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내린 곳에서 백화를 끌어안다

따뜻한 사제의 정은 울컥합니다

by 은후

방콕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복잡한 것 싫어해서 단순한 Simple Life를 추구했다. 가뜩이나 꼬인 생, 굳이 애써서 관계에 매달리는 물방울이 되긴 싫다. 똑 떨어질 원천이라 말하지만 밑바닥이라 읽는 심연에 빠지고 싶지 않다.



비우고 내려놓고 또 비우고 내려놓은 뒤에야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제야 겨우 쪼개진 천 같던 우물 밖 세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흐드러지게 핀 꽃이 보이고 또 사람이 보였다. 내 안에 있던 불순물을 어지간히 꺼냈던 것일까. 아니면 너무 비워 임계치에 다다른 것일까.



새로운 관계란 고리는 만지면 한겨울에 성에로 달라붙는다. 그 애잔한 온기를 찾는 차가운 열정만 같았다. 가까이 오기 시작하면 곁에 당도하기도 전에 스스로 등을 보였다. 철조망 철선이 나였다. 원래의 나는 경계심이 없고 무방비했다. 언제부턴가 삐긋하더니 결로를 이탈한 걸 느꼈다.



유난히 감이 좋은 건 어쩌면 이탈한 아싸의 삶에 쥐어진 판도라의 소망처럼, 살아내라는 높은 곳의 요요줄일지도 모른다. 그마저 던져주지 않으면 나약한 인간인 나는 살아갈 수가 없다는 판단을 했을 것이다.



잘 견디어낸 나에게 선심을 베풀어 주는 걸까. 외국 작가의 소설이나 동화의 이야기속에 들어있는 자작나무숲이 유난히 동경을 불러일으켰다. 상상으로만 그렸던 스케치를 화담숲에서 만났던 게 작년이다. 처음 본 순간부터 상상을 만족시키는 백화와 난 사랑에 빠져 보라보라했다.



무심코 작년 본 화담숲에서 본 자작나무숲을 꺼내 펼쳐보였다 너무 좋았다고. 선생님은 자작나무는 원대리를 가야 진짜를 본 거라고 조용히 말씀하신다. 내 눈에서 초롱초롱한 샛별을 보신 걸까. 아니다. 내 눈에 얽힌 그 설렘을 빙자한 간절함을 발견하셨을 게다.



편도만 자차로 세 시간이 소요된다. 목적지에서 이동하는 거리까지 계산한다면 그 이상일 것이다. 제일 어린 나는 밤눈이 어둡고 차도 연식이 오래되었다. 다른 선배님은 코로나에서 벗어난지 얼마되지 않았고, 또 다른 선배님은 자타가 인정하는 길치중에 길치이다.



나도 모르게 추진한 인제행은 참으로 송구하다. 제일 연장자이며 우리들의 스승이신 선생님이 총대를 스스로 짊어지신다. 이렇게 고맙고도 죄송할 수가 있을까. 그럼에도 철없는 나는 그저 좋다. 진짜배기 자작나무숲을 볼 생각을 하니 주책맞게 가슴이 두근거린다.



하나 하나가 살이 되고 뼈가 되는 허투루 흘린 것이 아닌 말씀을 귀담아 들었다. 중간 휴게소에서 커피도 한 잔 하면서 목적지에 도착했다. 숲속의 요정들이 산책할 만한 파스타 그릇처럼 생긴 고사리 비슷한 식물이 꽤나 치인다. 게다가 졸졸 흐르는 계곡물소리는 듣기만 해도 시원하다. 그 사이 사이에 핀 이름모를 연보라, 연분홍 꽃이 숨어서 지켜보고 있다.



선생님은 굴곡진 돌길을 걷는 우리가 안쓰러운가. 지난 번에 온 평탄한 길이 아니라 잘못 데려왔나 미안한 길이라며 염려하신다. 난 가벼운 몸을 살려 뛰어 앞섰다. 뒤에 오는 선배와 스승님의 오늘의 인생컷을 찍어야 한다는 소명으로. 1.5킬로미터는평지 기준일 것이다. 그렇다면 산에서는 잘못된 거리가 아닐까. 마치 이상과 현실의 괴리와 동급이다. 한참을 오르막길을 걸은 것 같은데 여전히 1.3킬로미터라니. 겨우 200미터를 걸어올랐다는 말인가. 뭔가 착오인 것만 같다.



오, 보이기 시작한다. 푸른 녹음이 가린 나무들 속에서 사이사이로 백화가 보인다. 푸름에 나타난 백색이라니. 자작자작 소리가 나서 자작나무가 아니라고 후작같은 자작 귀족이라고 난 무조건 우길 것이다. 장신의 늘씬한 자태에는 튀어나온 옹이 하나 없이 매끈하다. 마치 인간계가 아닌 천상계같다. 차원이 다른 나무는 스승님 말씀으론 척박한 땅에서 자라며 수령은 겨우 나무로선 단명인 60 년밖에 못 산단다. 그마저 땅이 비옥해지면 스스로 죽음에 이른단다.



빼어난 외모 만큼이나 절개와 굳은 심지가 돋보이는 자작나무이다. 내가 우길만한 귀족의 품격이 느껴진다. 배부른 돼지는 되지 않겠다는 건가. 안주하는 안온한 삶보다 고난을 택하는 가시밭길 생을 사는 귀족은 껍질이 얇게 벗겨진다. 속살은 매끄럽고 마치 분필로 칠한 것처럼 백옥 같다. 무슨 나무가 이렇게도 곱게 생겼을까. 천상 우리네 선비 같다. 무릇 선비라 하면 배가 고프다고 기름진 것을 허겁지겁 먹지 않았다. 가히 자작이라 칭할 만하다.



방콕하는 제자의 초롱한 눈망울을 외면하지 않고 기꺼이 핸들을 잡으신 스승님 또한 귀족스럽다. 자작나무처럼 늘씬한 키는 184센티미터에 육박한다. 청바지, 수트 등 TPO에 맞게 어떤 옷이든 소화하는 본인은 모르는 타칭 멋진 옷걸이를 소유하셨다. 마치 자작나무처럼 어디에서든 눈에 띄는 신장에 스스로 성찰하며 내면을 가꾸시는 분이다.



하늘이 내린 인제라는 이정표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인제인지 인재인지 둘 다 생각할 여지가 있다. 인제 가면 언제 오냐는 인제에서 원대리 자작나무숲에 닿았다. 백화가 건넨 사제의 도타운 정을 확인한 나는 감동을 받아 붉은 노을이 된다.



연보라와 붉음이 조화로운 저녁 서쪽 하늘이 차창에 닿았다. 창문을 내리고 외쳐본다. 보라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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