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저
오랜만에 학교 도서관을 향했다. 늘 친절하게 웃어주시는 사서 선생님께 책을 추천해 달라고 청했더니, 박완서 님의 이 책을 소개해 주셨다. 작가에 대한 편애가 심했던 나는 여태 박완서 소설은 읽어보지 못했던 터라 작가의 소설이 궁금했다. 더욱이 책 제목에 있는 ‘싱아’라는 낯선 단어에 시선이 꽂혔다.
이 책은 소설이라기보다는 작가의 어린 시절부터 20대까지의 자전적인 에세이 같은 느낌이었다. 그 오래전 기억들을 이리 세세히 기억하고 있는 작가의 기억력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1930년대 후반 일제 강점기 시대부터 1950년 6·25 전쟁 시기를 거쳤던 작가의 성장 소설이었고, 그 시절을 회상하는 그리움과 아픔, 추억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소설은 담담히 술술 읽혔다. 쉽게 써 내려가면서도 재미와 흥미를 놓치지 않은 그녀의 소설은 담백하고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묻어났다. 마치, 인공 조미료나 향신료를 넣지 않는 자연 그대로의 맛을 추구하는 건강표 엄마 밥상 같은 느낌이었다.
그녀는 어린 시절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다. 개성 주변 박적골이라는 시골 마을에서 자연과 벗하고 조부모님과 부모님, 숙부님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할아버지는 특히 그녀를 아꼈고, 자녀가 없었던 숙부님들도 그녀를 친자식처럼 예뻐했다. 시골 뒷동산에 올라 싱아를 따먹는 부분에서는 싱아의 뜻을 찾아보았다. 80년대 내가 친구들과 입으로 꺾어 먹었던 수수대와 비슷한 추억일 거라는 어렴풋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특히 소설 속 그녀의 엄마에 대해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녀의 엄마는 시부모님을 모시고 맏며느리로 살았지만, 고분고분하기보다는 대차고 자신의 생각이 분명한 여성이었다. 자식 교육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적극적이었고 욕심이 많았다. 그 배경에는 병명도 모른 채 민간의학과 무당이 푸는 굿에 의지해 결국 자신의 남편을 죽게 만든 뼈아픈 아픔이 있었다. 서둘러 개성에 있는 병원으로 남편을 데리고 가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자식들만은 꼭 신식 교육을 시키겠다고 굳게 마음을 먹는다. 남아 선호 사상이 강했던 그 시절, 여자아이가 학교 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세상 드문 일이었으리라.
소설을 읽는 내내 올해 여든이 되신 친정엄마가 자꾸 클로즈업되었다. 전남 완도 섬 마을에서 큰딸로 나고 자란 엄마는 소학교 시절부터 공부에 뛰어난 두각을 보였지만, 완고하고 고루한 외할아버지의 반대로 중학교 입학을 못했다며 늘 애통해하셨다. 그래서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자식들의 교육에는 남다른 열정을 보이셨다. 대학교 2학년 겨울, 3학년을 휴학하고 대만으로 1년간 어학연수를 가겠다고 가족들에게 선포한 날, 위험하다며 극구 반대하시는 아빠와 달리, 엄마는 통 크게 허락했다. 아마도 어린 시절 아버지의 반대로 학업을 계속하지 못했던 설움과 원한을 자기 자식들에게는 대물림 하고 싶지 않은 깊은 모성애에서 발로한 결단이었으리라.
그 시절 가정 형편도 가장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두 분이서 아파트 내 작은 식료품 가게에서 식자재와 반찬을 팔고, 남의 집 김치까지 담가주면서 어렵사리 생활을 영위했지만, 한 번도 나에게 보내는 학비와 생활비를 놓치지 않았던 나의 부모님은 소설 속 남매 교육을 위해 서울 가난한 쪽방촌으로 이사를 감행하며 기생들 삭바느지를 하면서도 꿋꿋하게 자식들 뒷바라지를 했던 어머님과 많이 클로즈업되어 다가왔다.
또한 그 시절 중학교가 6년제였다는 것도 신기했다. 숙명여중에 입학한 그녀는 자신보다 9살 많은, 엄마의 자랑이고 기대주였던 오빠의 영향으로 많은 문학 전집을 접할 수 있었다. 서울대 국문과를 입학했지만, 전쟁통에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피난처로 자신의 첫 상경지였던 현저동에 숨어 들어가며 1부 소설은 끝이 난다. 그녀의 자전 소설 2부인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에 20대 이후 그녀의 이야기가 전개된다고 하니, 그 책도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