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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 온도 Sep 23. 2022

삶과 죽음 사이, 그 얄팍함

 


입원을 하고, 인슐린 펌프를 달았다.

음식을 먹을 때마다, 바로 인슐린을 넣을 수 있게 도와주는 기계다.


.

.



‘으...금방이라도 죽을 것만 같다...’



새벽4시, 주르륵 흐르는 식은땀에 온몸이 떨려와 잠이 깼다. 보이는 대로 먹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죽을 것만 같은 느낌. 죽음과 마주한다면 이런 기분일까, 마침 엄마가 사다 두었던 냉장고의 딸기 한 팩이 생각났고, 난 딸기 한 팩을 5분도 안되어 허겁지겁 먹어 치웠다. 고혈당보다 훨씬 더 무섭다는 저혈당 증세였다.



“아침혈당이 너무 높네요.”



새벽에 딸기를 너무 많이 먹은 탓이다.  앞으로는 저혈당이 되면 15g정도 당류를 섭취하고 15분정도 후에 오르지 않으면 다시 먹으라는 지침이 떨어졌다.



‘그게 내 맘대로 되면 좋겠다.’



저혈당이 왔을 때 그 금방이라도 죽을 것만 같은 허기짐과 떨림은, 당류15g이라는 이성적인 판단을 하기엔 역부족이다. 15분을 기다리는 일도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그래도 이 룰은 지켜야만 했다.




‘다음주부터 시험인데, 큰일이다.’



다음주부터 2학년2학기 마지막 기말고사가 예정 되어있었다. 하필이면 시험직전에 입원을 했다.

시험이 끝나고 방학에 아팠으면 좋았을 것을. 그게 맘대로 되지 않는 일이란 걸 알면서도 나오는 건 한숨과 푸념뿐이었다.


펌프를 떼어내고 인슐린을 자가 주사하는 법을 배울 때 쯤, 난 6인실 병동으로 병실을 옮겼다.

아침마다 혈당을 체크하는 사람들, 물론 인슐린 맞는 사람은 나뿐이었지만, 생각보다 당뇨환자들이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내가 아프고 나니, 비로소 그런 사람들도 보이는구나…’



어지러운 병실 안, 고혈당에 집중이 안되는 와중에도, 또 다시 꾸역꾸역 병이 시작되었다.

꾸역꾸역 들어오지도 않는 시험공부하기. 어떻게 지켜온 내 학점인데, 아프다고 전부 놓을 수는 없었다. 교수님들에게 전화 드리며, 따로 시험일정을 잡았다. 분명히 살고 싶지 않았었는데, 시험 걱정을 하는 걸 보면 그렇다고 죽고 싶지는 않았나 보다.


청주에서 충주로, 학교버스 대신 엄마차로, 사흘동안 시험을 보러 병원 외출을 했다. 교수님 방에서 혼자 시험을 보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오는 짧은 일정에 시험이 끝나고 친구들과 회포를 풀었던 날들이 너무 그리웠다.



‘언제쯤 다시 예전처럼 돌아 갈 수 있을까.’



내가 원하는 결과는 역시나 나올 수 없었다. 도저히 머리에 들어오지 않아 외우지 못했던 단어들로 좋은 점수를 바랄 수 없었고, 참여로 만족해야 하는 시험이었지만, 그래도 나름 선방했다고 다독이며, 시험을 보는 그 순간만큼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죽으란 법은 없나 보다.’



맛없는 당뇨식단, 매일 먹던 식사의 절반도 안되는 양이었지만, 배가 고파 허겁지겁 먹었다.

병원 식단 외에는 먹을 수 있는 게 없었기에 선물로 들어오는 건 모두 내 것이 아닌 또 다른 병문안 손님용 간식이 되었다.


“편의점 좀 다녀올게요.”


하루 두 번, 무엇을 사러 가는 건 아니었다. 그냥 눈으로 보며 만족하는, 일종의 아이쇼핑.

미각이 아닌 시각과 후각만 만족시킨 채 끝나는 쇼핑에서 그나마 살수 있는 건 베지밀 B보다 덜 단 베지밀A. 한참을 기웃거리다 작은 두유 한 팩을 사 들고 돌아오곤 했다.



그렇게 나는 잘 적응해 갔다. 계속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한 건 아니었다.

그냥 어쩌다 보니 잘 살아내고 있었다.

역시나 인간은 환경에 잘 적응하는 동물이었고,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여전히 혈당은 오르락내리락했고, 그럴 때마다 나도 병원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했다.

병원에서 찾은 나만의 운동장, 높고 기다란 비상구 계단. 그 계단은 꼭 앞으로 내가 올라가야 할 삶의 여정처럼 힘들고 가파르게 보였지만,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며 생각했다.



‘한 칸 씩, 한 걸음씩 가다 보면 금세 다 오를 거야. 바로 앞에 있는 한 계단만 보자.’



답답한 병실 안. 이제 겨우 혈당체크와 주사 놓는 법을 배운 새내기 당뇨 환자였지만 아픈 사람들이 모여 있는 병원이라는 공간에서 더 있다 가는 다른 병이 더 생길 것 같았다. 그리고 바쁜 엄마 대신 내 옆 간이 침대에 불편하게 잠을 청하는 할머니 때문이라도 빨리 퇴원하고 싶었다.



드디어 퇴원하는 날.

이제 집에 가면, 매일 스스로 혈당을 체크해야 하고, 인슐린주사도 해야 한다. 운동도 해야 하고, 병원식단처럼 하루 세 번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 비타민, 무기질 등 성분을 따져가며 밥을 먹어야 한다.




'하...잘 할 수 있을까...그래 어떻게든 되겠지. 한 번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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