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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 온도 Sep 23. 2022

엄마의 최선

만 가지 치료법 중에 어떤 게 들지 모르니.




“얼른 일어나, 가야 해.”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다. 엄마 차를 타고 한참을 구불구불 산길로 올라갔다. 길 끝에 집이 보인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니 생전 처음 보는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어릴 때부터 봐온 제사상의 6배는 더 될 것 같다.

온갖 과일과 음식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데, 지금까지 내가 먹은 것들은 뭐였을까 생각하게 만드는 것들로 가득했다.



‘백설공주가 먹었을 것 같은 사과다.‘


반점 하나 없는 사과를 보자 하니, 꼭 모조품 같았다.혹시나 해서 엄마에게 물어보니 진짜란다.

정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곳에 도착하고야 알았다. 여긴 굿을 하는 곳이라는 걸. 무려 500만 원짜리 굿이었다.


.

.



“같이 갈래?”


엄마는 샤머니즘을 믿었다.

엄마의 믿음이 언제부터 인지는 모르지만, 나를 데리고 갔던 건 중학교 때부터 인 것 같다.


“무서워서 싫어.”


TV에 나오는 점을 봐주는 사람들의 모습, 신내림을 받은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하면 무서웠다.

그 눈빛이 섬뜩할 것 같고, 귀신을 볼 것 같은 기분. 그런 상상을 하는 나에게 엄마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런 건 없다고. 그리고 처음 엄마를 따라갔던 날.

난 도리어 실망했다.



‘뭐야, 내가 생각했던 비범함이 아니잖아.’



그날 이후로 나는 종종 엄마와 함께 점집을 다녔다.

도대체 엄마는 왜 매일 같은 걸 묻는 걸까, 그 돈을 아껴서 모으면 금방 부자가 되겠다.

갈 때마다 별다른 해결점 없이 끝나는 결과.

한참이 지나서 20살이 넘었을 무렵, 엄마와 함께한 500만 원짜리 굿 이후로 난 엄마의 마음을 비로소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혼자서 삼 남매를 키운 엄마에게 조언이나 방향을 일러주는 사람이 없었을 것이란 걸.

자신의 확신이 실패했을 때 굶을 수도 있을 자식들이 있기에, 엄마는 마음의 위로를 받고, 확신을 굳힐 수 있는 나름 객관적이면서도 엄마를 이해해 줄 조언자가 필요했던 거다.

그리고 자기 마음대로 될 수 없는, 현대의학으로는 아직 완치가 불가능한 나의 아픔에 공양이 부족했던 자신을 탓하며 엄마는 하늘의 힘이라도 빌려보려 했던 게 아닐까, 이게 엄마의 최선이 아닐까.

엄마의 마음이 조금 이해가 되었을 무렵부터 난 엄마가 점집에게는 걸 말리지 않았다. 아니 말릴 수 없었다.



“오늘은 또 이모랑 어디까지 다녀온 거야?”



이제는 웃으며 말을 건넨다.

이러다 전국일주를 할까 겁이 날 때도 있지만, 엄마의 운전 범위는 다행히도 혼자 1시간 이상을 넘기기 어렵다.


.

.



“엄마 이건 아닌 것 같아. 돈이 어디 있어서 이런 굿을 해요.”


그날은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할 수 없었다. 생전 먹어보지도 못한 그렇게 좋은 과일들과 음식들이 눈앞에 있는데, 왜 이런 굿을 보이지도 않는 조상에게, 하늘에 해야 하는 건지. 넉넉하지도 않은 형편인 걸 누구보다도 잘 아는데. 이렇게 낭비를 하다니.


“대체 이 많은 과일과 음식은, 굿이 끝나면 어디로 가는 거예요? 다 버리는 거예요?”


“버리다니, 이거 다 고아원이나, 시설로 가는 거야. 걱정하지 마.”



그나마 버리는 게 아니라고 하니 다행이었다.



‘그래 기부하는 마음으로 딱 한 번만.’


2월, 아직 추운 겨울이다. 꽁꽁 얼어버린 손과 발. 하루 종일 동서남북으로 자리를 옮겨가며 얼마나 많은 절을 했는지 모른다. 샤머니즘을 믿지 않았던 나지만, 그래도 ‘혹시나’하는 맘에, 최선을 다해 절을 올렸다.


굿의 막바지, 무당의 안으로 조상님들이 왔다 간다. 내 기억 속에 있는 사람은 증조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리고 아빠뿐이다.


‘할아버지 말투 같은데...’


믿음이 없던 나에게 유일하게 하루, ‘신내림이 진짜 있는 것인가?’라는 의문을 품게 한 날이 바로 이 날이었다.

증조할머니, 할아버지, 아빠... 진짜 이곳에 왔다 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믿고 싶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진짜면 좋겠어요. 아빠랑 할아버지랑, 증조할머니랑 나 안 아프게 해 주면 좋겠어요.’



진짜 기적이라도 일어나면 좋았겠지만, 너무도 당연히 나에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 날 이후 엄마는 나의 아픔을 조금은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그런 엄마의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 보였다는 것뿐이었다.



.

.


몇 달 전, 엄마와 침술원에 갔었다. 이곳저곳 안 아픈 곳이 없는 엄마는 이미 침술원의 단골손님.

몇 주 전부터 목이 아팠던 나를 기어코 끌고 와 침을 맞게 하는 엄마다.



“만 가지 치료법 중에 어떤 게 들지 모르니까 이것저것 해봐야지.”

엄마의 말은 불현듯 이렇게 번역되어 나의 가슴 깊이 들어왔다.



‘아가, 어떤 힘듦이 와도 극복할 방법은 있어, 그러니까 계속 찾아보고 노력해 봐야 해. 알겠지?’



난 엄마의 마지막 순간에, 내가 못다 한 숙제처럼 남지 않길 바란다.

답이 없는 문제를 고심하고,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다 해져버린 숙제가 아니라

그저 최선을 다한 사랑이었다고, 그런 사랑으로 기억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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