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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쓴이 Apr 26. 2022

영상편지

미래의 아들에게


1997년,



주말 아침, 아버지 차를 타고 교외에 가던 길이었다.



라디오 뉴스에서는 익숙한 아버지의 회사 이름이 나왔고 뒤이어 원치 않게 익숙해져 버린 ‘부도’라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세상의 비정함을 알기에는 무척 어렸던 나였지만 비상 정차한 차 안의 무거운 공기와 어머니의 옅은 한숨, 아버지의 색감 없는 동공을 보며 무엇인가 단단히 잘못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얼마 뒤 쌀이 떨어졌다. 성장기 자녀가 셋이니 먹는 양이야 오죽했을까.



아버지는 퇴근 후에도 일을 하셨다. 바쁜 와중에도 내 공부를 봐주고 함께 농담을 주고받던 아버지의 얼굴에 빗금이 쳐지는 것을 보는 일은 꽤 괴로운 일이었다.



어머니의 백미 같던 손은 현미가 되도록 인형의 눈을 붙이고 생밤을 까야했다.



일상을 수호하기 위한 어른들의 치열한 사투 아래서 우리 남매는 그 시절을 ‘라면 자주 먹어서 좋았던 시기’ 정도로 기억할 수 있었다.



올해로 나는 1997년 외환 위기 당시 아버지의 나이와 동갑이 되었다.



평온한 일과를 보내면서 취미로 글도 쓰는  삶이 행복하면서도 이런 일상을 누리못했을 서른다섯의 아버지에 대해 무척이나 짠한 마음이 들었다.



당시의 하루하루가 어찌나 고되셨는지, 환갑의 아버지는 20세기 말에 대한 말씀을 잘하지 않으신다.



97년으로 타임슬립을 할 수 있다면 가족 몰래 눈물을 훔쳤을 아버지에게 다가가 이유 없이 안아주고 힘든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문득 미래의 어느 날, 내 아들도 젊은 날의 나와 대화를 하고 싶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물리학자들이 시간여행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아마 미래의 아들과 직접 상호작용을 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다만 젊은 아빠의 흔적이 남아있다면 그것은 오랜 시간이 지나 아이에게 선물처럼 다가갈 수도 있을 것이다.




2022년,



그래서 나는 처음으로 영상 편지를 써봤다.



미래의 나는 중장년의 언어로 아들에게 사랑을 전하겠지만 30대의 젊은 내 모습은 이미 추억에 박제되어 나조차 기억이 희미해질 테니까.



코로나로 인해 원격수업을 자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카메라 앞에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어색하지 않았지만 영상을 볼 대상을 ‘30대가 된 아들’로 상정하고나니 어색함이 묻어났다.



아이가 결혼을 할지 안 할지는 본인의 선택이지만 만약 결혼을 한다면 아마 나와 비슷한 나이에 하지 않을까 하고 넘겨짚어봤다.



그래서 기회가 된다면 찍은 영상을 잘 간직했다가 아이의 결혼식에서 친구 같은 아빠의 조언으로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든 뒤 당시의 국내외 정세, 나와 아내의 근황, 아들이 자주 하는 말, 아들이 좋아하는 것들을 찬찬히 늘어놓았다. 그리고 결혼을 하게 된다면 어떠한 삶을 살면 좋을지, 같은 30대로서 느낀 바를 덕담처럼 전해봤다.



10분 정도의 영상을 마치고 나니 뭉클한 기분이 기도를 타고 올라와 연신 기침이 나왔다.



빛바랜 사진으로만 만나는 아버지의 젊은 날을 쓰다듬을 때마다 느끼던 미안함과 고마움이 아들에 대한 애틋함과 섞여서 코 주변에 시큰하고 매운 기운이 오래 감돌았다.



별 용건이 없어도 굳이 전화를 해서 아버지를 귀찮게 하는 일상이 오래오래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본인이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내게 묻고 답을 구하는 아이의 모습이 오래도록 이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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