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90년생은 올해 한국 나이로 33살이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이제 내 주변의 90년생들은 사회초년생, 신입이라는 타이틀은 진작 떼어버리고, 대리/과장급 중간 관리자로서 성장했다. 아니 언제 이렇게 세월이 흘렀지? 싶을 정도로 빠른 시간이었다. 직장에 들어오기 전, 대학생 때까지의 시간은 이리저리 다채로웠던 것 같은데, 직장 생활은 출퇴근의 연속이어서 그런 걸까. 시계태엽을 누군가 더 빨리 감아 놓은 것 같은 의심이 들 정도로 직장에서의 시간은 훌쩍 지나있었다. 내가 벌써 N연차라니.
90년생은 어떤 선배가 되었을까?
대학은 친구를 선택적으로 사귀기에 아주 좋은 환경이었다. 내 적성과 관심사에 맞는 수업을 듣고, 취향에 맞는 동아리 활동을 했다. 그러다 보니 비교적 유사한 사람을 만나서 어울렸던 것 같다. 회사는 전혀 그렇지 않다. 여러 가지 회사에 합격한 후 나에게 가장 잘 맞을 것 같은 곳을 골라서 가는 게 아니다. 대부분은 간절히 입사 지원서를 여러 군데 뿌려서 겨우 한 군데 합격해서 가는 형식이다. 그렇게 우연히 합격한 회사가 나와 잘 맞을지 아닐지는 전혀 알 수 없다. 가봐야 알 수 있는데, 가서 보니 잘 안 맞다고 해서 쉽게 나올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적응해야 한다.
신입 시절 돌이켜보면 별별 사람 다 있었다. 그때는 싫은 게 정말 많았다. "나는 괜찮은데~ 다른 사람이 너를 안 좋게 보는 거 같아"라는 말을 조심스럽게 전하는 1~2년 차이나는 선배. "나 때는 이랬는데, 요즘 애들은 너무 이상해"라는 말을 하며 질책하는 부장. 뒤에서 후배 직원 욕을 하는 윗사람. 회사 돈을 개인 돈처럼 쓰는 도덕적이지 못한 사람. 안 해도 되는 일을 만들어서 하는 사람. 생각 없이 관습을 그저 답습하는 사람들.
왜 저럴까?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했다. 좀 더 좋은 사람이 되었으면 하고 바랐다. 일을 후배에게 떠넘기지 말고. 기존의 틀을 맹목적으로 따르지 말고. 더 나은 개선점을 고민하는 직원이고 싶다. 안주하지 않고 개인의 역량을 꾸준히 개발하고 싶다. 꼰대처럼 후배를 지적하지 말고, 좋은 모습을 보임으로서 선배의 역할을 다하자. 아마 대부분의 신입들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연차가 쌓이고 보니 예전과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선배들의 행동에서 이해가 안 됐던 부분들이 많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조직에서는 단순히 효율/비효율을 나눠서 선택하기 어려운 일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됐고. 나이가 들수록 어쩔 수 없이 과거의 스토리를 설명하는 버릇이 생긴다는 걸 느꼈다. "나 때는~"이라는 말은 하지 말아야지 했는데, 이 말이 문득문득 입 밖으로 나오는 걸 느낀다. 이런 것들이 이해되기 시작하면 꼰대가 되는 과정이라고 하던데. 나도 그런 걸까.
형제관계에서는 첫째, 둘째 그리고 막내라는 관계는 비교적 오래, 길게는 평생 동안 지속된다. 나이가 들어도 막둥이는 여전히 집안에서 귀여움을 받고, 첫째는 어려서부터 첫 째로서의 기대를 받는다. 회사는 그렇지 않다. 변화하는 관계 속에서 새롭게 나의 정체성을 구축해 나가야 한다. 나는 한때 부서의 막내였으나, 하나둘씩 후배들이 들어왔고 이제는 부서에서 딱 중간 정도 되는 위치를 담당하고 있다. 후배를 대하는 건 생각보다 어려웠고, 윗사람을 대하는 건 원래부터 어려웠다. 내 또래의 직장인들은 지금 어떤 선배로, 어떤 어른으로 자라나고 있을까. 꼰대가 되지 않겠다던 그 다짐은 잘 지켜졌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