 게 아닌가.

물론 나와는 다른 손님이었는데. 계속 돈을 안 주던 그 사람이 갑자기 와서 돈을 받아가라고 하더란다. 반가운 마음에 한달음 가려고 하던 순간, 아버지가 나서더니

“부른다고 그리 가는 게 아니라며 자존심을 지켜!”

 라고 했고, 딸은 기다렸다.
결과가 어땠냐고? 못 받았단다.

그 손님은 떠나기 전 주고 가려고 했을 뿐인데, 안 가서 못 받았다는 것이다.

아빠의 가르침으로 인해 때를 놓친 딸은 “이러니 우리 부녀가 맨날 된장찌개 하나에 공깃밥 추가로 산다니까요.”라고 하소연하곤 했다.

가끔 하던 하소연은 진심 그 자체였는지, 얼마 안 가 딸은 지긋지긋한 아빠의 가르침을 뒤로하고 의정부로 떠났다. 꿈이었던 강아지 미용사가 되겠다고 말이다.

딸에게 “살 빼야 한다”는 이유로 한 시간 넘는 거리를 도보로 출퇴근시키던 아빠를 떠나 지금 쯤 꿈을 이루고 살아가고 있을까? 연락이 끊긴 지 오래지만, 가끔 궁금하기도 하다.

 사람들은 부동산일이 아무나 하면 다 잘하는 줄 알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호기롭게 시작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서 떠나는 사람 여럿 보았다.

아무나 다 할 순 있어도,
아무나 다 잘 해내진 않는다.

내가 하고픈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큰 복이다.
다만 그걸 못 찾아내기 때문에, 혹은 먹고사는데 급급해서 하지 못 하는 게 안타까울 뿐.

 포기하지만 않으면 된다.

나를 봐라.
할머니라 불리는 나이에 처음 글을 쓰는 걸 보면
이 세상에 안 해서 그렇지 못할 건 없다.

누가 봐주지 않아도
이렇게 기억을 되살릴 수 있는 이 순간.

나는 소소한 행복을 느낀다.

 
2022.04.14
드레스룸 한 귀퉁이 나만의 공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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