띵동, 희망의 메시지
<깁는 빨강>
"누칼협?"
누가 칼을 들이대며 그렇게 살라고 위협한 것도 아니건만, 삶은 때론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나를 몰아갔다.
운전면허를 딴 지는 까마득한 세월이 흘렀다. 장롱 속에 잠자던 면허증은 충남 ㅇㅇ으로 발령받으며 빛을 보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마련한 첫 차, 빨간 국민차는 내 인생에 드라마틱한 장면을 새겼다. 뱅커로 바쁜 나날을 보내던 나는 출퇴근 거리가 꽤 멀었지만, 그곳에서의 2년은 내 직장 생활 중 가장 행복한 낙원이었다고 고백한다.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출근하던 나는 그랜저를 몰던 남자 행원이 제안해 퇴근길 카풀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 퇴근길은 예상치 못한 어둠으로 물들었다. 흑심을 품은 그의 차가 산길로 향했을 때, 나는 불안에 휩싸였다. 한밤중이 되어서야 집에 도착한 나는 그날 이후로 카풀을 단칼에 끊었다. 그는 날카로운 발톱을 감춘 고양이를 만나 뺨에 두 줄을 긋고 출근했다, 아이가 장난쳐 소톱에 긁혔다며 조작하는 그를 속으로 비웃으며 나는 차를 장만해야겠다는 단단한 결심을 태웠다.
며칠 뒤, 영업장에 한 고객이 껌을 씹으며 들이닥쳤다. 손에는 당첨된 즉석복권이 들려 있었다. 대출부터 수신까지, 은행 업무의 달인이던 나는 복권 담당 직원의 SOS를 받고 고객을 이어받았다. 소형차가 당첨된 복권이었다. 제세금을 부담해야 한다는 말에 고객은 껌을 뱉고 얼굴을 찌푸렸다. 먹고 죽을 돈도 없는 상황이라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럼, 제가 이 차를 사도 될까요?”
내 말에 고객은 손뼉 치며 기뻐했다. 그렇게 나는 은행 객장에서 자동차 오너가 되었다. 빨간 국민차는 내 손 안으로 굴러오기 시작했다
물건을 오래 쓰는 나와 그 차는 오래 함께 하지 못했다. 엔진오일이 새어 나와 결국 다른 차로 바꿨다. 바꾼 새 차는 가까운 곳으로 발령받은 뒤 자주 밖에 세워두곤 했다. 바퀴가 풍화돼 바람이 자주 빠지던 그 차는 어느 날 주행 중 펑크가 났다. 동생은 나를 보며 혀를 찼다. “아끼지 마. 언니 혼자만 사고가 나는 게 아니라 다른 운전자한테까지 피해를 주는 거라고!” 나는 멋쩍게 얼굴을 붉히며 정기예금을 해지해 보통예금으로 옮겼다.
그런데, 마치 도깨비 귀신이 돈 냄새를 맡은 듯, 그 돈은 또 다른 곳으로 흘러갔다.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는 가족의 전화를 받고 고민 끝에 나는 그 돈을 송금했다.
‘잘한 거겠지. 그의 독립심을 해치지 않겠지. 정말 아쉬울 때 도와주는 게 맞겠지.’
그의 행복을 그 돈으로 살 수 있다면, 나는 후회하지 않을 터였다. 어차피 돌려받을 생각 없이 보낸 돈이니까. 그가 다시 일어선다면, 그건 분명 가치 있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띵동! 메시지가 도착했다.
“어떻게 모은 돈인지 알기에, 가치 있게 쓰고 다시 일어설게. 고마워♡”
그 한 줄은 내 가슴에 따뜻한 바람을 불어넣었다. 삶은 때론 칼을 들이대지 않아도 나를 몰아가지만, 그 길 끝에 이런 붉은 심장이 뛰는 순간이 감각할 수 있다면, 모든 여정이 의미를 띠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