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한 줄
200페이지 남짓한 많지 않는 분량을 나는 이틀 이상을 꼬박 공들여 읽었다.
절대 속독을 할 수 없었고, 한문장 한문장을 꼭꼭 씹어 몇번씩 되새기며 맘속에 각인하며 읽어나갔다.
작가는 이 소설을 한 문장 쓰고 두 세시간을 울고 고통스러했다고 한다.
본인 스스로 폭력적인 장면에 민간한 사람이지만, 폭력적인 것을 돌파하기 위해 사람 이야기를 쓸 수 밖에 없었다고, 그 사람의 폭력이 힘든지는 결국 폭력적인 장면을 통해서만 보여줄 수 밖에 없어서 본인도 힘들게 통과하며 글을 썼다고 고백했다.
1980년 5월의 광주를 다룬 소설이라고 할 때 충분히 예감했다. 쓰는 것도 읽는 것도 결코 쉽지 않을 것 같다고..
4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들추면 아물지 않는 상처인 아픈 광주의 역사를 작가는 어떻게 소설 속에 담을까 걱정 반 의심 반으로 이 책을 오래 전에 구매 했지만, 나는 감히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날의 고통과 맞닿을 용기가 없었고, 광주의 아픔을 덤덤히 받아드릴 넓은 아량이 없었다.
나의 고향은 광주 마륵리 작은 시골마을이다. 80년 5월 너무 어린 나이었기에 그날의 아픈 기억은 없지만, 부모님이 저녁에 절대 나가지 말라했던, 이른 저녁이면 불을 다 끄고 조용히 보내야했던 기억은 어슴프레 난다.
그 날을 다룬 다큐와 영화를 통해 많은 무고한 시민들이 처참히 도력당했고, 시민을 지키는 나라는 없었으며, 광주는 철저히 고립되어 버려졌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 소설 속 희생자들을 통해 그 날의 잔혹한 현장을 더 자세히 직도할 수 있었다.
소설 속 등장인물은 하나 같이 그냥 평범한 학생들이고, 직장인이고 우리의 부모님들이다. 정예 부대로 숙련된 북한의 지령을 받은 빨갱이들이 아닌, 나라를 이렇게 두면 안될 것 같다는 정의와 깨끗한 양심을 품고 몸소 몸으로 민주화를 실천했던 우리의 이웃들이다.
아무것도 몰랐던 너무나 어렸던 16살 중학생 동호, 수피아 여고 교복을 입었던 18살 은숙, 충장로 양장점에서 미싱사로 일했던 20대 초반 선주,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갓 입학하고 휴교령이 떨어져 집인 광주에 있던 진수. 이들은 그저 상무관에 안치된 시신을 돌보고 유족들에게 알리는 봉사를 자처했을 뿐이다. 아무런 정치색도 없었던 그저 평범한 우리의 아들 딸들이었다.
이들의 마지막 항전이 죽음임을 알기에 동호를 집으로 돌려보냈음에도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게 책장을 한 장 한장 넘기면서 점점 아프게 다가왔다. 내가 그 속에 들어가서 발걸음을 돌릴 동호의 손목을 잡고 싶었다. 죽음이 무엇인지 생각할 겨를없이 질곡의 역사에서 잔인한 비바람을 마주한, 너무나 맑아서 빛나는 물방울처럼 순수한 어린 영혼의 모습은 결국 중간에 책을 덮고 한참을 울게 만들었다.
인간은 어디까지 잔혹할 수 있을까 어떻게 같은 인간을 그리 무참히 살해하고 도륙할 수 있을까? 윗 선의 명령이라면 무족건 그냥 이유를 막론하고 따르는게 군대인가? 분명 계엄군들 중에도 그날의 충격으로 힘들어 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인간이라면 절대 인간을 그렇게 짐승을 도륙하듯 처참히 죽일 수 없다는 것을, 일말의 양심이라는 것이 있는 사람이라면 절대 그래선 안된다는 것을 그들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자신의 양심을 애써 외면하고 명령에 따라야 했던 그들도 또 다른 희생자일 것이다.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는가. 책을 덮으며 먹먹한 마음과 함께 이 생각이 머릿 속에서 떠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