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책에 나 같은 사람이 서평을 쓰는 것은 그것이 호평이든 혹평이든 이미 고인이 되신 신영복 선생에게 누가 되는 일임에 분명하나 그래도 쓸 수 밖에 없는 것은 나 같이 자신과 세상에 대해 무지한 사람에게, 혹은 인생의 언저리에서 방황하는 누군가에게, 또는 혹시나 좀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사는 인생에게 꼭 읽어 보라는 무심한 말 한 마디는 던져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 섞인 핑계 때문이다.
이 책은 선생의 마지막 책으로서 마지막 강의의 녹취록을 다듬어서 책으로 출판한 내용이다. 강의의 주제는 사람과 삶에 관한 인문학적 담론이다. 평생을 강의해도 다 못할 내용의 주제인 것 같은데 어쩌려고 이런 주제로 강의를 하시는지 범인으로서는 근접하지 못할 경지임에 틀림없다. 목차에도 나와있지만 1부는 고전에서 읽는 세계 인식, 2부는 인간 이해와 자기 성찰이다. 1부에서는 시경, 초사, 주역, 논어, 맹자, 노자, 장자 등 다양한 고전 텍스트를 활용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조망할 수 있게 해준다. 중세의 왕정에서 근대의 자본주의 사회로 세계가 재편 되면서 가치화 할 수 없는 사람을 경제적 교환 가치로 평가하게 되고 이로 인한 인간 소외의 심각성에 대해서 말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개인과 사회의 관계나 개인과 개인의 관계와 상관없이 개인의 실존 혹은 자존을 중심으로 그 사상이 형성 되었다. 이것은 자타를 구분하고 자기의 목적을 위해서 타인의 희생을 개의지 않는 몰인정한 사회를 형성하기에 이르게 된다. 저자는 동양 고전의 기본적 가치인 관계 중심적 인간관으로서 탈근대로 나아가기를 역설한다. 2부에서는 고인이 수형생활 동안 겪었던 이야기들을 중심으로 사람에 대한 이해와 성찰을 풀어나간다. 너와 내가 얽힌 관계의 중요성이 어떠한지 다양한 시각에서 분석한다. 사람 간의 소통에 대해서, 사람을 증오하게 만드는 부조리한 사회적 시스템에 대해서, 관계에 대한 개인의 편협한 시각에 대해서 등 여러 경험담을 바탕으로 관계라는 단어를 입체적으로 볼 수 있게 한다.
어쩌다 보니 이 책을 아주 지루한 책인 듯 서평을 쓰고 있는 것 같아 죄스럽다. 절대로 그렇지 않다. 물론 읽다 보면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학부생을 상대로한 강의인 만큼 이해가능한 수준으로 설명한다. 그리고 감옥에서 겪었던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철학적 인식으로 풀어내는 통찰에 감탄하게 된다. 누구나 다 알고 있을 법한 이야기를 다른 시각에서 풀어내는 깊은 사유가 책의 여기저기에서 지뢰처럼 터지고 그 울림이 가슴을 흔든다. 이렇게 방대한 사유를 이토록 겸손하게 풀어 낼수 있는지 머리가 숙여진다. 책의 어디를 펼치더라도 겸손이라는 고물이 손끝에 묻어나는 듯 하다. 무엇 보다도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마치 “니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해주는 듯한 위로가 느껴져서 읽는 내내 마음이 훈훈하다. 좀 더 일찍 알았다면 작고 전에 찾아가서 강의를 들었을 텐데라는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