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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레 Jul 14. 2022

이것도 꼰대와 MZ의 갈등인가

외근 나간 상사의 점심, 누가 챙겨야 할까


점심시간, 인근 식당에서 식사 거리를 매일 배달해서 가져온다. 회사 내에 자체적으로 급식소를 운영하기가 어렵고, 아주머니를 고용해서 하기에는 음식 맛을 장담할 수가 없다. 고용했는데 밥이 맛이 없는 경우 해고하기가 참 곤란하다. 직원들은 맛없는 밥을 계속 먹어야 했고,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인근 맛집을 찾아 점심을 배달해서 먹고 있다. 



반응은 좋았다. 식당에서 매일 반찬을 바꿔서 가져오는데, 같은 반찬이 너무 자주 나온다는 것 빼고는 다들 만족하는 것 같다. 일반적인 급식이나 공장 밥과는 다르게 나름 집밥 혹은 맛집 느낌이 묻어나는 반찬들이었다. 이 시스템의 한 가지 단점이라면 매일 아침마다 식당에 '점심 식사 인원'을 알려줘야 한다는 거다.



모든 직원들이 밥을 먹는다고 가정하면 점심 식사 인원은 15명이 된다. 누군가 외근을 나가거나, 약속을 잡고 나갈 경우에는 인원이 줄어든다. 그런데 대부분 직원들이 경리 업무를 담당하는 막내 직원에게 본인의 출장, 외근, 약속 여부를 잘 알려주지 않는다. 정확한 인원을 파악하는 게 너무 어렵다. 경리 직원은 이를 적당히 넉넉하게 시키는 걸로 대응하고 있다. 남는 건 아깝지만 모자라서 누군가 밥을 먹지 못하는 것보다는 나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회사는 대게 밥과 반찬이 아주 많이 남는다. 



그런데 어느 날 밥이 모자랐다. 음식만 떨어진 게 아니라 식판도 부족한 걸로 봐서는 주문 인원보다 더 많은 인원이 식사를 하게 된 것 같았다. 정원에 맞게 주문을 했는데, 이날 따라 출장을 나간 직원이 없었고, 손님이 한 분 오셨다. 그리고 오전에 외근을 나갔던 상사는 12시를 넘긴 시간에 돌아왔다. 이렇게 되니 외근을 다녀온 상사의 밥이 모자라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평소 분위기가 좋은 사무실이기에 장난이 오가면서 잘 넘어간 듯했다. 회사에 여분 식기들이 많았고, 햇반, 라면, 김 등 기본적인 먹을거리가 준비되어 있었다. 조금 남아있는 반찬, 국거리 등과 미리 준비된 식기, 다소 풍족하지는 않지만 한 명이 식사하기에는 충분한 구성이었다. 어색한 상황이 펼쳐질 뻔했는데 여러모로 다행이었다.





다음날, 그 상사는 막내 직원을 찾아갔다. 앞으로는 좀 더 세심하게 일할 필요가 있다며 차분하게 타일렀다. 전체 직원은 15명이지만 사무실 인원만 따지면 5명이 되지 않는다. 누가 나갔는데 식사시간이 되어서도 들어오지 않는다면,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식사는 하고 들어오는지 물어보거나 알고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의도치 않게 사무실 앉아있는 나도 그 대화를 다 듣게 되었다. 자리를 피해볼까 생각도 했는데 오히려 그게 더 어색할 것 같아서, 잘 안 들리는 척하고 앉아있었다. 막내 직원의 대처는 제법 세련됐다. "잘 몰랐고, 앞으로는 잘하겠습니다"라는 요지로 대답을 했다. 얼핏 전해지는 내용을 바탕으로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가정하고 나도 모르게 가치 판단을 개입시키고 있었다. 




어찌 보면 구체적인 디테일은 다르지만 비슷한 상황이 이 세상 크고 작은 조직에서 펼쳐지고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그럴 거다. 회사도 사람 사는 조직이니, 서로 조금 더 위하고 배려하면서 일하면 더 즐겁지 않겠냐고. 누군가는 그러겠지,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자기 일을 잘해나가면 되는데, 그런 것까지 챙겨야 하냐고 말이다. 



MZ세대 혹은 90년대생



MZ세대라고 하면 그 범위가 상당히 넓다. M(밀레니얼) 세대는 1981년생부터 1996년생까지, Z세대는 1997년생부터 2020년생까지를 부르는 말이다. 흔히들 MZ세대, 민지 세대(혹은 민지)라는 말을 쓸 때 이 넓은 인구통계학적 집단을 지칭하는 것 같지는 않다. 이런 용어가 쓰이는 상황이나, 대화의 맥락을 생각하면 대략 90년 이후 출생자들을 지칭하는 것 같다. 






'90년대생이 온다'는 한동안 엄청난 화제가 되었다. 인사담당자가 새로 입사하는 세대를 보고 '기존과는 다르다'는걸 느끼고 쓴 책인데, 이전 세대들은 새로운 세대를 이해하기 위해서 읽었고, 새로운 세대들은 공감을 얻기 위해 읽었다. 이 책의 폭발적인 호응과 흥행은 한편으로 사회 문화적 차이, 그리고 그로 인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모호한 갈등이 조직에 만연 해있다는 걸 보여주는 게 아닐까. 



막내 직원 시절 나는 어땠나?



나는 90년생과 함께 학교를 다녔고, 09학번으로 대학에 입학해 80년대생 선배들 사이에서 '90년생이 대학에 들어오다니'라는 말을 들으며 아기 취급을 받던 빠른 91년생이다. 회사에 들어갈 때는 87년생, 88년생, 89년생들과 함께 입사를 해 '90년대생이 회사에 들어오다니'라는 말을 들었다. 회사에서의 나는 선배나 상사들에게 '얘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라는 궁금증을 남겼고, 동기들(80년대생)에게도 '쟤는 좀 다른데?'라는 이질감을 줬던 것 같다. 



사실 한두 살 나이 차이가 뭐 그렇게 큰 차이를 만들었겠는가. 90년생인 나와 동기들은 그야말로 또래일 뿐인데 말이다. 아무래도 정치, 사회학을 전공하면서 '토론' 혹은 '논쟁'이 더 나은 결과를 만드는데 도움이 된다고 믿게 된 것, 대학생활에 1년 반 정도의 기간을 해외에서 보내면서 자유로운 기질이 키워진 점, 도덕적 기준에 어긋나는 일이라면 상사한테도 직언을 내뿜는 성격, 이 모든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탓에 약간 이질적인 존재가 되었겠거니 생각한다. 



신기한 점은 회사에 계속해서 후배들이 들어오면서 나는 상대적으로 무난한 사람이 되었다는 거다. 나보다 더 '반론'을 서슴없이 제기하고, 더욱 자유로운 문화를 경험했고, 문제가 되는 상사의 행동을 거침없이 지적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 상황이 재밌었고, 한편으로는 기뻤다. 나 정도면 조직에 적당히 어울리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날 상사와의 대화를 끝낸 막내 직원은 그게 계속 고민이 되었는지, 몇 시간 후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내 생각이 궁금하다고 했다. 조직 내에서 '일'이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아우르는 건지 범위인지 물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챙겨야 하는가. 너무 어려운 문제였다. 상사와 선배들에게 종종 당혹감을 선사했던 내가 섵부르게 조언을 해주면 안 될 것 같았다. 나는 할 말을 하면서 적당히 미움받는 것을 선호했는데, 그 대가가 언제나 달콤하지만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다른 윗사람들은...'이라는 인트로로 조언을 하는 소위 젊은 꼰대가 되기도 싫었다. 막내 직원은 똑똑하고 사회성이 좋은 편이라 내 생각에는 지금도 잘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면 사실 상사가 요구하는 그 디테일 정도는 막내 직원이 굳이 추가로 챙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조직 문화, 이런 상사와 함께 일하는 환경을 감안했을 때, '그것까지 제 일인가요?'라고 받아치는 것도 곤란하다. 



짧은 직장생활의 경험을 돌아볼 때, 이런 상황에서 적당히 상사의 비위를 맞춰주는 대응은 결국 '나를 위한 일'이었던 것 같다. 내가 아무리 일을 잘하고, 타인의 도움을 별로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자부해도 살다 보면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 찾아온다. 내가 힘든 상황에 처했을 때, 혹은 내가 실수를 했을 때 내 편이 되어주고 위로해주고 힘이 되어주는 사람들은 결국 내 주변의 선배, 후배, 상사들이었다. 이러한 도움을 차고 넘치도록 받아본 나로서는 이제 '일만 잘하면 된다', '나는 개인주의자다'라는 말을 잘 못하겠다. 



결국 줄타기를 잘해야 하지 않을까. 타인이 원하는 모든 디테일을 정확하게 맞춰줄 수는 없다. 내 행동에 대해 예기치 못하게 불만을 제기하는 누군가가 언제 어디서든 튀어나올 수 있다. 이 모든 것을 다 예상하고 대응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그냥 불만이 들어왔을 때 '적당히' 받아들이고 '적당히' 흘리는 균형이 필요하다. 그리고 가끔은 듣다 보면 도움이 되는 질책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Z세대 막내 직원의 대응은 훌륭해 보였다. 상사의 이야기를 듣고, 앞으로는 잘해보겠다고 대답했지만 혼자서 또 고민도 했고, 그러다 주변 선배에게 조언을 구해보기도 했다. 나는 별다른 조언을 해준건 없지만, '말로 한번 풀어냄으로써 어느 정도 감정 해소가 되었다'며 고마워했다. 원래 직장생활 대부분의 고충은 '사람'으로부터 시작되는 데, 이렇게 조금씩 고민하고 대처하다 보면 성장해있겠지. 막내 직원은 걱정이 안 된다. 이참에 나 스스로나 한번 더 돌아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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