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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둥 May 07. 2022

글쓰기 - 시간을 자르는 도끼

아름다운 인생을 위한 즐거운 습관

일상 속에서 우리는 많이 지루하다. 매일매일이 조금씩 다른 듯 하지만 전체적인 맥락에서는 비슷한 일을 한다. 이 지독한 권태 때문에 우리는 자주 일탈을 꿈꾼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행을 좋아한다. 새로운 곳에 가서 새로운 느낌을 받고 평소에 경험해보지 못하는 일들을 경험해 보고 그것을 통해 즐거움 느낀다. 그런데 여행지의 장사꾼들에게는 그것이 일상이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느끼는 똑같은 권태가 그들에게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 권태가 싫고, 벗어나기를 갈구하기에 누군가는 젊은 나이에 돈을 모아서 조기 은퇴를 꿈꾸고, 누군가는 여러 가지 취미 생활 및 동호회 활동을 한다. 그런데 정말로 일상이 그렇게 지겨운 일의 반복일까? 우리의 눈이 보석 같은 일상의 가치를 깨닫는 감각이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실상 우리는 뷔페 같이 풍성한 일상을 살고 있는데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정말로 그렇다면 어떻게 일상이 아름다울 수 있을까?


누구나에게나 있을법한 일이다. 지인의 결혼식이어서 오랜만에 뷔페를 먹다. 눈앞에 펼쳐진 수백 가지의 화려한 음식을 보면서 황홀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서둘러 접시에 이것도 담고 저것도 담다. 맛있게 한 접시를 다 먹고, 두 접시를 먹고 나니 포만감이 가득했다. 그럼에도 디저트까지 야무지게 챙겨 먹었다. 분위기도 파장 분위기고 배도 충분히 부르고 해서 음식점 문을 나다. 그런데 뭐가 가장 맛있고 좋았는지 기억이 안 다. 차라리 화려한 뷔페보다 정말로 맛있는 갈비탕 한 그릇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하다. 사실 뷔페에서 차려진 그 많은 음식 중 하나만 떼어놓고 그것만 먹었으면 훨씬 만족하면서 나왔을 것 같은데 산해진미를 경험하고 나서도 잘 먹었다는 느낌이 안 든다. 왜 그럴까?


스마트폰이 보급되고 일상화되면서 사람들이 저마다 SNS에 사진을 많이 올린다. 멋진 자연경관을 올리기도 하고, 먹음직스러운 음식 사진을 올리기도 하고, 예쁜 아이들이나 귀여운 애완동물들의 사진을 올리기도 한다. 그래서 음식점이든 좋은 관광지든 요즘은 제일 먼저 블로그에서 그 정보를 얻는다. 그런데 블로그에서 본 사진 화려한 자연경관에 감탄해서 찾아갔는데 실제로 보니 별로다. 혹은 사진에 찍힌 딱 그 부분만 좀 괜찮아 보인다. 파리 여행을 갔다 온 지인에 의하면 센 강을 실제로 보니 강폭이 그냥 시골 냇가 수준이고 서울의 한강에 비할바가 못된다고 한다. 베니스의 강물은 너무 더럽고 사진에서 보던 낭만을 즐길만한 곳이 아니더란다. 이것을 두고 전문 용어로 ‘낚였다’라고 표현해야 할까? 아니면 장면 장면을 잘 포착하고 편집한 누군가의 눈썰미를 칭찬해야 하는 것일까?


책을 읽고 나서 읽은 책마다 서평을 쓰겠다고 다짐을 하면서 겪게 되는 일이 있다. 책을 읽으면서 밑줄을 그었던 부분들을 따로 정리하다 보면 한창 읽는 중에 들었던 느낌과 사뭇 다르다. 독서 중에는 그저 좋은 문장인 것 같다는 느낌으로 줄을 그었는데 이렇게 발췌해서 읽었을 때는 마치 다른 문장을 보는 것 같다. 내가 이미 읽었던 책에 대한 다른 이의 서평을 읽었을 때도 비슷한 경험을 한다. 서평에서 책의 인용구를 읽었는데 내가 읽었던 책 같지 않다. 내가 읽었을 때는 주인공의 그 대사가 그렇게 좋은지 혹은 그런 의미인지 파악할 수 없었는데 이렇게 책에서 그 대사만 분리해서 읽어보니 그럴듯하다. 신기하다.


일직선 상에서 순차적으로 흘러가는 시간을 크로노스의 시간이라고 한다. 반대로 삶 속에서 뭔가 의미를 경험하고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는 특별한 순간들을 느끼게 되는데 이것을 카이로스의 시간이라고 한다. 크로노스의 시간 속에서 우리는 어떤 특별함을 느끼기 힘들다. 늘 지루하다. 특별한 일이 있어도 그  뿐이고 곧 망각된다. 하지만 그 긴 엿가락 같은 시간을 부러뜨리고 토막을 내는 순간 크로노스는 카이로스로 변한다. 시간을 토막 냈기에 이야기가 되고, 그 이야기는 반드시 시작과 끝이 존재한다. 샤르트르가 소설 <구토>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 시간의 토막은 권태로 가득한 일상을 모험으로 만들고, 이 이야기 속의 모든 문장들은 결말을 중심으로 각색된다. 들러리 같은 내 인생을 주인공으로 바꿔놓는다. 연속적인 시간을 토막 내고 그것을 글로 남긴다는 것은 내 삶의 주체성을 회복하는 길이다. 타인의 생각에 이끌려서 관성적으로 살아가던 나에게 과연 이것이 올바른가에 대한 성찰을 주는 행위이다. 잃어버린 나를 찾게 하고 나를 더 나답게 하는 길이다. 인생이 허무한가?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가? 시간을 도끼로 내리쳐 보라. 그리고 종이라는 상자에 자른 시간을 차곡차곡 글로써 담아보라. 나의 시간들이 쌓여있는 것을 확인할 때마다 숨죽었던 즐거움이 살아난다. 삶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얼마나 차고 넘치는지 경험하게 된다. 장소든, 시간이든, 글이든 전체의 한 부분으로서 그것을 볼 때는 그저 수많은 레고 블록의 한 조각처럼 하나의 구성요소로 격하되기 쉽지만 특별한 의식을 가지고 생선회를 뜨듯이 그것을 면밀하게 분리하게 되면 그것 자체로 하나의 의미가 형성된다. 이것은 마법이다. 경험 할수록 경의롭다. 어떤 시간이나 장소, 사물에 대해서 특별하게 인지하는 것은 그것에 생명을 불어넣는 행위이다. 내셔널지오그래피의 수 많은 사진들이 경의로운 이유는 작가가 사진으로 남겼기 때문이다. 실제로 확인했을 때에도  그렇게 좋은 경우는 드물다. 정리하자면 글쓰기를 통해서 우리는 죽어가는 삶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다. 신영복 선생은 사방이 꽉 막힌 감옥에서조차 그토록 아름다운 통찰을 남기지 않았던가! 하물며 우리의 일상 신의 선물이 아닐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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