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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후 Dec 04. 2024

겨울은 그리 쉽게 오지 않는다

갈팡질팡하다가 터 잡고 차가운 이성으로 마주 서 있다

계절과 계절 사이가 마주 보는 아침에


https://www.cminnews.com/news/810625


아침이 밝았다. 아니, 밤이 지나 다시 어둠과 마주하는 또 다른 시작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어제의 흔적을 지우기 위한 자연의 반복된 몸짓일 뿐일지도.


오늘 아침은 조금 달랐다. 창밖으로 들어오는 빛이 유난히 날카로웠다.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나와 너와의 사이, 간극을 정면으로 직시하게 만든다.


한때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랐다. 어리고 철없던 시절, 미래가 모든 해답을 가져다줄 것이라 믿었던 무모한 시기였으므로.


시간이 가져온 것은 해답이 아니라, 몸에 남긴 잘디잔 주름과 마음속 깊은 감정의 상흔이었다. 누군가를 사랑했던 기억, 그 사랑이 변해가는 과정을 오롯이 담고 있는.


사랑이 처음엔 불꽃처럼 타올랐다. 그 찬란하다 한 빛과 열기가 모든 것을 바꿀 것처럼 강렬했다. 그 감정이 영원히 지속될 줄 알았다.


사랑은 변하지 않았다. 변한 것은 사람이었다. 너였고, 나였다. 함께 걸어왔던 시간 속에서 우리는 변했고, 그 변화는 더 이상 서로를 마주할 수 없게 일그러져 버렸다.


변해버린 사랑 앞에서 스스로를 자주 속였다.

 "우리는 아직 괜찮아, "

"시간이 지나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야."

그 속임수는 오래가지 못했다. 사랑은 더 이상 같은 모양으로 존재하지 않았고, 그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그것을 깨달아 인정한 순간, 가슴은 한없이 무너졌다.


가을의 마지막 잎이 떨어질 때쯤,  네가 내게 했던 마지막 말을 떠올린다.

 "우리는 다른 방향을 보고 있는 것 같아."

말속에는 너의 아픔과 나의 무지함이 함께 담겨 있었다. 그것이 칼날처럼 뾰족한 진실을 말해주었지만,  받아들이는 데  쌓인 시간에 버금가는, 아니 그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다.


사랑은 참 묘하다. 를 성장시키기도 하고, 때로는 함부로 찢어놓기도 한다. 네게 느꼈던 모든 감정은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지도, 그것은 더 이상 나를 따뜻하게 감싸주지 않는다.  대신, 사무치는 아픔과 차가운 공허함만이 굴절된 자리를 잡고 있다.


가을과 겨울의 풍경 속인 오늘의 계절에서 우리의 사랑을 떠올린다.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처럼, 우리 추억도 그렇게 흩어져 버렸다.


 그 흩어진 조각들을 모아 내 안에 소중히 간직하려 한다.  쓰린 아픔이었지만, 동시에 가장 뜨겁게 살아있게 했던 순간들이었으니 .


오늘 아침, 다시 한번 깊은숨을 들이쉰다. 가슴을 스치는 공기가 무겁고 날카롭지만, 또한 나를 살아가게 한다. 사랑이 변했지만, 그 사랑은 여전히 나를 이루는 일부로. 아픔은 내게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낼 원동력이 될 것이다.


가을은 그렇게 지나가고,  새로운 계절을 맞이할 준비가 얼추 된 것도 같다. 마주할 수 있으니까. 변한 사랑의 흔적을 가슴에 품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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