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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레 Sep 15. 2022

결재판 다른 거 써도 되나요?

불편한 건 싫고 튀는 건 걱정되는

한 장 짜리 보고자료를 출력하고 나서 결재판을 찾아보았다. 보통은 부서에 여러 개가 떠돌아다니는데, 이렇게 간혹 찾을 때 안 보이는 경우가 있다. 원인은 다양하다. 부장님 자리에 정체되어 있을 때도 있고, 본부장실에 쌓여있을 때도 있다. 누군가 본인 책꽂이에 가득 꽂아둔 경우도 있다. 선배, 후배 자리를 기웃거리며 빈 결재판이 있는지 둘러보았다. 겨우 어디선가 결재판을 갖고 와서 보니 이젠 클립이 안 보인다. 결재판에 서류는 클립으로 딱 끼워야 하는 건데, 없으니 그냥 눈에 보이는 집게형 클립을 써야겠다.  


사실 이번에 쓴 보고자료는 엄밀히 말하면 '결재'를 받아야 하는 문서가 아니었다. 단순히 보고하고 피드백을 받기 위한 목적의 문서였다. 게다가 요즘은 전자문서로 다 결재를 올리기 때문에 진짜 결재를 받아야 할 서류는 온라인에서 처리하면 된다. 작성한 후 문서를 업로드하면, 부장님 클릭으로 결재가 완료된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는 오프라인 감성이 남아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뭔가 온라인으로만 결재를 올리면 어색한 감이 있다. 온라인으로 결재를 올렸더라도, 출력해서 결재판에 끼운 다음 부장님께 대면보고를 해야 정석인 느낌이랄까. 물론 내가 이런 방식을 선호하지는 않지만, 공공 분위기의 조직에서는 이 정도는 '예의'라고 여기는 것 같다. 


상사에게 보고하는 방식은 조직마다 정말 많이 다르겠지? 어딘가에서는 구두보고를 하기도 하고, 어딘가에서는 카톡, 메신저로 확인을 받고, 또 어딘가에서는 우리보다도 더 엄격, 근엄한 시스템을 갖춘 곳도 있을 것이다. 문화라는 게 어떤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조직이냐에 따라 정말 천차만별이라 하나하나 옳다 그르다 논하기는 어렵다.


꼭 가죽으로 된 결재판을 써야 할까? 진짜 결재를 받을 서류가 아니라 구두 보고만 하고 끝낼 건데? 상황에 따라서 유연하게 써도 되겠지? 어느 날은 책상 위에 놓인 서류판을 집어 들었다. 평소에 내가 필기를 하거나 서류를 볼 때 종종 사용하는 서류판이었다. 출력한 문서 한 장을 여기에 끼워 넣고 들고 갔다. 나는 이게 너무 편한데, 앞으로 이렇게 해도 괜찮으려나?  


불편한 건 바꾸고 싶고, 튀는 건 또 걱정되는 어중간한 마음이었다. 우리 부장님 반응은 어떨까? 누군가는 나에게 뭐 이런 거까지 신경 쓰냐 하겠지. 주어진대로 따르기만 하는건 싫은데 그렇다고 또 너무 반항아가 되고 싶진 않으니까. 소심한 직장인은 이렇게 또 몇 분간 사소한 고민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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