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텍쥐페리 - 야간 비행
그에게 인간이란 반죽으로 빚어줘야 할 밀랍 덩어리 같은 것이었다. 이 물질에 영혼을 불어넣고, 의지를 부여하는 것은 그의 몫이었다. 그런 과정에서 엄격함으로 그들을 예속시킬 생각은 전혀 없었다. 다만 그들 자신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할 생각은 있었다. 그가 늦게 이륙할 때마다 처벌을 가하는 것이 부당한 처사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비행장들마다 정시 이륙을 지향하고 시간을 엄수하게 하는 의지를 만들어 냈다. 부하 직원들이 날씨가 나쁜 게 곧 휴식시간을 의미하는 것처럼 들뜨지 못하게 함으로써 스스로 조바심치며 날씨가 빨리 개기를 기다리도록 만들었다. 심지어 하찮은 잡역부까지도 출발 지연을 수치스럽게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지금 내가 매몰차게 해고시킨 것은 이 노인이 아니다. 그에게는 책임이 없지만 그를 통해 나타나는 골칫거리를 베어버린 거야. 사람은 일을 지휘하고 일은 순순히 그 지휘에 응해오며, 또 새로운 일을 만들어내는 법이지. 사람은 또한 완벽하지 못한 존재라서 그릇된 일도 만들어내기 마련이야. 불행이 그러한 사람들을 통해 일어날 때에는 그 사람들을 멀리 배척해야 하는 거야.
"저 사람들이 행복한 것은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그 일을 사랑하는 것은 내가 엄격하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 그는 부하직원들을 괴롭힌 거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또한 그들에게 벅찬 기쁨을 안겨주기도 했다. 그는 생각했다.
‘저들을 강하게 밀어붙여야 돼. 그래야 고통과 기쁨이 함께 하는 강인한 삶을 살 수 있지. 그것만이 오로지 중요한 것이니까.’
그에게는 환상이나 호쾌한 용기를 칭찬할 권리가 없었다. 오직 의무사항을 어김없이 이행한 것에 대해서만 칭찬해야 했다. 그는 다른 직원들과 어울려 술을 마실 권리도 없었고, 동료에게도 편안히 말을 놓을 수가 없었으며, 아주 우연히 같은 기항지에서 다른 감독관을 만나지 않는 한 농담을 뇌까릴 권리도 없었다. 그는 생각했다.
‘재판관 노릇을 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야.’
‘실종자가 될지도 모르는 이 친구들은 어쩌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저녁 식사 테이블 불빛의 황금빛 성역 안에 머리를 맞대고 둘러앉은 그들의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대체 나는 무슨 명목으로 그 자리에서 저들을 끄집어냈단 말인가?’
‘고대 잉카족의 지도자는 뭇 백성들에게 얼마나 무자비한 명분으로, 얼마나 기괴한 사랑의 이름으로, 신전을 산 위로 끌어올리도록 강요하고, 문명의 영원성을 세우도록 했는가?’
…
그 고대 잉카족의 지도자는 아마도 인간의 고통에 대해서는 동정심을 느끼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인간의 죽음에 대해서는 무한한 동정심을 느꼈으리라. 그 자신의 죽음에 대한 동정심이 아니라 사막이 그 자취를 지워버릴 종족의 소멸에 대한 연민을 느꼈을 것이다. 하여 그는 사막도 묻어버리지 못할 돌기둥이나마 세우고자 백성을 산 위로 이끌었음이 틀림없다.
승리, 패배……. 이런 단어들은 죄다 부질없는 것이다. 삶은 이런 이미지들을 초월하여 이미 다른 새로운 이미지들을 준비하고 있다. 승리는 한 나라를 나약하게 만들지만 패배는 그 나라를 새로 태어나게 만든다. 리비에르가 맛본 패배는 진정한 승리를 위해 한 번쯤 겪어야 하는 예정된 절차였는지 모른다. 중요한 것은 오직 앞으로 계속해서 나아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