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가 돌린 바람개비

삼 대가 함께 한 섭지코지

by 은후

때로는 과감한 결단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그걸 기특하게도 막내가 해낸다. 엄마의 생신을 맞아 온 가족이 제주도를 꿈꾼다. 명분 있는 여행이니만큼 흔쾌히 따라나설 것이라 엄마를 지레 짐작한, 가슴에서는 파스텔 색종이가 바람개비를 만든다.



걷는 건 젊은 이 못지않던 작년과 다른 체력을 절감한 엄마는 야속한 멀미까지 한다.. 관절이 있음에도 몸을 움직여 걷기를 실천해 왔다. 한 해 다른 몸은 마음과는 점점 따로 노는 불협화음을 낸다.



말하면 뭣하랴.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새끼들과 여행인데... 행여나 생때같은 자식한테 가슴의 브레이크가 되진 않을까. 앞선 마음을 잡아챈다. 부풀었던 꿈은 주연의 캐스팅 거절로 푸시식 바람이 빠지고 만다.



허를 찌르는 예약과 선입금으로 시동을 걸었다. 지혜롭게 영리한 동생은 지칠 줄 모르는 추진력에 모터를 장착했다. 취소 위약금이란 이마를 동여맨 금전 손실은 예리하다. 엄마의 마음을 꿰뚫은 날카로운 통찰로 꿈이 현실로 대류 하고야 만다.



황혼인 엄마도 여전히 여자이다. 햇볕에 비친 내 옆얼굴을 보고 놀라신다. 깨끗하던 피부에 드리워진 그늘을 보신다. 주근깨 또 갓 올라온 점들이 도드라진 것이리라. 함께 피부과에 가서 점을 빼자 하신다. 농인지 진담인지 해사하다. 나도 그냥 사는데 엄마께 자연스럽게 살자고 했다. 엄마는 귀엽게 발끈하신다. 마음은 봄에서 멈춤인데 노화만 가을에서 더 질주한다.



여행은 어른도 아이처럼 들뜨게 한다. 뭍과는 사뭇 다른 섭지코지 바다와 현무암, 꼬리를 늘어뜨린 말, 스카프를 잡아끄는 봄을 품은 바람은 잔잔한 마음에 파문을 일으킨다. 하늘과 바다란 경계를 짓고 싶지 않은 수평선이 손짓한다. 이에 어우러지는 패러 글라이딩의 모터 소리는 자진모리장단처럼 발걸음을 춤추게 한다. 관절이 있어 조심스러운 엄마도 이들의 아름다운 유혹에 넘어가 한 폭의 풍경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민다. 젊어진 입가에 부드러운 곡선이 유려하다.



남은 뒤란이 제각각인 삼대는 깊이는 다른 한길을 걷는다. 계단을 한 줄로 올라간 정상에서 내려다본 절경이 여인이 풀어놓은 삼단 같아 눈이 호강한다. 터닝 포인트를 바라는 딸, 앞길이 구만리인 열 살, 기약할 수 없는 앞이 아련한 황혼은 같은 모양 바위를 본다. 새끼 돌고래가 꼬리로 바다를 흔드는 재롱만 같아 눈이 초승달처럼 휜다.



얕은 눈망울과 깊은 심연은 다른 시간의 추를 따라 저속과 고속으로 걷고 있다. 쉬었다 일어설 때면 삐걱거리는 무릎이 지난 세월을 읊어준다. 지난해 차에서 내릴 때 덜걱거린 다리로 우린 철렁한 가슴을 부여잡았던 적이 있다. 한 해가 다른 운동 기능은 내년을 기약할 수 없다.



쇠잔한 가동력과 따로 노는 영혼의 간극을 메울 수는 없을까. 오랜 담금질에 무쇠가 되듯 사람도 그러하면 세월의 언어를 차곡차곡 쌓은 노인은 다이아몬드가 될 것이다



무정하게 현무암을 때리고 누르는 파도가 질곡의 지난 시간만 같다. 바라보는 가냘픈 산수의 뒤태가 애잔하다. 제주에 훈풍이 분다. 우리 삼대의 가슴 한 켠에도 잊지 못할 바람개비가 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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