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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시 Nov 19. 2024

일상의 히어로, 김우빈

에세이

겨울을 나기 위해 지방을 축적하려는 내 몸의 시그널인지  요즘 들어  탄수화물이 더 끊임없이 입으로 들어온다. 힌 쌀밥은 물론이거니와 과자, 떡과 빵의 유혹에도 한없이 무너져 버린 내 몸은 어느새 앞 숫자가 바뀌고 말았다. 갱년기가 가까워서 살이 안 빠진다고 애써 에둘러 말하지만, 나는 분명히 알고 있다.  많이 먹고 움직이지 않은  결과라는 것을. 내 몸은 아주 정직하다는 것을. 하여 매서운 날씨를 등지고 파카와 목도리로 겸비하고 아파트 헬스장으로 기어이 향했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서인지 헬스장엔 아무도 없었다. 마치 큰 홀이 내 것인 양 음악을 크게 틀고 편안한 자세로 몸을 풀기 시작했다. 러닝머신 위에 올라 속도를 5.2로 맞춰 서서히 뛰었다. 러닝보다는 부담감이 덜하면서도 심폐기능 향상과 체력단련에 효과가 좋다는 유튜버의 소개로 며칠 전부터 시작했다.


습관적으로 티브이 리모컨을 틀었을 때, 유퀴즈가 방영되고 있었다. 일상의 히어로라는 이름으로 김우빈이 함께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훤칠한 키와 다부진 몸매는 누가 봐도 멋진 남자이지만, 나에게는 그다지 호감형은 아니었다. 그의 매서운 눈매와 까칠한 표정은 학창 시절 잘 놀았을 것 같은 편견을 주었고,  그가 맡은 배역에서도 그대로 반영되어 표현되는 것을 보고  내 판단에 확신을 품었던 것 같다.


3년 전   비두암에 걸려 6개월 시한 판정을 받았을 때를 상기하며 유재석은 그에게 그때의 심경을 조심히 묻고 있었다. 내내 미소를 지으며 두 진행자를 번갈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그의 모습이 아니었다. 연신 겸손한 말투와 예의 바른 태도는 누구보다 젠틀하고 선량했으며, 무엇보다 긍정적인 삶의 자세를 지니고 있는 멋진 남자였다. 이래서 사람은 겉모습으로만 판단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시한부 선고를 받고 그가 보여준 태도가 너무도 인상적이었다. 지금껏 앞만 보고 달려온 자신에게 하늘이 쉴 수 있는 시간을 주었고,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가족의 존재에 대해 다시 한번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고백했다. 3년 간의 긴 투병 기간 동안에도 병이 꼭 치료될 거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긍정적인 자세로 하루하루를 임했다는 그는 아픈 와중에도 빼놓지 않고 그날의 감사 일기를 썼고, 잠들기 전엔 자신을 위해 기도했던 많은 팬들처럼 병마에 아프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도 꾸준히 했다고 전했다. 이런 착한 그의 마음에 하늘도 감동을 하여 그의 병을 낫게 해주었을까 싶었다.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높지 않은 그의 삶에 대한 의지는 분명 같은 처지에 놓인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되었을 것이다.


 예기치 않은 환경이 닥칠 때 우리는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자세히 투명하게 볼 수 있는 것 같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어떻게 삶을 대하는지를.  나에게 암이라는 달갑지 않는 존재가 방문한다면 나는 그처럼 담담하게 긍정적으로 삶을 조우할 수 있을까. 아마도 나는 한없이 쓰러졌을 것 같다. 낙담하고 고통스러워하며 병마와 싸울 힘조차 내지 못했을 것 같다.


갑자기 나보다 훨씬 어린 그에게 존경심이 우러나왔다. 그리고 그를 진심으로 응원했다. 진심으로 그의 팬이 되고 싶어졌다.  그의 선한 영향력에 감사를 드리며, 하루 감사 일기와 감사 기도를 하리라 다짐하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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