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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후 Jan 15. 2024

주근깨는 없어도 연식은 있는 갈색  머리 앤

빨간  머리 주근깨가  없어도 앤은  어디서나 거듭난다

원대리가 깨운 갈색 머리 앤



그때는 미처 몰랐다. 이제는 맞장구칠 수 있다.

"아침은 언제나 흥미로워요. 하루동안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고 상상할 거리도 넘쳐나니까요."

소중한 문장을 속삭여준 긍정 소녀가 있다. 곱게 딴 양 갈래머리 앤은 다이애나와 빽빽한 자작나무 숲에서 소중한 우정을 다지곤 했다.


고독을 벗 삼아 방콕을 좋아하는 나를 세상 밖으로 끌어낸 이가 있다. 평생 친구인 영이 이끈 곳은 화담숲이다. 경기도 광주로 설렘을 달고 갔다. 수국 축제가 한창인 시즌에 맞춰 꽃을 실컷 볼 수 있었다. 수국보다 더 가슴을 뛰게 한 복병이 나타났다. 귀족 같은 이름이라고 착각했던 자작나무다. 날 데려다준 영이 천사 같았다.


대화가 흥미로 무르익으면 어떤 단어가 튀어나온다. 안에서 잠자던 아수라 백작이 모습을 드러낸다. 빨강 머리 앤 인 듯, 감수성이 풍부한 내면이 마그마처럼 끓어오른다. 한참 노자를 공부할 때이다. 21세기에 맞는 사상이라고 열정적인 말들이 날아다닌다. 별안간 자작나무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껍질에 기름기가 있어 불에 타면 자작자작 소리가 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무지한 나는 후작, 공작할 때 그 자작이라고 나를 세뇌했었다.


나도 모르게 앞질렀다. 화담숲에서 본 자작나무가 튀어나왔다. 소설 속에서 빨간 머리 앤이 알려준 자작나무숲에 환상과 상상의 나래를 폈다. 왠지 스산한 바람이 아닌 청정과 온정을 줄 것만 같은 그 나무가 내 몸 한 칸에서 명화로 자리 잡았다. 상상했던 그대로 내 오감을 만족시킨 화담숲을 꺼내 놓았다.

초롱초롱한 내 눈빛이 앤 셜리만 같았을까. 선생님은 자작나무 하면 원대리 자작나무 숲에 가 봐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화담숲도 근사했는데, 더 멋진 곳이 있다니 왠지 가슴이 벌렁거린다. 언젠가 꼭 가 볼 버킷 리스트로 혼자 저장해 놓았다. 이런 주변머리 없는 날 꿰뚫어 본 걸까. 아니면 내 눈에 열망의 불꽃이 강렬했던 것일까.


무려 편도만 세 시간여를 달렸다. 하늘이 내린 인제란 표지판을 보면서 백화라고 하는 고고한 자태를 볼 두근거림이 함께 달린다. 따뜻한 감성을 가진 사람들로 가득한 차 안은 정담과 덕담이 탁구를 친다. 어젯밤 기다림에 약간의 검색으로 나온 정보를 되새김해 본다.


지나가는 말인 줄만 알았다 20일 토요일을 비우라는 말을. 막내인 나는 변변찮은 중고차와 밤눈이 어두운 약점이 있다. 차마 선배님과 선생님께 운전하겠다는 말을 아낄 수밖에. 자신도 없고, 공연히 나서서 헤맨다면 얼마나 낯이 뜨거워질까. 앞장서서 운전하시겠다는 K 선배님은 장염을 앓은 지 얼마 되지 않는다. 아뿔싸! 선생님이 나섰다. 가장 연장자이고 우리들의 멘토다. 이렇게 송구할 수가 없다.


가족이 있는 나는 가족이 없는 빨강 머리 앤보다 밝지 않은 삶을 살았다. 반쯤 남은 물 잔을 보며 앤은 긍정을 흩뿌릴 때 나는 부정을 나에게 뿌렸다. 어쩌면 니체의 위버멘시처럼 강한 자기 긍정의 힘을 가진 앤이 이상해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긍정은 긍정을 낳고 부정은 부정을 낳는다는 말을 최근에 체감하고 있다.


부메랑은 날 아프게 했다. 부정의 방에서 자물쇠를 걸고서 갇혀 있을 때, 책임감이 강한 나는 일도 가정도 최선을 다하고자 몸을 함부로 썼다. 아마도 그것은 부정의 힘을 쓴 두레박으로 길어 올린 물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이제야 자문해 본다.


기침을 속눈썹처럼 달고 살았다. 맘대로 되지 않는 삶에 지쳐 나가떨어지고 나서야 비우기 시작했다. 비우고 또 덜어내고 내려놓는 과정에서 참 속상하고 서글펐다. 유추해 본다. 한약과 양약으로도 치유가 되지 않던 기침이 마스크로 잠재운 이유를. 오랫동안 방치했던 본성을 억압했다. 폐부 깊숙한 곳에서 기침의 씨앗이 움트고 있었을 까. 싹은 부정을 먹고 점점 자라 기침으로 발산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오감이 날 살리고자 기침으로 발현한 것일 게다.


이젠 긍정이 조금씩 자리 잡고 싶어 한다. 갈비뼈가 흔들리고 복근이 생기고 나서 부정이 꼬리를 감추었다. 덜어낼 만큼 덜어냈다고, 그만 비워도 된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부정의 그늘 안쪽에 구겨져 있던 오래된 꿈이 고개를 빼꼼히 내다본다. 예전 같으면 엄두도 내지 못할 도전장을 내민다. 그 뿌리는 자아존중감을 타고 긍정을 깨워 기특하다는 메아리를 선물로 받았다.


이제 난 앤 셜리가 부럽지 않다. 다이애나와 같은 지기도 있고 마릴라 같은 날 응원하는 선배님들도 계시다. 더 기쁜 것은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잘못 가는지 지켜보고, 톡톡 쳐서 본 궤도에 올려주는 매튜 아저씨가 내게도 생겼다. 바로 선생님이시다. 열망의 눈빛만 보고 기꺼이 희생을 자처하는 꼰대 아닌 진정한 어른인 매튜 커스버트이다.


입이 쩍 벌어진다. 원대리 자작나무 숲은 그야말로 하얀 숲이다. 화담숲의 자작나무가 정원이라면 이곳은 숲이다. 유화로 그린 듯한 품위가 느껴지는 자작나무는 껍질이 얇게 벗겨진다. 벗겨지면 속살은 반들반들 백반을 바른 듯한 하얀 몸을 드러낸다. 학처럼 고고한 자태는 키가 늘씬하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아바타의 나비족과 같이 군더더기 없이 쪽 빠진 몸은 그야말로 천상계다.


자작나무는 수령이 육십 년밖에 되질 않는다. 척박한 땅에서 자라다 비옥해지면 스스로 생을 내려놓는다. 배부른 돼지는 되지 않겠다는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 배부른 문인이 되지 말라는 의미일까. 이곳에 나를 부른 자작나무의 깊은 뜻이 아니었을까. 청량한 바람을 부쳐주는 백화를 본다. 앉아서 글 쓰는 지방을 축적하지 말라는 바람을 읽어본다.


원대리에서 사랑받고 있음을 온몸으로 느낀 나는 빨간 머리 앤이 아닌 갈색 머리 앤 커스버트로 거듭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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