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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후 Jan 08. 2024

포스트 모던시대에 꽂히는 인간다움

인문학이 떠오른다

후기 포스트모던 시대, 인문학이 뜬다


우리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구글 딥마인드(deep-mind)가 개발한 알파고가 인류가 낳은 가장 지적인 게임을 쉽게 이기고 만 순간을. 2016년 3월 9일 세기의 대결이 열렸다. 게임이 무르익을수록 지구별 사람들은 일심동체가 돼 우리의 바둑기사를 응원했다. 알파고는 1국에서 백, 2국에서 흑, 3국에서 백 불계승을 거둔다. 이세돌 9단이 180수 백 불계승으로 4국에서 혼신 끝에 1승을 이뤄냈으나 280수 백 불계승을 거둔 5국의 알파고를 역전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tvN 드라마인 '응답하라 1988'의 주인공 롤모델(role-model)이라는 이세돌 바둑기사의 승리를 우리는 낙관했다. 경기가 시작되기 전까지 고수 중의 고수인 이 9단이 설마, 인공지능을 상대로 지지 않을 거라고 그의 뛰어난 바둑 실력과 우리의 우물 안 세계를 믿었다. 막상 뚜껑이 열리고 난 뒤 우리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복기하기도 힘든 바둑의 세계, 바둑만큼은 따라올 수 없을 거라 믿었던 깊은 뿌리는 경기가 진행될수록 좌절감으로 점차 뽑혀 나갔다. 인공지능과의 두뇌 싸움에서 1승을 거둔 이세돌 기사는 알파고를 이긴 남자로 처음이자 마지막을 장식하게 되었다.


지난 12월 8일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와 유럽의회, 27개 EU 회원국 대표는 전날 24시간의 기나긴 협의에 이은 15시간 마라톤 논의 끝에 AI 규제에 잠정 합의했다. 인공지능(AI) 개발과 운영에 대한 포괄적 규정을 담은 ‘AI 규제법’이다. 정부 생체인식부터 Chat GPT 등 민간 시스템까지 모든 AI를 포괄하는 세계 첫 AI 규제안이다. 다만 국가안보 및 테러 관련 사항은 별도라고 한다. 구글을 필두로 인공지능(AI)에 강한 미국을 견제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하지만, 예상보다 빠르게 진화하는 인공지능(AI)에 발맞출 수 없는 제도의 허점을 방관할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이 고조된 감도 없지 않아 있다.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 또는 탈근대주의는 일반적으로 근대주의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서양의 사회, 문화, 예술의 총체적 운동을 일컫는다. 특히 근대주의의 핵심인 이성 중심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내포하고 있는 사상적 경향의 총칭이다. 80년대 이전까지는 일련의 관련 사상가들이 그냥 '탈구조주의(post-structuralism)'로 뭉뚱그려 구분했지만, 1979년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가 <포스트모던의 조건 The Postmodern Condition>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용어를 명시적으로 사용함으로써 하나의 사상적 사조로 분류되기에 이르렀다. 과거와 결별하고 새로운 시대의 이성적 문화적 법칙을 만들어내려 했던 권위적인 모더니즘과 달리 이성과 권위를 거부하며 다양성을 추구한다. 요약하자면 모더니즘은 규칙성, 이성성, 효율성, 남성성을 내포하는 사상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그 반대의 속성을 지닌다.


후기 포스트모던 시기는 `증강현실(AR), 가상현실(VR), 인공지능(AI)`의 시대라고도 할 수 있다. 눈부신 기술의 진보로 인해 인류의 생활양식은 급격히 변하고 있다. Chat GPT-4로 대변되는 대화형 인공지능 운영체제(OS)인 사만다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 남자가 있다. 아카데미 남우 주연상에 빛나는 호아킨 피닉스의 영화 ‘Her’가 현실이 될 수도 있겠다. 이 거대한 혼란 속에서 우리는 인문학을 꺼내지 않곤 버틸 재간이 없다. 인간다움을 잃지 않아야 할 작금의 대격변 속에서 그 어느 때보다 인문학의 존재감이 뜨겁게 떠오른다. 문학, 역사, 철학으로 대표되는 인간과 관련된 근원적인 문제나 사상, 문화 등을 중심으로 한 인문학의 역할이 절실히 요구된다. 우리만의 고유한 영역이라 믿었던 창조 과정인 예술까지도 넘보는 인공지능(AI) 시대에 인간다움이란 무엇일까.


정서를 키워주는 근원인 인문학은 정신의 혈맥이라 할 것이다. 고전과 역사는 시대를 초월하고 변화를 아우른다. 현 상황을 분석하고 통찰하여 고유가치인 인간성을 잃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파도를 읽어내고 이해하며 좌절할 게 아니라 비판하고 올바른 미래관을 이끄는 인문학적 소양이 절실히 요구된다. AR, VR, AI 등으로 무장한 채 수시로 업그레이드하는 디지털 환경에서 흔들리지 않으려면, 뿌리가 넓게 퍼진 인문학의 피가 흐르는 인간다움으로 우리는 지구별의 튼튼한 나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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