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악마 속에서 피어난 6월의 품바
<분홍>
유월의 세 번째 일요일, 아침부터 옥수수 삶는 듯한 무더위가 대지를 집어삼켰습니다. 태양은 마치 8월의 악마처럼 작열했지만, 그늘에 들어서자 거짓말처럼 지중해의 서늘한 위로가 감돌았습니다. 모자와 쿨 팔토시가 없었더라면, 이 뜨거운 낮을 온전히 견뎌내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아침 일찍 음성 품바 축제가 열리는 설성공원으로 향했습니다. 스물한 해째 이어지는 이 축제의 마지막 날의 여정은 우연과 필연의 실타래처럼 얽혀 시작되었습니다.
음성 출신 수필가 K 선생님의 다정한 초대가 아니었다면, 이곳에 발 디딜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겁니다. 지난달로 예정되었던 축제가 미뤄진 덕분에, 이 뜨거운 날 초행길에 나설 수 있었으니,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인과 연으로 엮인 운명이었을까요.
설성공원에 도착했을 때, 주차장은 이미 빼곡한 차들로 가득했습니다. 차를 인근에 세우고, 야외 음악당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전 전시 부스를 둘러보았습니다. 얼굴에서 불이 나는 듯한 더위 속에서도, 딱지, 지푸라기, 팔각 성냥 같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풍경들이 따가운 태양에 화끈거리는 표정을 다독였습니다. 품바 특유의 의복을 입은 사람들, 지역 특산물 그리고 흥겹게 북을 두드리는 이들의 모습은 마치 시간 속에 멈춘 듯 따뜻한 기억을 소환했습니다.
삶의 무게를 내려놓은 열정의 무대
야외 음악당에 자리를 잡고 앉아, 음성군 주민들이 준비한 경연을 감상했습니다. 무대 위에서 춤추고 노래하며, 그들은 잠시 삶의 무게를 내려놓은 듯했습니다. 그들의 뜨거운 열정과 화합은 이 축제가 어떻게 스물한 해를 이어올 수 있었는지 묵묵히 말해주었습니다. 땀과 웃음으로 빚어낸 그들의 무대는 공동체의 끈끈한 연대를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였습니다. 그 현장을 함께하며 이곳이 바로 사람과 사람을 잇는 마음의 교차로임을 온몸으로 느꼈습니다.
더위에 지친 몸을 이끌고, K 선생님이 추천한 지하 공간으로 이동했습니다. 야외 음악당 뒤, 다리 아래 숨겨진 그곳은 언뜻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곳에 들어서는 순간, 세상과 단절된 듯한 서늘한 공기가 저를 감쌌습니다.
땅에 가까운 곳이라 그런 것일까요, 아니면 낮은 곳이 주는 겸손한 위로 때문이었을까요. 그곳은 뜨거운 더위로부터의 완벽한 피난처였습니다.
잠시 후 그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꽃동네’의 기원을 만났습니다. 최귀동 할아버지와 오웅진 신부님, 두 분의 사진과 짧은 부연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짧은 문장들이 가슴 깊이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거지란 달랄 줄만 알지 줄 줄은 전혀 모르는 사람입니다.”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입니다.”
삶의 본질을 꿰뚫는 이 두 문장에 문득, 이곳에 온 이유를 나름 붙였습니다. 이 뜨거운 여정이 우연처럼 보였던 초대는 어쩌면 이 순간으로 이끌기 위한 인연의 시작인 고리이지 않았을까요.
품바 축제는 사람과 사람, 과거와 현재, 그리고 나눔과 사랑을 잇는 다리 같았습니다.
최귀동 할아버지와 오웅진 신부님의 삶은 가진 것이 없어도 베풀 수 있는 마음이 얼마나 큰 은총인지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99를 가지고도 만족하지 못하고 나머지 1까지 탐하려는 욕망에 사로잡힌 몇몇 사람들을 VIP 라운지에서 뱅커로 만났던 저는, 이곳에서 복된 삶을 살다 간 위인을 만났습니다.
최귀동 할아버지와 신부님의 아름다운 행보를 더듬은 이곳에서 얻은 시원한 위로와 따뜻한 안내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K 선생님의 초대는 저를 더 깊은 삶의 의미로 이끈 인연의 손길로 다가왔습니다.
음성 품바 축제는 더위를 견디는 법을 가르쳐준 동시에 나눔의 가치를 되새기게 한 뜨거운 하루였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순간은 이처럼 인연의 고리로 엮여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손을 내밀 때 더욱 단단해지는 그런 고리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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