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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둥 May 11. 2022

1. 신적 구원

괴테 <파우스트>

파우스트의 연인이자 그의 유혹으로 인해 어머니와 아이까지 살해하게 된 여인 그레트헨은 아무리 봐도 답이 없는 인생이다. 파우스트를 사랑하게 되기 이전의 이 여인은 악마인 메피스토펠레스 조차 그 순수성으로 인해 손을 댈 수 없다고 말했었는데 이 여인의 타락은 너무나도 극적이고 마침내 사형선고를 받게 된다. 하지만 이런 인생에게도 구원이 임한다. 그녀에게 임한 구원의 근거는 신앙이다. 그레트헨은 생의 마지막에 자신의 삶에 대한 죄의식을 느끼고 이런 비참한 상태인 자신을 구원해 줄 신을 믿게 되고 회개에 이른다. 파우스트가 감옥에 갇힌 그녀를 탈출 시키고자 하지만 그녀는 거부하고 담담하게 죽음을 맞이 한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 누구나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신께 용서를 구하고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일까? 그것에 대한 답을 저자는 이렇게 표현한다.

구원의 문제는 믿음의 문제이지 선악의 문제가 아닌 것은 분명하지만, 그 믿음 앞에는 ‘뉘우침’에서 나온 ‘최고의 자기부정’, ‘무한한 자기 체념’이 필히 전제되어 있다는 말이지요.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인간은 뉘우침과 죄의식이라는 실존의 처절한 절망감 속에서만 ‘무한한 자기 체념’을 할 수 있게 되며, 그제야 비로소 신을 발견하고 그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기게 된다는 겁니다

- 김용규 <철학카페에서 문학읽기>

그렇다면 구원을 받았는데 왜 그레트헨은 죽는 것인가? 의문이 들 수 있다. 종교적 구원은 현생의 지속 혹은 평안을 위한 구원이 아니라 죄에 대한 용서와 이생의 삶을 위한 구원을 뜻하기 때문이다. 현생 만을 인식하고 있는 보통의 인식 체계 속에서는 이런 구원이 무용지물로 보일 지도 모르겠다. 만약에 그레트헨이 끔찍한 죄악을 저지르지 않았음에도 죄의식을 느끼고 신께 용서를 구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혹은 그녀에게 사형이 아닌 다른 형별이 주어져서 남은 삶을 살 수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추측할 수 밖에 없지만 아마도 이생의 삶을 약속 받은 자로서 현생에서 여러 어려움에도 만족과 감사의 삶을 살았을 것이라고 유추해 볼 수 있다. 삶을 신이 주신 선물이라 여기게 될 것이다. 이것은 현생과 이생의 구원 양쪽 다 얻을 수 있는 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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