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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둥 May 06. 2022

리더의 허상

생텍쥐페리 - 야간 비행

대학생 시절의 이야기이다. 당시에 어떤 맥락에 친구가 이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우리나라의 모 대기업에 근무하는 임원 정도가 되는 사람이면 인격이나 업무 능력면에서 정말로 훌륭하지 않겠냐는 게 논지였다. 아무런 사회적 경험이나 지식이 없던 나로서는 친구의 그 말에 동의를 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추앙받는 대기업에서 임원 씩이나 된 사람이면 분명 넓은 인맥을 자랑할 것이고 이것을 위해서 성숙한 인격과 그에 걸맞은 처세술을 습득하고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과연 그런가?


이것은 미국 유학 시절의 이야기다. 같은 유학생으로서 다른 과에서 박사 학위과정을 하고 있는 친구가 있었다. 하루는 친구의 안색이 너무 창백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는 물었고 친구가 말하길 지도교수와 미팅을 하고 나왔는데 지도교수가 엄청나게 화를 내면서 물건을 막 집어던지더라는 것이었다. 놀라운 것은 이런 식의 미팅이 일상이라는 것이다. 아이러니하지만 그 지도교수는 관련 분야에서 세계적인 석학이라고 일컬어지는 사람이었다. 관련 학회를 나가면 사람들이 토론하고 싶어 하고 어떻게든 공동 연구를 하고 싶어 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우리는 어떤 리더를 훌륭한 리더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서점에는 훌륭한 리더십에 대한 자기 계발서들이 난무하고 있지만 현실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리더들을 만나면 그 괴리감은 정말로 크다. 조직을 잘 이끌어서 좋은 성과를 창출하고 그로 인해 사람들의 추앙을 받는 자들의 면면을 겪어 보면 아스퍼거 증후군이 의심되는 독재자에 가까운 경우가 많다. 단언컨대 많은 정도가 아니라 성과가 훌륭하다면 대부분이다. 외부인의 시각으로 인식하는 그들은 시대를 바라보는 안목이 남다른 현자로 장식되지만 현실에서는 결코 이순신 장군 같은 리더는 없다. 다만 욕심에 이끌려 안하무인격으로 자신과 타인을 밀어붙이는 불도저들이 이 사회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을 뿐이다.


여기 한 리더가 있다. 그도 외적으로 보이는 것은 앞서 언급된 리더들 중에 한 사람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뭔가 다르다. 스스로의 선택 앞에 고민이 많고, 결정한 사안에 대해서도 잘못된 것이 없는지 늘 생각한다. 힘든 결정들 앞에 연민 없는 결정을 내리는 자신을 다그치려 하지만 그것에 매몰될 수 없어서 스스로 정당성을 찾는다. 철벽 같은 면모로 인해서 그의 주변에는 늘 고독이 따라다닌다. 아무도 그의 속내를 알 수 없다. 한마디로 숨 막히는 인생이다. 이 리더의 고뇌 속으로 들어가 보자.


리비에르는 항공회사 본부장이다. 시대는 대략 1930년대쯤 될 것이다. 당시로서는 항공기가 안전에 취약했기 때문에 주간에만 운영을 할 수 있었는데 그것으로 인해서 기차나 증기선 같은 다른 운송 수단에 비해서 항공운송은 실적이 뒤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리비에르는 야간 비행로를 개척하고 운영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었다. 남미 전역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우편물을 싣고 오면 그것을 다시 유럽으로 운송하는 일이었다. 문제는 안전이었다. 이 업에 대한 수많은 사람의 반대와 질타는 안전과 관련이 있었다. 조종사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 리비에르가 선택한 것은 아주 엄격한 규칙이었다. 한번 정한 규칙에 대한 예외는 누구도, 어떤 상황도 용납하지 않았다. 얼마나 엄격했던지 안개로 인해서 시야 확보가 안 되는 불가항력적인 상황에서도 비행기 운항이 늦춰진 경우에도 조종사에게 징계를 내렸다. 엄격한 규칙의 적용은 나태한 정신에 활력을 불어넣어 비행의 효율성을 높이고, 항공기 정비에 있어서 철저함을, 궁극적으로 비행의 안전을 도모하도록 만들었다.

그에게 인간이란 반죽으로 빚어줘야 할 밀랍 덩어리 같은 것이었다. 이 물질에 영혼을 불어넣고, 의지를 부여하는 것은 그의 몫이었다. 그런 과정에서 엄격함으로 그들을 예속시킬 생각은 전혀 없었다. 다만 그들 자신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할 생각은 있었다. 그가 늦게 이륙할 때마다 처벌을 가하는 것이 부당한 처사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비행장들마다 정시 이륙을 지향하고 시간을 엄수하게 하는 의지를 만들어 냈다. 부하 직원들이 날씨가 나쁜 게 곧 휴식시간을 의미하는 것처럼 들뜨지 못하게 함으로써 스스로 조바심치며 날씨가 빨리 개기를 기다리도록 만들었다. 심지어 하찮은 잡역부까지도 출발 지연을 수치스럽게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규칙에 대한 그의 철저함은 20년 경력의 정비사 로블레의 실책에 대해서 해고하는 일에서 잘 나타난다. 해고 명령을 받은 로블레는 자신의 인생의 모든 것에 해당하는 이 직업을 유지시켜줄 것을 절절하게 애원하지만 절대로 용납이 안된다. 타인의 입장에서 볼 때는 정말로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지만 이 모든 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서 그의 내적 고민은 상당하다. 하지만 이내 자신이 옳았음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는다.

지금 내가 매몰차게 해고시킨 것은 이 노인이 아니다. 그에게는 책임이 없지만 그를 통해 나타나는 골칫거리를 베어버린 거야. 사람은 일을 지휘하고 일은 순순히 그 지휘에 응해오며, 또 새로운 일을 만들어내는 법이지. 사람은 또한 완벽하지 못한 존재라서 그릇된 일도 만들어내기 마련이야. 불행이 그러한 사람들을 통해 일어날 때에는 그 사람들을 멀리 배척해야 하는 거야.

도대체 이 일이 얼마나 의미가 있었기에 그는 이토록 철저해야 했을까?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이렇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기 때문에 이 사람은 늘 혼자일 수밖에 없다. 그의 노력으로 인해서 이 업이 계속해서 유지되고 있는 것은 자명하다. 하지만 관계로부터 분리되어 스스로를 격리시키는 이 일을 왜 유지하고 있을까? 어떤 의미를 발견했을까?

"저 사람들이 행복한 것은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그 일을 사랑하는 것은 내가 엄격하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 그는 부하직원들을 괴롭힌 거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또한 그들에게 벅찬 기쁨을 안겨주기도 했다. 그는 생각했다.
‘저들을 강하게 밀어붙여야 돼. 그래야 고통과 기쁨이 함께 하는 강인한 삶을 살 수 있지. 그것만이 오로지 중요한 것이니까.’

리비에르의 엄격함이 이 업을 유지시키고, 이 어려운 일이 유지되기에 이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그 가치를 인정하고 사랑하게 되는 것이었다. 아무리 고귀한 가치가 있다 하더라도 사람들을 징계하고 몰아붙여야 하는 리더의 역할은 여전히 외롭고 힘들다. 여기에 또 다른 리더 한 사람이 나온다. 감독관인 로비노는 리비에르의 지시에 따라 사람들의 업무를 감독하고 그들의 실수를 보고하는 역할을 한다. 그가 다른 이들에 비해서 영리하고 일의 수완이 좋아서 감독관의 역할을 맡고 있는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아는 것이 없기에 자신의 명령을 있는 그대로 잘 수행할 것이라는 판단으로 리비에르는 그를 감독관으로 삼았다. 그의 감시자 역할로 인해서 사람들로부터 소외당하지만 자신의 일에서 어떤 신념을 가지고 마음을 다잡는 리비에르와는 달리 로비노는 자신의 역할에 환멸을 느낀다.

그에게는 환상이나 호쾌한 용기를 칭찬할 권리가 없었다. 오직 의무사항을 어김없이 이행한 것에 대해서만 칭찬해야 했다. 그는 다른 직원들과 어울려 술을 마실 권리도 없었고, 동료에게도 편안히 말을 놓을 수가 없었으며, 아주 우연히 같은 기항지에서 다른 감독관을 만나지 않는 한 농담을 뇌까릴 권리도 없었다. 그는 생각했다.
‘재판관 노릇을 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야.’

폭풍 속을 뚫고 살아 돌아온 조종사 팰르랭의 영웅적인 면모를 보면서 로비노는 저녁 약속을 청하고 자신의 호텔에서 그에게 자신이 소중하게 간직해온 돌을 보여주며 우정을 다지고자 한다. 하지만 리비에르의 호출로 공항으로 돌아오게 되고 그런 로비노에게 리비에르는 팰르랭에게 어떤 명목이 되었든지 징계를 내릴 것을 종용한다. 감독관의 위엄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절대로 직원들과 친분을 유지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감독관으로서의 위엄이 우정으로 변모하게 되면 질서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이 일을 위해서 개인적인 감정을 억제하고 관계의 단절마저도 서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책의 후반부는 조종사 파비앵의 비행에 대해서 나온다. 그는 파타고니아 노선의 우편기를 조종하고 있었고 폭풍우 지대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된다. 결혼한 지 6주 된 파비앵의 아내는 남편이 걱정이 되어 리비에르에게 전화를 한다. 하지만 리비에르라고 별다른 수가 없다. 가정이 파탄 나는 상황을 보면서 리비에르는 가슴이 찢어진다.

‘실종자가 될지도 모르는 이 친구들은 어쩌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저녁 식사 테이블 불빛의 황금빛 성역 안에 머리를 맞대고 둘러앉은 그들의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대체 나는 무슨 명목으로 그 자리에서 저들을 끄집어냈단 말인가?’

이 상황에서 리비에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과 같은 생각으로 이 일의 정당성을 찾고자 한다.

‘고대 잉카족의 지도자는 뭇 백성들에게 얼마나 무자비한 명분으로, 얼마나 기괴한 사랑의 이름으로, 신전을 산 위로 끌어올리도록 강요하고, 문명의 영원성을 세우도록 했는가?’

그 고대 잉카족의 지도자는 아마도 인간의 고통에 대해서는 동정심을 느끼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인간의 죽음에 대해서는 무한한 동정심을 느꼈으리라. 그 자신의 죽음에 대한 동정심이 아니라 사막이 그 자취를 지워버릴 종족의 소멸에 대한 연민을 느꼈을 것이다. 하여 그는 사막도 묻어버리지 못할 돌기둥이나마 세우고자 백성을 산 위로 이끌었음이 틀림없다.

이 정도의 자위가 아니면 이 일을 감당할 수가 없다. 자위는 자기 위로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엄격한 리더일수록 강한 자위가 그 내면을 덮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설사 그것이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자기만의 착각일지라도 말이다.


결국 파비앵은 실종된다. 사람들은 이 사고로 인해서 이 일이 사라질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리비에르에게는 실종자 가족을 위로하고 스스로 슬퍼할 시간이 없다. 그저 다음 비행을 준비할 뿐이다. 이런 사고로 단 한 번이라도 야간 비행을 중단했다면 이 일의 목적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비난하겠지만 그의 흔들림 없는 꾸준함이 이 일을 존재하게 하는 것이다.

승리, 패배……. 이런 단어들은 죄다 부질없는 것이다. 삶은 이런 이미지들을 초월하여 이미 다른 새로운 이미지들을 준비하고 있다. 승리는 한 나라를 나약하게 만들지만 패배는 그 나라를 새로 태어나게 만든다. 리비에르가 맛본 패배는 진정한 승리를 위해 한 번쯤 겪어야 하는 예정된 절차였는지 모른다. 중요한 것은 오직 앞으로 계속해서 나아가는 것이다.

리비에르는 일면 자신의 엄격함이 조종사 파비앵을 죽게 만들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일의 위험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음에도 계속했던 파비앵을 생각해 보면 이것은 서로에게 합의된 사항일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리비에르는 자신의 엄격함으로 시스템이 안전하게 운용될 수 있도록 자기를 희생한 사람이다. 엄격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타인과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예외를 허용하지 않는 규칙의 실행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회사를 다니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많은 불만이 터져 나온다. 어떤 부당한 처사에 분개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이 모든 것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이 부당함 조차도 어느 정도까지는 암묵적으로 합의된 사항인 것이다. 모든 것이 기어처럼 완벽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집단은 없다. 리비에르가 로비노에게 요구했던 정도의 불합리는 아니지만 조직이 유지되지 위해서 어느 정도의 억지와 비상식이 용인될 수밖에 없다. 그것을 옹호할 생각은 전혀 없다. 반대로 그 억지와 비상식을 자기 합리화해서 이용해도 된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자신이 속한 조직 혹은 리더에 대한 성찰은 반드시 필요하다. 모든 것이 상식적이여하고 철저해야 한다 생각은 그 경직성만큼이나 예리한 칼끝이 결국 자신을 찌르기 때문이다. 결국은 유연성과 정당성의 경계를 넘나들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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