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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시 Nov 13. 2024

나의 꿈, 나의 길

에세이

스멀스멀 어두운 무력감이 몰려온다. 무기력과 우울감과 한 세트로 움직이며 내 맘을 한 없이 가라앉게 하는 주범이다. 지금껏 경험에 의하면 어둡고 우울한 생각이 내 감정을 휘두르며 나를 힘들게 만들었다. 오늘 나를 힘들게 한 생각의 주범은 무엇인가. 곰곰이 하루를 되짚어 보면서 나 자신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검증한다.


퇴근 전 한 선생님으로부터 차 한잔 하자는 제의를 받았다. 평소 자문도 묻고 대화도 오가는 사이인지라 흔쾌히 응했다. 나의 상황을 얘기하는 중 그 선생님께서는 내 과목은 그저 다른 학문을 배우기 위한 도구 과목일 뿐이라고 말씀하셨다.  물론 그 말엔 전혀 나에 대한 공격이나 내 과목을 하대하는 의도는 없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저 객관적이고 현실적인 그 선생님만의 생각이 우연히 표출됐을 뿐.. 그런데 그 말이 내내 내 귀에 내 맘 속에서 떠나지 않고 맘을 아프게 했다.


고3 때 중문과 가겠다고 선포한 날 엄청 놀라시면서 격하게 말리셨던 담임 선생님이 문득 떠올랐다. 그 당시는 중국과의 교류가 막 시작한 터라 제2 외국어로서 중국어의 위상은 독일어와 프랑스어 발끝도 쫓아오지 못할 때였다. 물론 나도 학교에서 제2 외국어로 프랑스어를 배웠고 중국어는 전혀 접해보지 못한 상황이었다.


내가 중국어의 매력에 빠진 순간은 이렇다.  고 3 어느 여름, 대만 대북교회 형제자매님들이 한국 교회 방문을 온 적이 있었다. 낯선 외국어를 구사하는 그분들이 마냥 신기했던 기억이 난다. 노래처럼 리듬감 있는 중국어는 매우 신선했고 신박하게 들렸다. 그때 중국어를 유창하게 통역했던 중문과 4학년 오빠의 모습에 엄청 충격을 받았고, 마음 깊이 다짐했다. 나도 대학교 4학년 때 꼭 저 자리에 서겠다고..


그렇게 나와 중국어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담임 선생님과 부모님의 반대를 극복하고 중문과를 들어왔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와 달리 태반의 아이들은 이미 고등학교 때 중국어를 제2 외국어로 배우고 들어온 얘들이었다. 수준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기에 나는 두 배 세배로 노력을 했다. 원어민 교수님도 엄청 귀찮게 했던 기억이 난다. 그 교수님 추천으로 대만으로 어학연수도 다녀오고, 정말 꿈같이 대학 졸업 전 2월에 형제자매님들을 모시고 대만 교회를 방문하여 통역을 했다. 그때의 기쁨과 희열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기억이 난다.


교사가 되고 나서도 중국어를 좋아하는 학생들을 위해 무 보수로 토요일 수업을 열어 가르쳤던 열정이 있었다. 나로 인해 중국어 쪽으로 진학을 선택하는 학생들로 인해 뿌듯함을 느꼈고, 무엇보다 내 과목에 대해 내 스스로 자부심이 컸다.


언어는 시대의 흐름을 탄다고 한다. 지금은 중국어 바람이 식다 못해 너무 차갑다. 학생들에게 선택도 받지 못하는 찬 밥 신세가 돼버리게 현실이다.  내 과목에 대한 내 스스로의 자부심과 열정도 함께 식어갈까 두렵다. 그래서 그냥 현실에 아무 느낌 없이 안주하고 적응할까 봐..


다행히 아직은 그런 단계까지는 아닌 것 같다. 내 과목에 대한 애정도 아이들에게 열정적으로 가르치고 싶은 마음도 아직은 식지 않았다.


 이제 나 자신을 내가 보듬어 줄 시간이다. 토닥여 준다. 지금껏 잘해왔고 앞으로도 잘할 거라고 , 너는 멋지다고.. 내가 나를 위로하고 쓰다듬으면서 무력한 맘을 달래 본다. 우울감을 떨쳐본다.


내일 아침, 새롭게 떠오르는 태양처럼 나도 다시 힘차게 하루를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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